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회에서 항존직 선거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여성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경우 남자의 경우 안수집사와 장로를 뽑고, 여자의 경우 권사를 뽑습니다.
물론 여자라도 장로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두 투표로 뽑습니다. 그리고 일반 서리 집사라면 누구든지 안수집사나 권사를 거치지 않고 장로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과는 여성의 경우 대부분 권사님 물망에 오르신 분들은 다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수집사에도 대부분 올랐습니다. 투표인 과반의 득표만 얻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낮은 곳에서 봉사를 열심히 했던 분들 혹은 주목 받는 분들은 대부분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직에는 안수집사와 동일한 숫자의 집사님들이 도전(?)했지만 3분의 2이상의 득표를 해야하므로
2차 투표에 까지 가서 겨우 한분이 피택되었습니다. 그분은 게가 알기로는 크게 알려진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믿음과 봉사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회에도 보면 주목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 생활에 열심으로 주목받는 분들이 있고, 사회에서의 명망으로 주목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주목 받는 분들은 주목 받는 만큼의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들에게서 주목받는 행동 자체가
그렇게 주목받아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결국 그 봉사마저 그만두는 경우가 있었지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기에 작은 봉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면서 그것에 오히려 끌려가는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돕던 그 분은 결국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좀 참을 것을...'하는 후회를 했지만 . 그 뒤로 교회도 자주 빠지게 되고 교회 활동도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사건 하나로 저는 제 믿음 행위의 제약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변명으로 성실치 않은 교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지요.
요즘 주일 아침 첫 예배를 드립니다. 일곱시 반. 대부분 봉사하시는 분들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지만 저는 봉사의 봉적이 아니라 교회를 가지 않고 갔다왔다는 거짓말을 아이들에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의무감으로 가는 것이 속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기에 그저 열심인 기독교인양 보이는 것이 싫어서 교인들과의 접촉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다닌지가 좀 된지라 아침 예배시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익습니다. 하지만 가끔보면
전혀 생소한 분들도 계시지요. 교인들의 주목을 받는 분들도 아닙니다.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주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작 예수님과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자 나아 왔건만 사람들은
그저 교회라는 타성 안에서 그들을 주목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예배당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걸음을 한 누군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이제서야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논 마음이 상한 자, 전도자가 그렇게 가자고 가자고 해서 어려운 발걸음을 한 초신자,
처음 남 몰래 교회에 나와서 어떤 복장을 하고 와야하는지도 모르고 일상 복을 입고 왔는데
뭔가 어색해서 어디 한 쪽에 있을 그 어떤 사람들... 그들에게 주목하고 미소짓고 반겨주는 목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어느 누군가에게 맡겨진 일이 되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스스럼 없이 인사하고 반겨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리운 사람들을
우리는 주목해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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