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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 전혜린 / 민서 출판

 

전혜린,이 이름을 20대에 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녀의 일기를 묶어 놓은
이 책<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20대를 한 번 되돌아 볼 것이다.

 

나의 20대는 소위 욕망이 좌절된 상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새로운 욕망을 지피고 있을 때다.

또한 대학을 오기 전까지 이 사회에 가졌던 모든 사고와 관념이
소위 진실 앞에 무참히 무너져 버린 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믿었고, 부모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신봉했다.

정말 액면 그대로 믿는 청소년기...
어른의 칭찬을 받고 어른의 눈에 맞춰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을 따르는 줄 알았다.

그것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혹은 ' 모범'이라는 단어에 나를 가두면서도 

그것에서 만족과행복을 느끼던 때, 그런 때가 나의 청소년기다.
하기야 그 때는 대부분 그랬다.

지금아이들에 비하면 그 때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범생 수준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녀석들이 가던 소위 S대 입학에 좌절해야했고
한해를 꼬박 고등학교 4학년으로 보냈다. 그러다 보니 먼저 대학을 진학했던 친구들이
민주화와 또 학생 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교적 보수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한 학기 동안 접한 당시 사회의 진실은 나의 온 감각과 이성과 영혼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아픈 사랑의 경험...

그 아픔을 나는 진정 소화하지 못하고 그저 어두컴컴한 학교 앞 카페에 처박혀서 글을 쓰는 행세를 했다. 

그것은 허세였고 첫사랑에 좌절당한 아픔 아니 영광스런 젊음의 상처에 대해 경의를 표해주기를 구걸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인물이 바로 전혜린과 니체였다.

니체는 진작 대학생티 좀 낸다고 학교 앞 헌책방에서 구한 책으로 시작했었지만

그리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당시 나의 철학은 이빨의 이빨을 위한 이빨만의 철학이었고 ,

삶의 문제에 대한 객관적 고민이나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따위는 막걸리 안주였다.

소위 철학운운하는 것은  대학생 티를 내는 허세였다.

 

그러다가 책을 좀 읽는다는 선배들이 전혜린이란 여자에 대해 그녀 듣지도 않을텐데 극 존칭을 해가며

그녀의 삶과 정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들었다. 그저 아는 체나 할 요량으로 남 몰래 전혜린이란

이름이 박힌 책을 샀는데 그것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나서 <그리고 아무 날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열열한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내가 보기에 그녀는 현실에서의 모순에 대해 고뇌하고

또 자신의 삶에서 삶의 액기스를 찾고자 했고 ,자신의 영혼을 열어두었으며,

이유있는 자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시간 속에 각인시킨 여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의 영향은 아주 컸다. 그녀로 인해 철학에 욕심이 생기고 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나는 니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니체는 다시 내게 이런 욕심을 주었다.

'나도 니체처럼 아무도 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아무도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나는 고독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고 

나의 고독 속에는 흡사 교본처럼 전혜린이란여자가 동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25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대한 그녀는 변해있다.
더 이상 맑은 이성과 순수와 부조리에 대한 기준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있고
나의 고독에 어떤 조언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좀 깨어 있는 여자에 불과해졌고,

그녀의 언어는 그저 4차원적인 이명처럼 힘없이 울리고 만다.

 

그녀는 살아 있어야 했다.

그녀의 정신과 언어가 거울 앞에 앉은 누님이 되고 내 고향 먼곳을 풀어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그녀의 언어가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나는 나이를 먹고 그녀 보다 오래 살고 있는데 그녀는 아직 그대로다.
바보같은 여자, 전혜린.
그녀에 대한 향수로 허기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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