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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퇴계와 율곡, 포용과 비판

 

조선시대 도학(주자학)의 두 축을 이루는 거장을 퇴계와 율곡으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퇴계는 천성이 봄바람처럼 온화한 분이라 누구를 엄격하게 꾸짖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율곡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서, “그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논변한 것을 보면 번번이 앞 시대 유학자의 학설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먼저 그 옳지 않은 곳을 찾아내어 배척하기에 힘써서, 그가 다시는 입도 뻥끗 할 수 없게 한 다음에야 그친다”<『答李叔獻』>는 말로 율곡을 엄중하게 질책하였던 일이 있다. 율곡이 이런 꾸중을 듣고 나서 과연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지적을 들으면 누구나 얼굴이 붉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문하는 자세에도 기질적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옛 유학자의 글을 대할 때에, 퇴계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읽고 자신의 인격을 닦아가는 데 길잡이로 활용하는 경건한 수도자형 인물이라면, 율곡은 이론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논리에 어긋나는 점을 남김없이 예리하게 지적해내는 합리적 분석가형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계의 수도자적 자세에서 보면, 율곡이 옛 유학자의 이론적 결점을 샅샅이 찾아내어 비판하는데 몰두하는 태도는 누구를 본받아 배우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의 글을 읽거나 남의 말을 들을 때에, 누가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비판을 해주면, 눈이 환하게 열리고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식이 지닌 지성이 소중하지만 포용과 이해의 자세를 지닌 덕성이 결핍되면 각박해지는 병통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와 토론은 율곡적인 입장이었지 않나 싶다. 율곡의 입장에서 공부하되 퇴계적인 표현을 한다면 원숙한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