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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난중 일기

 

 

[ 난중 일기 ] 이순신 저/ 송찬섭 편집 / 오래된 책방 간

 

난중일기, 대한 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책이지만 읽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그 책이다.

우리 역사의 자랑스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이순신이 1592년부터 마지막 노량진 전투에서 그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약 7년간의 기록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목적이 있지만 뭔가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혹시라도

있을 다른 독자를 의식할 수 밖에 없어 스스로 솔직한 기록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의 가식이나

자기 변명의 장이 되기도 하는데, 이순신의 난중 일기는 그의 강직한 성품 탓인지 아니면 전혀

(‘거의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몇 개의 단어만 나열하여 남이 읽어도 모를 표현도 있으니…)

남을 의식하지 않은 이유인지 그의 일기는 상당히 솔직하고 진솔하다.

 

그러나 책으로서의 <난중일기>는 읽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의 첫 번째는 주관적 기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주관적 기술이라 하더라도 필자의 감상이나 감정에 대한 표현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실 관계에 대한 사항이나

그 사실과 연관된 판단적 기술에 대해서는 그 정황이나 전후 사정에 대한 지식이 없이 독자로서

이해가 불가능한 점이 많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시대적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가 약 400년 전의 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는 것은 역사를 전공한다 하더라도 그 일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당시의 군제나 명령체계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를 하지 않고

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죄를 다스리는 대목들에 있어서 목을 메단다든지 목을

친다든지 혹은 그 목을 전시한다든지 하는 것은 당시 관리의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어느 정도 기준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구국 영웅이 인명을

경시하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요인 일 텐데 굳이 세 번째 이유를 들자면 한문을 번역하는 것이어서 번역자의 역량에 따라

그 감정의 전달이 다소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에 글귀에 초점을 둔 무미건조한 번역일 경우

이 책을 읽어 나가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네 번째 이유는 비록 이 일기 책이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개인의 7년간의 기록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 시간의 기록

중에는 일상적인 반복들이 딱딱하고 간결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개인의 잡다한

일상성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힘들 것이다. 이상 네 가지의 읽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 우리가

참고 읽어야 하거나 우리의 지식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장에 도달하기 힘들 것이다.

 

< 난중일기>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세뇌된 성웅 이순신이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는

몇 가지가 사항이 있다. 그 첫째는 그의 몸이 아픈기록들이다. 이 기록에 집중해보면 그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조금 곱씹어 보면 그가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병원에 자주 다닌 돌팔이 소견으로 보면 그의 병증은

대부분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 장애거나 몸살 등으로 보이는데 그런 병증을 7년간의 기록 마지막

에 까지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그는 병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상당히 고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면서 세계사에

빛나는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 낸 그는 대단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내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 중에 무과 시험에 임해서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지자

버드나무 가지로 묶어서 끝까지 시험에 임했다는 내용이 생각나다. 의지가 대단할 뿐 아니라

독한 사람이다. 그런 독종이었기에 그의 고난의 인생을 승이로 이끌어 나가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그의 꼼꼼함이다. 나는 대체로 영웅은 호걸이다라고 생각해서 영웅이 좀은 성격이

덜렁할 것 같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삼국지나 수호지 등의 중국

영웅들에 대한 관념을 고교 시절에 탐독한 무협지의 주인공에 오버랩해서 생긴 편견이 아닌가

싶다. 영웅은 뛰어난 능력자이면서 리더십이 강하고 애주호색하며 의리가 있고 불의를 참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다. 어쨌든 그는 상당히 꼼꼼하게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긴 사람이다.

이런 꼼꼼함은 그가 이기는 전쟁을 하게 한 결과를 낳았다. 전쟁 준비를 꼼꼼히 하고, 또 적의

동향이나 민심의 동향 등의 정보를 꼼꼼히 챙겨 전황과 정황을 확실하게 챙긴 사람이다. 한 사람

의 보고만 믿지 않고 다른 보고를 통해 같은 내용이 확인될 때 그는 그것을 사실의 근거로 삼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가족사랑과 부모 섬김에 대한 그의 성정이다. 영웅이 효자인 것은 크게 배치되는

이미지는 아니나 그의 모친에 대한 효의 실천은 거의 매일 어머니의 안부를 묻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확인하는 등의 행동들은 영웅의 선이 굵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세밀한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에 다소 의외인(?) 면이 있다. 그리고 집안의 셋째로서 돌아가신 형들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챙기고 그 안부를 걱정하는 것이나 병이 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한 대목에서는

요즘 들만 낳아 잘 기르자세대 아버지들의 자식사랑 같은 극성스러움도 보여진다. 그리고 아들

면이 왜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도 장수로서 목 놓아 울지 못해 한적한 집을 찾아

목놓아 울며 혼자 그 슬픔을 토로했던 아버지 이순신, 가족 앞에 한 없이 여린 영웅이다.

 

네 번째는 원균에 대한 기록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가소롭다혹은 해괴하다라는 평가로 일관

한다. 물론 원균이 선조와 합작해낸 이순신 죽이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성웅

이순신이 군사 독재 정권의 자기 정체성 합리화의 일면으로 역사에 등장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 급부의 의견도 있어야 한다는 논조로 나온 소설(김탁환의 <불멸>) 때문에 성웅이순신은

인간이순신으로 내려오고 협잡꾼 원균은 맹장 원규으로 묘사도기도 했으나 역사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적통 왕권이 아닌 선조가 그의 치세에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는 가운데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은 이순신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선조가 그를 폄하하기 위한 구실로서 원균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원균에 대해 그가 상관으로 있으면서도 그를 직접 벌하지 못하고 그의 부하들에게 곤장을 치는 정도에 그친 것을 보면 원균이 상당히

중앙 정계에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영웅이라면 그런 정적에 대한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했을 법한데도 끝까지 일기에 점잖은 욕을

쓰는 정도로 그치고 그러다 결국 정유 재란 전에 원균의 모함에 의해 옥고를 치르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 상황에 까지 몰리는 다소 바보 같은 대처로 일관한 것은 그가 너무 체제 순응적이어서 그렇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호흡한다. 우리고 역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역사 속 인물 이순신은 지금 우리 아니 나와는 어떻게 호흡하고 있으며 나와 우리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라고 있는 것인가? 이순신에 대해 많은 현대적 해석이 있으나 성웅이든 인간이든

한 개인으로뿐 아니라 장군으로서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난중일기에서 보여지듯

급박한 전쟁의 기간 중에도 이렇듯 꼼꼼하게 어쩔 수는 기간을 재외하고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기록한 것으로도 높게 평가 되어야 할 것이며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은 해전을 통해 거의

전쟁에 무방비 상태였던 조선의 왕통과 조선의 백성을 구한 영웅이다. 그가 해전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당시 일본군은 해상 보급을 통해 쉽게 수도 함락을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일본의 한반도 지배 역사는 그 궤를 달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공으로 적의 보급을

차단함으로써 사실상 일본의 패전을 이끌어 냈고 그의 죽음과 함께 7년간의 기나긴 전쟁은 막을

내린 것이다. 그가 진중의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했던 말처럼("…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으고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고 엄격히 약속하였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하였다."(정유년 915). 그는 한 사람이 길목을 지켜 천명을 두렵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니 그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한 글이 여러 개 있었다.

그 중 두 가지 정도가 어느 정도 내 생각에 부합한다 싶어 옮겨 본다.   

 

 

폭발적이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무인의 자랑이던 시절에 이순신은 상사인 이일 장군으로부터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결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치사하게도(?) 계급장을 떼이고 군졸로 다시 시작하는 구차한 삶,무인으로서는 치욕의 길을 택한다. 백의종군이란 얼마나 굴욕적인 선택인가. 그런가 하면 당시의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이순신은 상민은 물론 노예들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하여 계속 토론을 한다. 거북선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많은 호탕한 무인과 문신들이 일본을 왜()라 하여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자랑이던 시절에 일본에 대하여 여러 채널을 통하여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한다. 그는 적과의 싸움이 격렬할수록 밤에는 홀로 앉아 묵상하며 수많은 기록을 남기는데 이들 기록에는 승리와 성취에 대한 감정적 도취보다는 현실에 대한 우울한 분석과 치밀한 대책이 나온다. 그리고 수군의 총수답지 않게 자신의 아픔과 연약함을 수없이 토로한다. 과학자도 아니지만 모든 관련된 사람들과 만나서 모든 일을 세밀히 검토하고 분석하고나서 거의 확실한 승산이 있을 때에야 전투에 나선다.

 

이러한 성격과 일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출세하기 힘들다. 자신이 맡은 일에 관련된 실제 상황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냉정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기보다는 상대방, 특히 자기 상사의 기분을 헤아리고 그에 맞는 말과 행위를 해주는데 온갖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출세의 사다리를 쉽게 타고 오르는 법이다.

 

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철저하게 밑바닥부터 다지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실제로 그가 속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나서서 일하는 사회는 발전하는 사회이다. 이순신과 같은 사람들이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회는 퇴보하는 사회이다. 사회는 이순신과 같은 사람을 발탁하고 품어주는 유성룡과 같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내면의 정신과 확실한 실력의 기반 없이 외형의 화려함만 추구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내면의 실력을 꾸준히 갈고 닦는 것은 성실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길이다. 상식과 합리라는 평범한 것에서 시작하여야만 우리는 진정한 위대한 결과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누구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과는 거래하고 꾸준히 토론하는 것은 상식적인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이라는 뿌리에서 출발하지 않고는 비범의 열매에 다다를 수 없다. 일단 남과 달라야 하고 옳건 그르건 간에 일단 튀어야 남에게 인정도 받고 출세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이순신의 리더십은 확실히 그것과 다른 것이다.

 

이순신과 조선의 역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내용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서 일단 남의 이목을 끌고 보자는 생각으로 트릭을 쓰고 이벤트를 만드는 등 그릇되거나 과장된 행동을 일삼는 것은 결국 망한다는 것이다. 좀 부족하고 느려보여도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만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가 진실로 깨달았다면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자세와 행동은 오늘부터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상식과 합리성을 뒤엎으려는 음모와 유혹이 많다.

이순신은 적과 싸우기 전에 이러한 내부의 적들과 싸워야 했다. 현란한 유혹을 궤뚫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내면을 보고 계산하였다. 그래서 그야말로 내부와 외부의 적이 우글거리는 악조건에서 23 23의 놀라운 승리를 그가 사랑하던 겨레와 나라에 안겨주었다. 이순신은 상식적인 것을 항시 존중한 것 같다. 과학기술이나 정치나 산업의 경영이나 모두 철저하게 상식적인 것에 그 뿌리를 박고 나아가야 한다. 위대한 것은 상식적인 것과 절대로 충돌하지 않는다.

<경종민 / KAIST 교수·전자전산학과>(국민일보 2005-4-20)

 

또한 이순신을 몹시 흠모했던 불행한 대통령 노무현의 시대에 국정 브리핑 자료도 있다.

 

이순신 리더십과 우리의 과제

'이순신 리더십과 우리의 과제' 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특강(8 21)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 리더쉽, 전략에 대한 심층분석과 아울러 거룩하고 숭고한 나라사랑의 얼을 일깨워 주었다.
어떠한 악조건에도 좌절하지 않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17 17승을 이끌어낸 성웅 이순신. 그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면 지금의 무한 경쟁시대에서 일류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

신뢰성 = 이순신 장군은 청렴결백, 공평무사, 정직을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백성과 군사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이순신이 나타났다는 말에 도주했던 패잔병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
1792
년 프랑스 혁명때 혁명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목숨을 바친 '786명의 스위스 용병' 이례로 스위스 용병이 신뢰의 상징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

겸손 = 오만과 자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

자만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기는 커녕 문제 자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며 남이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
이제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 같이 만만한 경쟁 기관이나 고객만 상대하면서 오만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기관을 경쟁 상대로 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메워 나가야 하겠다
.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승리의 공을 모두 부하들에게 돌렸으며 자신밖에 공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땐 신이 도와주었다며 한없는 겸손함을 보여 주었다.

 

불굴의 의지 = 모진 모함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항상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명량해전에서 단 12척의 배와 패잔병, 어부로 구성된 오합지졸을 이끌고 200여척의 일본 정예 함대와 맞붙어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낸 이순신 장군이 포기를 종용하는 임금 선조에게 "우리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설득한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다
.

포드, 마이크로소프트, 휴렛 패커드 등 세계적 기업들이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맨주먹의 기업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망각한 채 우리는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못한다고 야단이다
.

끊임없는 혁신과 창의성 = 백병전에 약한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보강하고 적의 약점에 대한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거북선은 장군의 현실 타개 의지와 무한한 창의력을 상징한다
.

현실에 안주하는 개인, 기업, 국가는 경쟁자에게 곧 추월당하고 만다.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을 통해 남이 쉽게 겨냥하기 어려운 목표물로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

정보 중시 전략 =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를 훤히 꿰뚫고 있었으며 작은 정보를 얻기 위해 피난민, 포로 등도 활용하였다
.

충무공처럼 백전백승의 결과를 얻으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철저한 기록 정신 = 임진왜란 7년의 와중에 쉬지 않고 일기를 써 귀중한 '난중일기'를 남겼다. 2539일간의 기록인 이 일기에는 전쟁에 관련된 많은 기록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상에 대한 자료까지 담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우리는 고려자기를 세계에 자랑하지만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지금에도 이를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
기록은 일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개인에게는 지난 일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앞날의 실수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자기 반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기타 = 이 외에도 완벽한 준비, 위기관리 능력, 솔선수범, 인간애 등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탁월한 리더쉽은 지금 같이 경쟁이 치열한 때에 우리에게 더 큰 본보기로 다가온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수군에게 "이순신 함대와 맞서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문서로 하달하였을까... (국정브리핑 2004-8-26)

 

구한말부터 시작한 일본의 침략은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라는 영웅들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백범 선생을 끝으로 소위 민중의 영웅은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서민 영웅들

속으로 숨어 버렸다. 혹자는 박정희를 우리 경제를 일으킨 영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공은

영웅이라 할 수 있으나 그의 과 또한 만만치 않기에 공으로만 영웅으로 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7 IMF를 기점으로 많은 우리 국민의 영웅적인 행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의 민주화에 공헌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기점은 학생 운동의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IMF에 대응하는 우리 국민의

자세는 영웅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영웅들을 영웅답게 해주는

국민 영웅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그런 영웅적인 행동의 결집된 초점

으로서 한 명의 대한 민국 민중의 영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 영웅은 우리의 시대 정신을

살려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게 하는데 선봉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웅이 다른 영웅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정말 간절히 원하고 있다. 정치꾼이나

경제 모리배가 결탁한 세상이 아닌 하나된 민족으로서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진취적 기상으로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 줄 사람이 필요하다.  세계를 지배하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 속에 우뚝 서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국가를, 활기 있는 국민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고 한줌의 소금이 되는 그런 영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