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오 저 / 은행나무 출판.
이 책을 읽고나서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1.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소설을 읽는 이유부터 생각을 풀어본다.
심심해서?
간접 체험?
남이 어떻게 글을 쓰나 옅보기 위해서?
위의 이유들도 나름대로 내게는 적용되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좀더 본질적인 이유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주 단순하게도
'소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소설은 이야기다.
그래서 재미도 있고 때론 공감도하고 때론 반발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문자로 표현된 이야기와 눈을 통해 대화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혹시 작가와 대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소설이란 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별개의 사람과 줄거리와 언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작가보다는 이야기 자체와의 대화 쪽이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다른 이유는 이야기를 통한 재미,감동, 느낌 그리고 생각거리들 때문일 것이다.
재미나 감동이나 느낌이나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소설은
아마 몇 장 넘기다가 말지도 모른다.
한 소설에서 이 모든 것을 다 찾아 즐기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1982년 말.. 그러니까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난 다음 나의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면서
나에게 고전을 읽을 것을 주문하셨다. 고전 한 권당 1만원,
꽤 큰 금액이었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나는 고작 한달 동안 2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유는 번역문체의 딱딱함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따라서 이야기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는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감동이나 느낌이나 생각거리들을 찾아야만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아직 스스로 결심하여 일기를 쓰기 전이었고,
당시 고전 한 권을 읽는 것 보다 만화방에 진열된 2000여권의 무협지를 읽는다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자랑스런(?) 목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고전 읽는 값으로 받은 돈을 무협지 읽는데 다 투자했지 않나 싶다.
그런데 40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은 소설에 조금 무게 감이 있는 것이 좋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시간이 아깝고 책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때론 '아내가 결혼했다 '처럼 파격이 있는 것이 좋다.
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문장 혹은 언어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상황을 표현함에도 그저 평범한 언어가 아닌 아주 맛깔스럽고 이색적인 언어가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일상의 표현과 구분되는 소설적 표현이 존재한다.
이 표현들을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내 글을 쓸 때 조금씩 풀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들은 어쩌면 식상한 것들이다.
철학적인 사유들은 너무 어렵게 표현되거나 아니면 그리 창의적이지 못한 체로
내 생각과 글 속에 적용되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데 소설을 통해 얻은 이런 언어들을 커닝해서 정답을 쓸 때처럼 묘한 쾌감도 던져준다.
그리고 종종 그런 언어들은 내 스스로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치장하는 용도로 쓰일 때도 많다.
고수들 앞에서는 금방 뽀롱나는 밑천이지만
그래도 하수들 앞에서는 치사하게도 내 알량한 자존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소설을 읽는 이유들 때문에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우선은 줄거리를 본다.
줄거리는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줄거리란 것이 작가적인 입장을 취해서 보면, 소설의 앞부분에서 다음 줄거리나
소설의 말미를 상상하게 해주는 재미를 던져준다.
내가 상상한 줄거리가 맞으며 기분 좋고 안 맞아도 내가 새로운 소설을 각색한 셈이 되니 기분이 좋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는 영화를 보면서 복선을 발견하고 이야기의 전개를 읽어내는 재미와 유사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또 하나,내가 생각한 줄거리 대로 가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반전'이란 부분은 정말 많은 생각거리와 상상력을 자극해준다.
그 다음이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에 대한 묘사 혹은 그들의 다소 정형화된 캐릭터들이다.
내가 나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그들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정말 내가 흥미 있어 하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발견하면
그 또한 많은 즐거움을 준다.
그 캐릭터로 인해 내 이야기가 풍성해지기도 한다.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내 '구라'가 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한 문장과 표현들이다.
소설가들은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사람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런 표현들은 내가 사람들을 판단하고 표현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에 대해서는 판단도 하지만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란 것이 나의 언어로는 애매모호한 것들이 많은데 소설가들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소설책을 한 권 읽고 나면 사람에 대한 나의 표현이 풍성해진다.
이제 <공중그네>로 가 볼 차례인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드라마의 대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이라부와 마유미라는 다소 기괴한 콤비의 설정이 그랬고, 요즘의 드라마가
시즌 1,2,3으로 나가면서 한 시즌의 매 에피소드 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지만 그 주된 흐름은 바로 매회 바뀌지 않는 주인공들의 캐릭터 때문에
특정 문제가 해결되거나 하나의 시나리오가 단락 되는 그런 것들이 특징인데
바로 이 소설이 그랬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린 의사 이라부,
그리고 그 고정 관념의 파격을 증명하고 강화하는 조연 간호사
다소 황당한 이 콤비는 사실은 진짜 실력을 감춘 혹은 신기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기인들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 기인과 만나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진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성격이나
배경은 다르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문제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란 점,
그 문제라는 것들이 대부분은 각각의 직업 세계에서는 정말 치명적이라는 점,
그 문제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하는 모습들은 일종의 강박증 증세를 동반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직업들은 모두 대중의 선망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직업이라는 점 등등이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은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찾게 되고,
의사 이라부는 그들이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바라보게 하거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기자의 역할( 엄밀히 말하면 코칭이라고 보여진다)을 할 뿐
의사라는 전문적인 직업이 기존의 사회 통념상 제공해야 하는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라부를 통해 우리가 정신적인 문제를 바라볼 때 동심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점,
그것이 어쩌면 가장 손쉬운 자기 조명이고 상황 판단이면서 문제를 정말 개방적 자세(Oprn-minded)로
대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제시해준다.
'아이' 혹은 '동심'은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해보고, 그 반응에 따라 즉각 즉각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가는,
세상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하기 보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함으로써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전혀 스트레스가 없는 ‘인간 자아의 상실된 유토피아’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성공 강박증이나 스타 강박증들이 바로 남을 의식하는 이유 대문이다.
그래서 혼네(본심)와 다떼마에(예의상의 표현)이 생겨난다.
혼네와 다떼마에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도 당황스럽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 역시 그 괴리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다떼마에를 배우기 전의 혼네를 고집하는 의사 이라부를 통해
어쩌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부조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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