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 공주 이야기> 바바라 G 워커 지음/박혜란 옮김/뜨인돌
더운 여름날의 화장실, 살집이 풍부한 나에게는 일석삼조의 공간이다.
배설의 쾌감을 만끽하는 장소인 동시에 앉아서 힘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땀을 흘릴 수 있어
살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읽지 않은 신문이라든가 아이가 가져다 놓은 책들을 뒤적이면서 잊었던 단편적인 지식을 보충하기도 하기에
집에서 화장실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대게는 만화가 대부분인데 <흑설공주>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 아들의 독서 취향이 바뀌었나 하는 의아함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는데 화장실을 나와서도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고 뒷장을 확인할 때까지 계속 읽고 말았다.
그리고 좀 아쉬운 감은 있지만 신선한 독서였다는 평가를 해본다.
<흑설공주>라는 제목 때문에 백설공주를 패러디해서 이런 두께의 글을 적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비틀어지고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되어 모아져 있었다. 우선 제목부터 한 번 보자면 흑설공주, 못난이와 야수,개구리 공주 신데헬,벌거벗은 여왕님,
질과 콩나무, 늑대 여인 등등이다. 원제목은 익히 상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바바라 G. 워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학자라고 한다.
1993년 미국 휴머니즘협회에서 '올해의 여성 휴머니스트'로 선정되었고, 1995년 펜실베니아대학으로부터
'역사를 만든 여성들 상'을 수상했단다. 지은 책으로 <흑설공주 이야기>, <여자를 위한 신화와 거짓말 백과사전>,
<냉소적인 페미니스트>, <아마존> 등이 있단다.
이런 작가의 이력으로 짐작하겠지만 이 책 <흑설 공주의>의 작가의 관점은 기존의 이야기가 이미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것에 반기를 들고 있다. 워커는 동화 속에서 여성들은 착하고 예쁜 여성 아니면 나쁘고 못생긴
여성으로 이분된다는 점, 여성을 괴롭히는 것은 또 다른 여성이라는 점,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
등이 남성의 시각에서 규정지어진 여성임을 드러내고 이야기 속의 남자 주인공을 여성으로 대체하거나 주인공 여성들에게
새로운 케릭터를 제공한다.
동화 백설공주 이야기는 독일의 그림형제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림 형제는 대표적인 낭마주의 작가의 일원으로
평가 받는데, 이 시기의 낭만주의는 괴테나 실러의 고전주의에 대하여 정신과 공상의 자유를 내세웠고
동화나 중세 경건주의 등의 세계를 지향하여 설화나 소설의 새로운 분야를 열 것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백설공주>에는 요술거울, 독사과, 일곱 난장이 등의 상상적 요소들이 등장하고 있고, 경건에 유사한
권선징악적 결말로 교훈을 던지고 있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동화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쯤은 다른 내용이나 결말을 상상해 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라는 패러다임을 심어주는 것이 좋은 어른 혹은 좋은 부모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우리를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바바라 워커라는 이 여자가 아주 보기 좋게 이런 고정 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상상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녀의 질문은 이런 식이다.
왜 백설공주는 하얀 피부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을까?
계모는 왜 공주를 시기할까?
또 공주는 왜 난장이와 왕자의 도움을 받을까?
또한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의 여성 알라딘은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비는 남성 알라딘과는 달리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모두가 평등한 행복을 누리는 소원을 이룬다.
그리고 왕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변하는 기존의 인어공주 대신
당당히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인어공주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의 사랑을 얻은 야수가 마법이 풀려 잘 생긴 왕자로 변하는 대신
그대로 야수로 남는다. 야수의 말처럼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는 각 이야기의 시작 페이지에 그 이야기의 관점의 변화와 근거에 대해 짧게 서술하고 있다.
신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여성신이 남성신으로 대치된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역사를
신화로 왜곡하려 한 남성의 치졸함을 지적하는 것을 빼놓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이 잃어버린 자기 자리를 찾는 것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 때 여성 운동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 여성이 소외되고 억압받는 세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으므로, 그것을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에 들이 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여성이 남성에 대항하여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남성들이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스스로 탈피하려 하고 있고, ‘혼자 외로운’ 가장이라는 굴레가 주는 권위와 체면보다는
같이 벌어서 조금 덜 피곤해지는 것을 택한다. 스스로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감추어야 미덕이었던
‘남자의 눈물’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간적인 존재임 확인 받기 위해서는 여성 앞에서도 흘러야 미덕인
‘사람의 눈물’이 되었다.변했다.
변했다. 변한다. 변할 것이다.우리는 어떤 이유로건 항상 변화를 추구한다.
어느 기업의 총수는 가족만 남기고 모두 바꾸라고 했다. 변화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변화를 고정 관념의 틀 속에서 인식하고 새로운 고정 관념화에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이런 생각은 ‘변화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만들게 한다.
여물지 않은 생각이 또 다른 여물지 않은 생각을 만들었다.
장자도 이런 후회를 호접몽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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