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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의 단상

도쿄에서의 마지막 통신이 되겠네요.

내일이면 드디어  아주 호흡이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게된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놓이고

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조급해 지기도 합니다.

행복론 토론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올해 여든넷이 되신 할아버지의 안내로 신주쿠에 있는 50년된 장어구이집에서 점심을 하고

신주쿠교엔이라고 왕이 산책하거나 꽃놀이 행사를 하던 공원을 갔었습니다.

(이 노인분은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저와는 사업상의 파트너입니다)

봄에는 사꾸라가 만발하여 눈과 마음을 즐겁게하고, 여름에는 푸른 잎의 아름드리 나무가 편안함과

휴식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사색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공원을 주변으로 돌아 느린 걸음으로 1시간 30분 가량 걸렸으니 크기를 짐작하시겠지요?

(부산 사람에게는 태종대를 걸어서 도는 정도의 크기라고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운동삼아 잰걸음으로 걸어도 30분은 족히 걸릴 법한 공원이었습니다.  

 

나이드신 분의 보조를 맞추느라 걸음을 느리게도 했었지만,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아름드리 나무와 탁트인 잔디밭 풍경에

우선 호흡이 길어지고 걸음의 폭을 넓히게 되더군요.

일본식의 조경이된 곳이며, 중국에서 지어서 기증한 정자가 있는 곳,

또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손으로 젓가락을 잡은 모양으로 길을 내고

각각의 길을 따라 이중으로 나무가 도열해 있는 곳에는 나무 사이 사이에 벤치가 있어

그곳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곳도 있었습니다.

열대 식물원도 있었지요.

 

동경에 업무차 여러 번 왔었지만 건물과 전철과 사람들과 그 사이를 오간 말들

그리고 밤거리의 풍경이 느낌의 대부분이었던지라 이렇듯 엽록소 충만한 공간에서

시간을 생각해 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노인은 저와 함께하는 시간과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산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이

무척 기분 좋으셨나 봅니다.

이 곳의 새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아 노인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있는데

그 과자 부스러기를 주니 어디론가 가지고 가서 먹고는 이내 곧 돌아오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우리 나라의 고래밥같은 과자를 하나 사서 본격적으로 새들을 불러

모았지요. 한 30분 가량을 노인과 그렇게 놀았습니다.

공원을 나오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정말 재미있게 잘놀았다고, 아주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제 나이에 그런 것이 재미난 놀이가 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기에

제가 오히려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내 생전에 다시 이곳을 올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씀을 이으시면서

좀은 아쉬운 듯한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아마 제게는 다시 올 수 있을 시간은 분명히 있겠지만

당분간은 그런 아쉬움의 눈길로 이 공원을 바라보지는 않겠지요.

 

공원 문을 나서면 바로 아름드리 나무가 각지고 멋없는 일본식 빌딩으로 대치되고 맙니다.

 

자연은 세상의 소음을 견디게 해주는 비타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과 헤어지고 혼자 신주쿠에서 이케부쿠로 쪽으로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대하며 내 눈이 살아있는가를 의심하기보다

매일 아침 하늘을 대하며 내 눈이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분이 그렇듯 아쉬워하는 시간이 내게도 있기를 소망하자고.

그 분은 일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는 분이거든요.

70 먹은 조카가 집에서 논다고 야단을 치셨다는 그 분,

제게는 시간의 가치와 무게를 가르쳐 주신 소중한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