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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들

지천명 묘지명(知天命 墓誌銘)

 

 

[ 지천명 묘지명]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배웠다던
이제 갓 50줄을 넘긴 선배 하나가
어린 아이들 놀이터인줄로만 알았던 PC방
역사적 사명이 깃든 이 땅 한 곳에서
사명도 숨기고 더 이상 숨쉬지 않는 이유도 숨긴 채 
그가 빌려 살던 거죽 하나 버려두고 갔다고 한다.

 

그렇게 갈 것을,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럴리가,
그랬어.....

 

 

남아 있는 자들의 교만 끝에서 나오는
저런 단순한 판단에 조차 항변하지 못하고
세치 혀끝에서 그가 살았던 삶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도
이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 K형

 

한 때 우리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 처럼
형도 남질세라 당당했고
매일아침 모자란 자신감에 용기의 보톡스를 놓아가며
잘난 사람 행세를 하려 하며 살았는데

지금도 별로 잘나지 못한 그들이 지금 형의 이름 뒤에
혀를 차고 있소이다.

 

그곳에서 보이오,들리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들리오?

 

K형,
인간은 생명으로 살다가 생명으로 인해 죽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살다 의미로 인해 죽는 지도 모르오.

 

형은 무슨 의미를 그 입 한가득 물고 가셨소? 

 

나는 또 무슨....

 

 

 

2010년 가을 어느 선배의 부고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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