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은 포기다”는 말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소위<기회비용의 원칙>이라고 한다,
즉, 천원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샀다면, 그것은 천원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의 포기를 의미한다.
흔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 곧, 포기의 연속이라고 한다.
선택 전의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남아있으나, 선택 후 다른 모든 것은 불가능의 영역 속으로 사라잔다.
이는 선택에 있어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모든 선택은 다른 가능했던 선택에 대한 포기이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포기를 위한 선택은 아니다.
고의적으로 포기를 위해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필경 자신이나 타인에게 화가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이라는 단어 앞에 기대와 불안 두가지를 다 가진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최대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실패없는 선택을 하려 노력하지만 실패에 대한 불안은
매번하는 우리의 선택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그래서 사람은 두가지 선택을 한다. 선택하기를 좋아하거나 선택 자체을 포기하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한 사람은 움빨을 믿고 산다. 그들의 인생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 이미 아니다.
선택을 즐기는 사람들은 살패의 가능성 조차 열어 놓고 즐긴다.
실패를 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넓혀 놓을 수있으면 그는 능력있는 사람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앞의 따온 글이 맞다면 삶은 포기의 연속이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포기다”>라는 글의 치명적인 모순은 연속성의 문제다.
선택은 선택으로 이어지지만 포기는 이미 불가능의 영역 즉 불영속성의 영역으로 사자졌으므로
또 다른 포기와 이어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인 포기를 하는 사람을 본다.
하나의 포기가 또 다른 포기를 또 또 다른 포기를 이어가는 사람.
그들의 특징은 시작은 있으되 끝맺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선택의 연속이 포기의 연속이 되는 것은 끝맺음이 없는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택은 포기가 아니다. 모든 선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다만 우리가 끝맺음을 갖지 못한다면 모든 선택은 포기로 귀착된다.
불가능의 영역, 불영속성의 영역으로 빠진다는 이야기다.
우리 삶 자체는 불가능의 영역에서 불가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면서 가능의 영역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은 단 한 순간도 불영속인 적이 없다.
고은 시인의 표현처럼 과거는 확실히 현재들로 채워져 나아가고
현재는 확실한 미래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그런 미래를 채워 나가는 틀이요 재료요 기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택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현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톨스토이의 질문과 답변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일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이며,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이고,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천천히 음미하고 다른 대답을 한 번 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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