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해오라기>
- 존 요먼 글, 퀜틴 블레이크 그림, 김경미 옮김, 마루벌 펴냄
눈치 없고 타이밍 못 맞추고 역지사지 안 되는 연인들이 빚어낸 ‘소통불능’의 드라마, 그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한 자락 들려드리고자 한다.
먼 옛날, 그리 크지 않은 늪에 학과 해오라기가 살았다. 늪에는 딱 이 둘뿐이어서, 혼기가 꽉 찬 학은 해오라기에게 청혼을 했다. 해오라기가 아니면 다리 짧고 부리 넓적해 어떤 종류의 스킨십도 불가능한 오리에게 청혼해야 하는 극한 상황인 만큼, 이 가공할 ‘이종교배’에 쏟아질 동종 학계의 비난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파격적이고 갑작스런 청혼에 앞서 달콤한 구애의 밀어와 차분한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마땅하건만, 학은 앞뒤 잘라먹고 대뜸 “저하고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한다. “결혼이요! 어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신 꼴을 한번 보세요. 목하고 다리 빼면 뭐가 있지요? 우둘투둘한 무릎은 또 어떻고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늪이었던지, 해오라기는 우선 이렇게 일갈한 뒤 “당신은 저를 먹여 살릴 만큼 물고기를 잡지도 못할 걸요!”라며 남자의 자존심에 비수를 꽂는다.
잠시 후 해오라기에게 후회가 밀려든다. “그렇게 못되게 굴다니, 내가 잘못했어. 사실 물고기 같은 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능력 있는 현대 여성으로서 기꺼이 맞벌이를 결심한 해오라기는 늪 반대편 학의 둥지로 건너가 “아까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삼, 당신 아내가 된다면 정말 행복할 꼬얌” 하트를 날린다. 하지만 이미 빈정 상한 학은 “친절한 말 고마운데, 나 진짜 너 먹여 살릴 능력 없거든. 청혼은 무효야!” 내지른다.
이어지는 사연은 짐작 가실 게다. 학이 해오라기 둥지로 건너가 ‘미안하다, 결혼하자’ 하면 학이 ‘죽을 때까지 혼자 살 지 언정 너랑은 안 살아!’ 하고, 다시 해오라기가 학 둥지로 건너가 ‘진심이 아니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하면 ‘너 아까도 그랬잖아. 됐거든!’ 하는 거다. 그래서 이 늪에 가면 오늘도 서로의 둥지를 오가는 학과 해오라기를 볼 수 있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 되겠다.
아이에게 물었다. “학이랑 해오라기랑 왜 결혼을 못한 것 같아?” 예상 모범답안은 “말을 예쁘게 안 하니까 그렇지!”(남을 배려 안하고 함부로 말해서 상처 주면 안 되는 거야) 혹은 “둘 다 바보라서 그래!”(진심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자존심만 내세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였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엄만 그것도 몰라? 서로 싫어하니까 그렇지!”
아이가 ‘이면의 진심’이나 ‘행간의 의미’ 같은 걸 알 턱이 없으니 이 지나치리만치 단순한 대답은 당연한 거려니 여겼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학과 해오라기는 정말 결혼할 마음이 있었을까? 차마 오리와 결혼할 수 없어서 청혼했고, 그 청혼에 “너, 거울은 보고 사냐? 먹여 살릴 능력도 없는 주제에!”라고 답했다. 이게 진심이다. 성급하게 오해하고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길 반복한 게 아니라, 실은 함께 살고픈 생각이 별로 없었던 거다.
살다 보면 진심이 어떻든 액면이 중요하다는 것, 실은 액면이 진심일 때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 부하직원과 나를 은근슬쩍 비교한 뒤 “자네가 일을 잘 못한다는 얘기가 아냐” 하는 상사, 만날 때마다 묘하게 마음 상하는 소리만 해대면서 “내가 너 위해서 이런 얘기 하는 거 알지?” 묻는 친구,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부모님 효도관광까지 보내드린 옆집 엄친아 근황을 시시콜콜 전하면서 “그래도 우리 아들이 최고야!”하는 부모님. 액면이 아니라 ‘이면의 진심’을 읽어달라는 그 호소는, 자신이 방금 무례하고 가혹한 짓을 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덧붙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거짓말을 자꾸만 믿고 싶어진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삽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제목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다. 작가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책 소개 겸 즉석 상담을 해주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출연자가 ‘10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청혼을 안 하는데 이유가 궁금해요’, ‘평소엔 다정다감한 성격인데, 스킨십을 싫어해요’, ‘너그럽고 착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때 한번도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어요’ 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면, 작가와 방청객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어!”
애인이건 가족이건 친구건 간에,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몹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상대의 액면을 보지 않고, ‘이면의 진심’을 찾는데 전심전력 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를 구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기 힘든 ‘이면의 진심’이 대체 뭐란 말인가. 지나친 감정노동은 노화의 지름길이다. 하기 힘든 말일수록 액면으로 승부하고 듣기 거북한 말일수록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무식 액면 중심 소통방식이 폭넓게 보급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참고로, 액면 중심 사고는 각종 ‘오해’가 난무하는 정치판을 선명하게 바라보는데도 제법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이 진보신당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사퇴한 뒤 한 말은 이렇다.
“단일화는 수도권 선거에 있어 대역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심상정 후보 사퇴)로써 사실상 서울도 범야권단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민주당은 노회찬 후보의 결단을 기대한다.”
무려 ‘대역전’의 계기가 되어줄, 이토록 중요한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이 하는 일은 ‘노회찬 후보의 결단을 기대하는 것’이다. 문맥상 노회찬 후보의 결단이란 심상정 후보처럼 사퇴하는 것인데, 다른 당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말하면서 무얼 같이 논의하자든지, 민주당이 이러이러한 점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얘긴 없다. 실제로 한명숙 캠프는 노회찬 캠프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면 그대로 ‘결단’(사퇴)을 ‘기대’만 했다는 얘기다. 설령 민주당에게 액면 이상의 진심이 있었다고 해도, 그 진심을 이렇게 고압적이고 무례한 액면으로 드러내면 곤란한 거 아니냐.
학과 해오라기가 그래서 오늘도 이러구(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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