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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옛날의 사금파리] 박완서 지음/열림원

 

활자 중독은 아니더라도 뭔가 읽을꺼리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에
딸아이 책상에 겉장이 동화책같은 그림이 그려진 책을 하나 발견했다.


'손 때 묻은 이야기 ,옛날의 사름파리,박완서 지음'이라고 큼지막한 글자의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끝장을 볼 때까지 놓지못했다.

 

작가는 1931년 생이다. 내 아버지보다 8살 연상이니 큰고모 나이쯤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이야기이며,
시골 여자 아이가 서울로 옮겨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담스런 문체로엮고 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삶의 내용들이 그리 낯설지만도 않은 것은 자라면서 부모님과  할머니로 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고, 또 일부의 이야기는 나의 유년 시절의 창을 통해서도 볼수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궁핍한 도회는 시골이나 다름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도, 주인공인 저자는 시골의 너른 마당과

술래잡기 놀이 하기에 안성마춤이던 옹기종기 놓인 장독대에서 작고도 넓은 어머니의 자궁같은 향수를 느낀다.

 

작가가 풀어 놓은 이야기 중에 한 대목이 시선을 끌어 몇번이고 앞뒤장을 다시 뒤적이며 읽어 보았다.

' 그 때 쯤 엄마는 등잔불과 화로를 조용이 윗방으로 옮기고 장지문을 당으셨다.
  그리고는 인두를 화로 깊숙이 꽃으시면서 반짓고리를 꺼내셨다.   
  이렇게해서 엄마와 단둘이 되었을 때 어린 가슴이 간질간질하도록 행복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도대체 가슴이 간질간질하도록 행복한 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마 사내아이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 구지 내 경험을 반추해 볼라치면

아마도 아버지가 출장가고 없는 날 엄마 옆에서 자던 그 기분이 아닐까 싶다.
구지 장남이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일찍부터 할머니 품에서 잤기 때문에, 엄마와 같이 자는 것이 신이 났었던 것 같다.

그런 날은 할머니는 서운한 속내를 숨기지 않으셨고, 다음날 할머니와 자면서 그 마른 젖이라도 만지고 잘라치면

'느거 애미한테 가지 와?'하시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을 기억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구지 왜 아빠와 같이 잠을 자려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된다. 

 

책에서 주인공은 이야기꾼 어머니를 상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정서적으로 풍요한 어린시절이

바로 그 이야기꾼 어머니 덕이었다고 말한다.사실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셨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잘 해주는 어머니는 아니였다. 오히려 학교 근처에도 가 본 일이 없으신 할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셨다.

여동생이 아직 강보에 있어 혼자 할머니와 잘 때에는 혼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독차지 했고, 여동생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조를 때는 나는 비교적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으므로 입으로는 그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냐고

핀잔을 주고 돌아 누워 자는 척하면서도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내어 놓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아침을 맞곤했었다.

 

여기서 우리가 잊고 사는 한 대목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가족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 딱딱하게 표현하면 구전 문학이랄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무엇보다 훌륭한 국어 교육의 현장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을 하고 또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들은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에게 전하면서 말하기와

발표력 향상 훈련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번 듣는 이야기였지만 항상 같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 앞에서

기억력을 뽐내기도 했고, 장화 홍련이니,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니 하는 뻔한 그 이야기들 속에서도
할머니의 삶의 질곡이 담겨있어 해석이 조금씩은 달랐기 때문에,같은 이야기지만 물리지 않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내 아이들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나이가 지났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한 번 도 해준 기억이 없는 것이 미안하다.

 

책을 덮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묵화처럼 지나간다.
색깔은 기억 나지 않지만 왠지 부담이 없고 푸근한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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