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독후감

바람의 화원

 

[ 바람의 화원 ]

이정명 소설 |멀티하우스

 

평소 시를 좋아하고 습작도 하지만 남의 시를 잘 읽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 나보다 더 뛰어난 그들의 기법과 시적인 표현들로 인해
나의 귀얇은 문심이 손가락이 자판위에서 불면의 방황하게 했던 경험들 때문이다.
시인은 아니지만 자작시에 타인의 영감이 침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유치하지만 고집이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을 손으로 꼽으라면 고전 소설 몇권과
대학 때 읽은 소설들 그리고 항간에 유명세 때문에 교양의 자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읽은

몇몇 장편 소설들이 고작이다. 물론 무협 소설까지 포함한다면 상당 수 될 것이다.
대신 시작법과 소설작법에 대한 책은 정말 열심히 정독하였다.

이유는 그 작문 지식에 나의 생각과 경험이 더해진다면 나의 소설이 나올 것 같아서 였다.

그러나 시와 마찬가지로 소설 역시 녹녹치 않은 분야이다.   많은 독서를 통한 다양한 경험과 

사색과  그리고 진실한 삶의 결과가 소설을 쓸 수 있는 기본이라는 것을 나이가 좀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런 문학적인 개인사로 인해 소설을 읽으면서도 소설의 주제, 구조, 주인공과
그들의 내레이션 혹은 대사를 주의 깊게 본다. 달리 말해 분석적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바람의 화원 >을 통해 본 소설가 이 정명이 글쟁이임은 분명하다.
노인과 바다와 같은 단순하면서도 심리적 긴장감과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완결성은 없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소설이 추구해야하는 일차적인 목표인 '읽는 재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재미는 바로 독화(讀畵)에 있었다.동시대를 살았지만 화풍이 너무도 다른 두 화공의 그림을

정말 오랜 시간 철저히 분석하고 읽어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대비와 사건의

연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독화란 것이 비교적 소설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대상이고 주제였기 때문에 신선함이 있었고

이런 팩션류의 소설을 좋아하는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정말 무관해 보이는 그림을 연관시키고 그 속에서 로맨스와 범죄와 사건과 심리를 뽑아낸 작가의

상상력에 정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글을 좀 읽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도 없는 구석도 많다.
추리소설적인 요소는 이미 소설의 초반에 심어진 복선들이 치밀하지 못한 구성 속에서 중반에

다 풀어져 버리고 말아, 긴장감의 맥이 풀려버린다. 화원 강수항의 사도세자의 어진의 미스테리는

이미 서징의 조각그림에서 대부분의 힌트가 주어졌고, 소설 속에서 서징의 딸인 신윤복이 그 열쇠를

풀어야하는 구도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신윤복이 그 어진을 풀어내는 것은 구지 강수항의 죽음

전의 여러 장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사건을 나열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차차리 신윤복이 어진을

그려오고 그가 그 열쇠를 푸는 과정을 설명하게 하는 것이 보다 긴장감있는 구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용의 무협소설도 추리적 요소를

이렇게 풀어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로맨스 또한 초점이 흐려져 있다. 신윤복과 정향의 로맨스가 좀더 부각되었더라면 아마도 조선조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파격을 선사했을 것이고, 김조년의 정향에 대한 로맨스가 삼류 멜로가

되지 않도록 사전에 많은 포석을 깔아두고서도 결국 삼류 멜로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랑의 설정은 그 관계부터가 도덕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의 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갈등이 고조되고 해소되는 과정이 있었다면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랑은 좀 더 새로운 모습의 로맨스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들 때문에 소설에 대한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것이 거슬린다.
아마 좀 눈치 있는 독자라면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영화의 한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가 하는 독백의 장면 말이다.
그리고 점을 잇는 선에 대한 부분은 이미 식상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논쟁은 이미 진중권 교수의 미학 강의에 노출된

독자라면 시뮬라르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알 것이다. 작가는 이 시뮬라르크에 있어서도

그의 독자적인 논리를 개발해 내지 못했다. 그저 자중에 하나의 단서로서 활용될 뿐인 것을

너무 길게 끌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보여지는 독화와 암호에 관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징이 그림도 잘그렸지만 여러가지 의기(倚器)를 만드는 것에

능했고 그림속의 암호화에 조예가 깊은 점 그리고 김홍도의 그림 속에 암호를 넣고
그를 해독 능력을 보유한 것등은 다빈치코드에서 받은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에서 그 구도와 등장 인물 수를 가지고 매트릭스를 만들어 낸 것은
작가의 뛰어난 능력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이 소설은 신윤복을 여자로 그려 낸 파격과 김홍도의 서민적 취향적 그림과 신윤복의
양반취향적 그림 그리고 김홍도의 남성적 관점과 신윤복의 여성적 관점을 잘 대비하여 드러낸
점등이 소설의 하부 구조를 받쳐주기 때문에 많은 독자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 이정명이 유명세를 얻는 소설이 아닌 한국 문학사의 획을 다시 긋는 소설로
우리 문단에 서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는 것은 그의 작가적 상상력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재미있었고,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소설이었다.       

'서평·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고수  (0) 2009.03.04
사랑, 그 환상의 물매  (0) 2008.10.17
말을 듣지 않는 남자,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0) 2008.10.10
사랑의 기술  (0) 2008.09.28
시 읽는 CEO  (0) 2008.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