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아카데미 수강록 <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 >
- 울산 대학교 박태원 교수 강의 -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정리할 요량으로 시민 강좌에서 내준 교재를 펼쳐본다. 참 재미없고 딱딱한 문체다. 만약 이것을 강의를 듣지 않고 교재만으로 지식을 벌충하려했다면 '그저 관심은 있으되 별로인'분야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떤 주제로 어떤 내용을 강의하느냐 보다 누가 어떻게 강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강의다.
사회자이신 전직(왜 그런지는 조현천 교수님께 물어야 할것이다.) 이성희 교수님이 박태원 교수님을 국내에서 원효를 전공한 최고 권위자시고 원효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 소개하신다. 모교 철학과를 졸업하신 선배시다. 허리가 불편하셔서 앉아서 강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정말 일어서서 강의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셨다. 원효라는 인물이 학승이요 도승이요 기인인지라 원효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의 저서 중의 하나인 십문화쟁론에 대한 강의는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없진 않았다. 십문화쟁론은 원효의 대표적인 사상 중 하나인 화쟁론의 요체이므로 불교의 난해한 논리에 대한 지식이 전재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교수님은 공부가 깊으신 분들의 특징인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셨다. 시간이 모자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그가 풀어주는 원효의 화쟁론은 정말 유익하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국력이 조금만 뒷받침해 주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세계철학사의 양상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강의는 말랑말랑하게 시작해서 딱딱한 쪽으로 진행하겠다 하셨지만 말랑말랑한 재미 덕에 딱딱함이 전혀 그렇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괴짜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는 법,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원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원효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 이야기다. 의상과 함께 당의 유학길에 올랐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음을 깨닫는 이 이야기에 가려 원효가 당대 최고의 불교 이론가였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원효가 남긴 저술 중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약 20여권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가 저술했다는 책의 목록은 약 150여권에 달한다고 한다. 원효가 활동하던 시기의 중국은 당나라 때로 인도에서 전해져 온 불교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중국인 스스로가 불교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던 시기다. 특히 현장의 서역 방문은 구마라승이 전해준 것을 받던 피동적 불교에서 중국인이 스스로 인도를 찾아 경전을 구하고 그 경전을 직접 번역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인 중국 불교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현장이 서유기에 등장한 것도 현장법사의 당시 중국 내에서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장으로인해 중국의 불경은 신역과 구역으로 구분될 정도였으며 독자적인 불교 담론이 활성화되고 다양화된다. 그런데 이런 중국 불교의 전환은 그대로 한반도에도 전해지는데 거의 시차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새로이 번역된 경전이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원효에 의해 주해서가 나왔다니 지금에 비교해도 놀라운 속도다. 이는 아마도 당에 유학을 하던 의상이 원효에게 경전이나 책이 구해지는 즉시 보냄으로써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신단다. 이렇게 중국의 다양한 모습의 불교가 한반도로 직수입되는 형국이다 보니 한반도 역시 여러 불교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담론이 많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삼론종과 정토종의 대립이랄 수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귀족 불교와 민중 불교의 대립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아무튼 이런 견해들이 상호 배타적인 논쟁으로 치닫다보니 불화와 대립이 생기고 이것이 신라 불교계에 혼란을 가중시키던 시기에 원효가 중심에 서게 된다. 당시의 무든 주장이 모두 부처님의 말씀에서 온 것인데 보는 관점이 다를 뿐 어느것도 온전히 맞고 온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일리가 있으니 이를 꿰둟어 하나로 보자는 견해를 피력하여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에 까지 영향력을 미친 분이 바로 원효이시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금강삼매경>에 얽힌 이야기다. 흔히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은 용수의 <중론>에 버금간다는 칭송을 얻었던 책이고 <대승기신론소>는 <해동소>라 하여 중국의 고승들도 자주 인용했던 책이다. 그리고 <십문화쟁론> 역시 불교 내 각 문파간의 대립을 화쟁으로 풀어낸 역작으로 평가 받았던 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중국이나 인도에 그 원래 경전이나 서책이 존재하는데 <금강삼매경>은 그 어디에도 원전이 존재하지 않고 유일하게 우리 나라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은 금강삼매경의 논리적 흐름을 흡사 이미 알고 있듯이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박교수님은 <금강삼매경>이 신라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닌가 하고 그 추측하신다.
이런 추측의 배경에 당시 한국 불교계의 기인들의 열전이 가미된다. 원효가 딱히 누구로부터 사사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남겨진 기록으로 유추할 수 있는 스승이 세 분 정도 있는데 낭지화상,고구려에서 망명한 보덕화상 그리고 혜공선사가 그들이다. 그런데 혜공이란 분이 흥미롭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7살 때 이미 주인의 병을 고치는 법을 알려주었을 정도로 특별한 무엇이 있었고 주인의 마음을 읽어 그것을 미리 앞서 준비하는 등(주인이 형에게 준 사냥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혜공은 이미 형님 집에 가서 그 매를 가져와 주인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비범함이 눈에 띄었다. 그런 그를 주인이 자신의 노비를 그만두고 출가를 할 것을 권하여 불문에 입적했는데 그의 수행 중에도 기이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수행을 우울 속에서 하곤 했는데 수행이 마칠 때가 되면 푸른색 옷을 입은 동자가 먼저 올라오고 그리고 우물에서 한 달을 수련한 사람이 옷도 전혀 젖지 않은 상태로 나왔다고 한다. 비오는 날에도 옷이 전혀 젖지 않았고 누군가 혜공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혜공이 그것에 반응했다는 이야기며 또 동시에 여러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나는 사랑방에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가 되어 갔다.여하튼 이 혜공 스님은 술도 마시고 여자도 가까이 하는 등 이른바 괴짜였다. 그리고 <금강삼매경>을 편집한 대안대사 역시 사찰에 거하지 않고 저자거리에 있으면서 구리로 만든 발우를 두드리며 "대안(크게 평안하라!)!대안!대안!)을 외치고 다녔다 하여 대안대사라 한다는데 이 분 역시 괴짜다(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를 외치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겹쳐 상상하니 미소가 떠오른다) . 원효 또한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신라시대 최고의 엄친아 설총을 낳고 그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칭하며 속인행세를 하였고 화엄경의 이치를 담은 무애가(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삶 속에서 평안을 얻으라는 내용, 갑자기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가 생각난다.)를 신라 전역에 히트시켜 불교 대중화에 앞장 서는 등 그 행보가 평범하지는 않은 터다. 이들 세 사람은 단연 실력이나 공력으로야 국사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 스스로 그런 것들을 멀리하고 당시 분 아니라 지금의 사회적 관념에서도 기행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하지만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중생과 다불어 함께 하는 대중의 불교의 발전에 기여했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기에 이 세분의 도력 높은 천재 괴짜들이 <금강삼매경>을 저술하지 않았나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화쟁으로 들어간다. 화쟁은 지극히 불교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 서로 대립되는 논리와 논조들이 횡행하는 상황을 겹쳐보아 오늘날에도 상당히 유익한 책이 될 것이라 하신다. 화쟁론은 和와 諍이란 인간사회의 이면성을 인정하면서 이 和와 諍이 正과 反에 집착하고 또 필요에 따라 적절히 타협하는 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돌이켜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 보아 이 둘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諍과 和를 동화시켜가는 원리를 전개시켜가고 있다. 여기서 원효는 크게 세가지 원리로서 화쟁론을 전개해 나가는데 그 첫째가 일리(一里)로서 각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을 이르는 것으로 이를 변별하여 수용하는 원리이다. 둘째가 모든 쟁론의 인식적 토대를 초탈할 수 있는 마음의 지평(一心)을 열어야하고 세째로 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말이든 네 말이든 一里가 있는 것이지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진술인 견해의 배타적 주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一里가 一里인 이유는 쟁론 상황에서 제기되는 특정한 견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부분적으로 타당하거나 제한적으로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일리에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화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에 원효는 석가의 緣起의 논리를 활용하여 상대방의 주장이 있게 된 배경과 그 전후 관계를 꿰뚫어 살필 것을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음을 열고 나도 틀릴 수 있듯이 상대방도 맞을 수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여러 관계와 조건들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조건문으로 읽어라"라는 대목이다. 이는 懷疑라는 철학의 기본 자세와도 일맥상통 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리를 수용하기 위한, 상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자세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일보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일상의 언어 환각을 성찰하고 그에 지배되지 않고 언어의 주인이 되어 지혜와 사랑의 구현을 위해 언어를 굴릴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를 살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마음 속의 박수를 "호오~!"라는 감탄사를 소리내는 것으로 그쳐야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교양은 관심 분야에서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는 곳에서 얻는 이런 깨우침을 통해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강신준 교수님도 그랬지만 박태원 교수님도 깊은 공력을 재미있게 풀어내시는 것을 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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