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歸路]
당신이 살았던 시간을 곱게 빻아
풍랑없는 호수 위에 작은 배를 띄우고
당신이 잡아주던 손에 담아
기억을 풀듯 손끝에 부벼 날립니다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
당신의 기억마저도
시간의 바람에 날리겠지만
문득 문득 찾아오는 이 감촉에
아주 가끔은 마음이 울겠지요.
다시는 생각치 않으리라
다시는 울지도 않으리라는 맹세가
그냥 부질없이 부스러지는 그런 날이
가끔 행복이 찾아주는 날인 줄 알고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 밤길에 지친 창가로
반딧불이들이 춤을 춥니다.
저들은 어두운 밤
그들의 작은 빛으로 인해
산과 들이 제 모습을 알아차린다는 걸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까요
사람은 혼자 빛을 발하며 살 수 없는데
별이 구름에 가린 밤에도
풀숲에 별빛으로 숨을 수 있고
유성의 군무처럼 작은 하늘을 떠다니는
저 위대함을 그들은 알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단단해지는 망각만큼 기억은 힘없이 부서지고
편한대로 묶인 기억들이 반딧불이의 군무가 되고
마음은 덩달아 황홀경의 춤을 추고 맙니다.
잊으려 떠나고
잊은채로 돌아오기 위해 경건했던 시간이
무너집니다.
참 알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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