1981년 당시 39세였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20~30대 청춘을 다 바친 회사로부터 느닷없는 해고장을 받고나서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당시 채권투자 전문회사였던 살로먼 브러더스. 블룸버그는 196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이 회사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했다. 그는 영업력을 인정받아 1973년 파트너로 고속 승진했다. 30대에 백만장자 대열에 올라섰을 정도다. 그러나 살로먼 브러더스는 1981년 8월 1일 갑자기 운명적인 한마디를 전달했다. 회사는 블룸버그에게 퇴직금으로 1000만달러를 주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한 것.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기술전문가 등 동료 6명과 함께 창업에 나서기로 한다.
창업회사 이름은 처음엔 블룸버그가 아닌 `혁신시장 시스템(Innovative Market Systems)`이었다. 이름만큼이나 당시에는 창조적이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대였던 당시 대형 증권사마저도 과거 주식거래 기록을 보려면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을 일일이 뒤져봐야 했다. 월가에서 15년을 보낸 블룸버그는 월가의 이런 난맥상을 꿰뚫고 있었다. 원래 공학도였던 그는 살로먼 브러더스를 떠나기 2년 전 전산시스템 업무를 책임졌다. 그는 컴퓨터 기능과 금융정보를 결합한 단말기를 개발한다. 월가가 필요로 하는 금융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대히트였다. 창업한 다음해인 1982년 월가 증권거래 전문회사 메릴린치가 첫 대형 고객이 되었다. 메릴린치는 블룸버그의 `마켓마스터`라는 단말기 22대를 설치했다. 더 중요한 것은 메릴린치가 3000만달러를 블룸버그에 투자하면서 30% 지분을 확보한 점이다. 최근 금융위기 때 메릴린치가 지분 상당부분을 블룸버그에 되팔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메릴린치가 사실상 전략적 파트너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 셈이다.
이후 블룸버그는 승승장구해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월가를 장악한다. 이에 따라 1987년까지 5000대의 단말기를 설치한다. 블룸버그는 1986년 회사 이름을 현재의 블룸버그통신(Bloomberg L.P.)으로 바꾼다. 그후 블룸버그는 증권거래 플랫폼인 `블룸버그 트레이드북`을 비롯해 블룸버그 메시지서비스, 블룸버그뉴스 등을 출범시킨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말 현재 북미지역 10만대를 포함해 전 세계에 25만대의 단말기를 설치했다. 한때 통신의 대명사였던 로이터를 제압한 블룸버그는 통신은 물론 라디오방송과 TV도 보유하는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등장했다. 전 세계에 있는 기자만 2000명에 달할 정도다. 지금은 블룸버그가 없다면 전 세계 금융거래는 물론 외환이나 상품거래를 상상하지 못할 정도가 돼버렸다.
이러한 사업 확장 덕분에 마이클 블룸버그는 돈방석에 앉는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3월 그의 재산가치를 180억달러로 추정했다. 세계에서 23대 갑부로 꼽았다. 블룸버그는 이 회사의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뉴욕 = 김명수 특파원 / 서울 = 정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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