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우선 사전에서 세대론을 찾아 본다.
세대론 :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상위(相違)를 강조하여 거기에서 사회의
역사적 변화의 반영 또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찾는 이론.
8·15광복 이후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전통적 가치체계의 붕괴로
일종의 정신적 무정부상태가 출현되어 구세대와 신세대와의 간극(間隙)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세대론은 풍속현상(風俗現象)에서 예술내용에 이르기
까지의 여러 문제에 있어 빈번하게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전후의 기술
혁신에 의하여 선진사회는 급속히 변화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국제적으로 '세대간 분쟁의 이론'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상위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 책
<88만원 세대>는 세대론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현재
한국의 20대가 가진 구조적 한계와 문제, 그리고 그 이유와 각 세대간의 연관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고는 하지만
책에 소개된 많은 사례들은 사회 현상학적인 입장에서 다루어 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사실 '시대 정신'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했으나
새해 첫머리부터 너무 방대하고 심오한 주제로 아침 토론시간에 회원들의 불참을
유도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세대론'으로 주제를 바꾸었기 때문
이다. 그래서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리매김이 아닌 또래라고 불릴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리매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유사 경험을 공유한 집단으로서 세대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386세대,
유신세대 등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386은 이미 대부분 486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세대는 변화한다. 그리고 그 성격도 고착된 것은 아니다.그러나
비교적 한 세대로서 다른 세대를 이해 할 때의 상대성에는 어떤 절대성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경험을 통해 같이 호흡하면서 공유된 고착화된
이미지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세대를 되돌아보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세대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요구했다.
대체로 부모 세대에 대한 이해가 쉬운 반면, 자식 세대 혹은 조카 세대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라든지, 나와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경험을 통해 그들을
이해했거나,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그 배경을 알아보려 했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설명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386세대인 나는 그래도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눈으로
보고 경험했고, 어릴 적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했던 이웃에 대한
경험도 있고 또 그 때는 가난의 꼬리에 붙은 미덕의 절약에 대한 경험이 있다.
몽땅 연필에 연습장 아껴 쓰는 법 등등. 비교적 지금처럼 부의 격차나 생활
방식의 양극화가 심해지기 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보리 고개에 대한 신파조의 넋두리도 어느 정도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에 공유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런데 나의 10대 자녀들은 가끔 내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생각을 한다. 물론 자식을 이해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들을 통해 듣는
또래 집단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들 또래였을 때와는 상상도 안되게 달라진 것이
많아 곤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다름이 큰 이유로 해서
가까워야 할 아이들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한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세대 간에는 분명 다름이 존재한다.
이 다름이 서로 이해되고 소통되고 있다면 굳이 이런 류의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도 세대간 정의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
는 논조의 글이 인터넷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 사회는
아직 세대간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직 우리 사회가 세대론 또는 세대 담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충분한 수위에 올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X 세대니 Y 세대니
베이비 붐 세대니 386세대니 하는 ‘세대’라는 말이 접미사 붙은 용어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는 하지만 정작 그 초점은 세대 문제에 있지 않고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관점을 차용한다면
기업에서의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말도 많다. 이것은 달리 말해 유행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정도의 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경제나 환경의
관점에서 국민연금 문제로 인한 세대 갈등, 그리고 환경 오염이나 자원 고갈로
인한 후발 세대의 부담 등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고리를 통해서라도 우리가 세대 담론을 지금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
세대간 소통 부재의 두 번째 이유는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구세대와 신세대로
구분되는 세대 논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식상할 만큼 논의 되어온 주제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대간의 소통을 촉진 시키기 보다는 세대간의 다른
입장에 대한 일방적 설명과 함께 그 갈등은 사회가 존재하는 한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다시 말해 풀어도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지한 논의 회피한 탓인가?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도 우리에게 다가온
한국 사회의 청년 백수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들을 밝힌 이 책이 다소 충격적이다.
세 번째 이유는 호도된 주인의식 탓이 아닐까 싶다. 한 개인의 삶의 주인이
그 스스로라고 말하는 것은 인본주의 사상이 체계화 된 이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주인 의식은 사실 주체성 의식
이거나 삶의 주권 의식으로서 자리 잡아야 함에도 종종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지배 의식으로 변질되고는 한다.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하여 이런 지배의식을
가진 개인이 비슷한 역사적 사회적 유사 경험 집단으로서 세대를 말하게 된다면
한 세대는 한 시대의 주인으로서 그 역할을 하려 하고 이것이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한 세대의 시대 지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역사는 지배에 대해서는 저항과
갈등을 반드시 야기 시켜 왔다. 그래서 세대 문제는 갈등과 대립의 문제가 부각
된 즈음에야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즉 호도된 주인의식으로 인한 세대 담론은
세대간의 소통의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때론 사회 갈등을 야기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그냥 덥혀지기도 하기 때문에 소통다운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다.
세대 담론은 세대 간의 다름에 대한 이해 목적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여러 세대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공존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시대는 주역은 있으나 주인은 없다. 또한 그 주역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고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각 세대가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찾는 것에 대해 상생의 방법을 모색하는 틀로서 세대 담론은 논의가 심화될
필요가 있다.
일단 책에 기술된 내용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자.
책에서는 88만원 세대의 문제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 단계의
파급을 거쳐서 모든 세대가 연관된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문제 제기의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고착이 거의 완료 단계에 있는 계층론과 그 문제점을 바라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고도 사회 산업사회가 이루어지고 물질적 풍요가 보장된
사회이기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수혜자와 국외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이미 많은 부분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에 국외자가 수혜자가 되기 위한 노력에는
구조적인 장벽이 존재하며 그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저자의 시각에는
거의 닫힌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주된 요인이 바로 경제의 비민주성과 관련한
문제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표면적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적 비민주화는 가속되었다고 본다.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독립적인
인격체로의 성장이 더뎌졌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경쟁으로 인해 교육비
부담이 가중되어 빈곤의 악순환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첫 섹스가 주거비 문제, 교육비 부담, 그리고 착취적인
알바 시장으로 인한 합당한 임금 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늦어 진다고 한다.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이런 경제적인 문제가 ‘사회적 통제’로
작용하여 여러 세대에게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주제를 상정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회적 통제는 우리 청년들이 사회에
데뷔하는 시기를 뒤로 늦추고 우리 여성들의 초산 연령을 높이며, 또한 인구
감소의 요인으로 까지 발전한다. 경제 문제라는 사회적 통제가 사랑할 권리를
박탈하는 셈이다. 사랑할 권리를 행복추구권 속에 포함시키면 지금 이 사회는
헌법에 위배되는 상태로 적법하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통제로 인한 88만원 세대의 현주소는 어떨까?
그들의 아버지 세대나 혹은 삼촌 세대인 유신세대/386세대는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으로 인해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한 때문에 대학시절 자유, 저항, 낭만의
젊은 시절 뒤에도 괜찮은 일자리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층의 고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안 출신도 교육 자본 형성을 통해 사회
상층 진입이 가능했기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다. 연공서열도 비교적 잘
지켜져서 세대 내 경쟁만으로도 나름의 만족한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 청년 백수인 88만원 세대는 전혀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이제는 세대 내 경쟁에서 세대간 경쟁으로 변화하였고, 뒤늦은 세대 독립과
사회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세대간 경쟁력에 뒤쳐져 있으며 강요된 승자 독식
게임으로 인해 패자 부활전이 거의 불가능한 입장에 놓여 있다.
좀 더 상술하자면 지금의 20대는 IMF 1세대 이다. 즉 IMF 이전의 경제 생활의
경험 없이 사회 생활을 시작하여 IMF로 인한 승자 독식 게임과 무한 경쟁에
아무런 방비 없이 노출된 세대이다. 그리고 포스트 포디즘 1세대로서 다품종
대량 생산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놓여져 있다.
다양성이 폭발한 것이다. 대체로 다양성이 높아지면 기회도 늘어야 하는데
늘어난 기회는 이미 기존의 세대가 대부분 소유해 버렸고 때문이 이들 20대가
사회 내에서 한 포지션을 차지 하기 위한 선택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군다나 386세대가 옹립한 노빠들이 만든 승자 독식의 규칙인 정규직의 붕괴는
그들의 직업 안정성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즉 어떤 사람에게 적용된 명제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또한 닫혀버린 자영업 공간의 간접 피해자로서 직업의 안정성이라는 부모
세대의 강요 아닌 강요 때문에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의 취직을 대기업 취직의
발판으로 삼는 세대이기도 하다.
한편 저자 우석훈은 이런 세대 문제 특히 88만원 세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책임한 세대로서 유럽의 68세대에 해당되는 우리의 386세대를 들고 있다.
60년생에서 69년생에 이르는 이 세대는 정치적 단결성이 상당히 높다. 그로인해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옹립했으나 유럽의 68세대 같은 사회적 변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지위를 고착화하거나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경쟁 시스템에서의 승리를 영속화하기 위해 그들의 자녀를 통해 그 경쟁을
이어간 못난 세대로 보고 있다. 그들은 교육을 매개로한 무한 경쟁 분위기를
양산했다. 지금의 10대의 부모들인 그들은 사교육 확대의 주범이며 원정출산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아이들의 장래를 보장받고자 했던 못난 세대로 적고 있다.
나도 386이기 때문에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드러난 현상에
대해 동일 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대론 혹은 세대 담론은 세대 특성에서 개인적인 행동의 정당성을 찾는 형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반대로 개인적인 정당성 주장이 세대 담론화 하려 하면
즉 개인적인 특수성 혹은 '어떤 경우'를 일반성 혹은 '모든 경우 혹은 대부분의
경우'로 억지 전환할 때의 일반화 오류가 발생한다. 하지만 사회 현상이나 흐름,
구조의 변화 혹은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세대 담론은 필요하다.
사실 경제적인 이유가 암묵적인 사회적 통제로 인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고 자립된 인간으로서의 독립을 저해 한다는 저자의 견해는 상당한 공감이
간다. 작금의 유통 자본이 우리 사대의 각 세대들에게 시장 세분화를 통한
구매력 지수에 따라 다양성을 가장한 세대 획일성을 획책하고, 그로 인해 각
세대 사람들은 사회적 분위기에 눌려 그 획일적 경쟁의 희생양이 되면서도 그
속에서 세대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을 저자는 "야릇한 사디즘적인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치족이 명품족으로 변질된 것 말이다.
세대 문제에 대해 개인은 다양한 접근과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하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문제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화된 경우 선택의 자유는 구속된다.
저자는 경제학이 문제에 대한 대안 선택의 학문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통제로 작용하는 세대간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제시한 저자의 해법이 공감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이 문제를 풀 것이냐 아니면 현재 중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태워 빗길을 뚫고 성으로 달려가야 하느냐 라는 괴테의 질문과 비슷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개인도 경제를 생각하는 방식이 상당히 변해야 할 것이고, 그런 개인들을 조율하고 사회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변해 있어야 할 것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을 생태경제학에서는 공진화(Co-Evolution)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개인은 자신의 소비를 절제하는 더 생태적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시스템은 낭비를 줄이고 경제적 약자를 더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할 것이고, 이미 많은 것들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가 아직 그렇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양보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5년 후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서 우리에게 던져졌던 88만원 세대 현상이라는 질곡을 무사히 빠져 나와서 비로소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어 있다고, 지금의 날들을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본문 302~302페이지)”
뜬금없이 이 질문이 떠오른다.
“ 만약 당신에게 꿈이 없다면, 당신의 남은 생애를 무엇을 하며 보내시겠습니까?”
나 스스로도 저자의 해법을 꿈같은 것이라 여기는 것인가?
아니면 남은 생애 동안의 과업을 부여 받았다는 안도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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