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이태리 로마에서 가까운 곳에서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1952)란 이름의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머리가 명석하였던 그녀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이태리에서는 맨 첫 번째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자들만이 의사 직을 가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 의과대학을 포기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이렇게 결심한 그녀는 마지막으로 핀치오 공원을 걸으며 자신이 여성인 것을 비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모녀 거지가 벤치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뜨였습니다. 어머니 거지가 열심히 구걸하고 있는 동안에 따님 거지는 그 곁에 앉아 볼 품 없는 보자기 하나를 들고 열중하여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보자기를 접었다 폈다 하는 소녀의 얼굴에 너무나 행복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호기심으로 두 눈동자는 반짝거렸고 얼굴엔 행복감이 넘쳐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몬테소리는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든 생명의 힘을 느꼈습니다. 딸 거지의 모습에서 생명의 힘을 느낀 몬테소리는 의학을 그만 두어서는 안되겠음을 느꼈습니다. 의학은 생명을 북돋워주는 학문이기에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교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렇게 의학을 다시 시작한 그녀는 어느 날 정박아들의 수용시설을 견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대 받고 무시당하고 있는 장애자들의 삶의 모습을 접하게 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박아들이 굶주림에 빠져 있는 것은 먹는 양식이 아니라 손으로 놀이할 것들에 대한 굶주림이 훨씬 더 심각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박아들이 음식에 굶주려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할 것들에 굶주려 있음을 느낀 것입니다. 그런 관찰과 경험에서 몬테소리 교육방법을 창안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몬테소리의 사물을 보는 태도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를 않고 사물과 사건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런 안목과 태도가 참 교육이 실현 되어 지는 지름길이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 몬테소리 ***
이탈리아의 유아교육가이며 1907년 로마의 슬럼가에 아이들의 집(Casa dei Bambini)을 창설하였다. 독특한 교육(몬테소리법)을 실천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자발성, 자기활동을 중시하고 교사의 임무는 환경정비와 아이들의 능력개발조성에 있다고 했다. 교수의 관찰, 상벌. 훈계에 따른 자율적 행위의 억압을 반대하고 놀이작업을 중시하는 감각훈련을 위한 몬테소리교구를 고안, 프뢰벨주의의 극복에 노력했다.
몬테소리는 놀잇감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이탈리아의 여의사이며 심리학자, 아동교육자였던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가 개발한 아동 교육방법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와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진학한 의대였지만, 공부 또한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많은 수업에서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다. 해부학 실습에서는 아예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격리되어 다른 방에서 해부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대부분의 차별을 극복하고 학점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 6년 만에 로마대학교 의과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이것은 마리아 몬테소리가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여성으로서 19세기 말 이탈리아 여성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비록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의사로 주목 받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녀를 현장 의사로 뽑아주는 데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의 구직 활동을 통해 아픈 사람을 직접 만나 치료하는 자리가 아닌, 로마정신병원의 보조의사로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정신병원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이 그저 동물처럼 수용되어 있는 끔직한 환경을 목도하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뚜렷이 결정할 수 있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지체아동들의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전 아동들의 교육에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사랑하는 딸이 그저 당시 여성들이 살아가는 대로 무리 없이 살기를 원했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진취적이었다. 어머니는 똑똑하고 총명한 딸이 자기개발을 해나가도록 도왔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결국 평소 흥미를 가졌던 기술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이어 이탈리아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의대에 입학하였다.
몬테소리는 1896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여성권리대회에 이탈리아의 특사로 파견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 그리고 남녀 평등 문제에 대해 강도 있는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았고 당시 유럽에서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 사회적, 학문적인 측면에서 유럽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고민하게 했으며 여성 교육을 현실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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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소리 교육법 중의 하나인 촉감을 통해 물체를 파악하는 학습과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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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몬테소리는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으나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모두가 어린이들이 보여준 것이라며 상을 양보하기도 하였다.
김정미/시나리오 작가, 역사 저술가
(글쓴이 김정미씨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심이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면면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발견하고 시나리오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한편 역사관련 글쓰기도 병행하고 있다.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천추태후-잔혹하고 은밀한 왕실 불륜사], [어린이 역사 인물사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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