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토론을 다녀 와서 개츠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좀 든다.
소설 속의 개츠비란 인간에 대해 동질성과 많은 공감을 가지면서도 사람 이름 앞에 붙인 The Great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과 그것을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또한 이 책이 미국 사회를 대변한다는 등의 번역자들의 평가들 역시 The Great란 단어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알러지 반응이 있어서 스스로를 속좁은 거시적 관점의 비평가로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소설에서 시대정신과 그에 대한 단단한 철학적 배경 따위를 찾는 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된다.물론 미국의 짧은 역사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한 평가에 쇼비니즘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 사나이의 꿈과 사랑에 대한 서사로서는 매력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된다. 그리고 1920년대 자본주의 사회 미국의 한 단면이 가진 어두운 표상이 어쩌면 범세계적인 표상일 수 있기에 소설에서 보이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곱씹게 한다. 물질적 기준의 가치가 사회 가치가 되어버리면 물질의 소유 여부는 인간을 우등과 열등의 이분법적 잣대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때론 더 나아가 그것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되어 곳간에서 인심이 나고 가난이 죄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빈부 사회 계층의 양립적 설정을 희석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거의 자발적으로 우등과 열등 사이에 줄을 선다.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란다. 사람은 그저 간사해서 하위 1%의 계층에서도 아래를 보면 비교우위적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잖은(?) 충고들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줄을 흐트리지 않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지도 모르고 스스로 중산층이 되기 위해 다양한 잣대를 도입하게 하는 이름 모를 독(毒)일지도 모른다. 유사이래로 독이 인간의 영혼을 순수하게 지켜준 예는 없지 않을까?
일견 보면 좀 각색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면도 있고, 불륜의 원인을 물질에 가까이 둠으로써 인간의 사랑의 감정 보다는 도덕적 정당성이란 기준으로 불륜을 바라보게 하는 면도 있어 동네 아줌마들의 답도 없는 수다거리로는 제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남자를 두 번 버린 못된 계집에 대한 악담과 그를 사랑한 바보 개츠비에 대한 동정으로 회자 될 수도 있다. 혹은 남편의 바람 때문에 다시 찾은 옛사랑에 마음을 내주고 마는 피해자 격의 여인이 우발적 가해자가 되는 어쩌면 가장 여자 같은 여자가 부각될지도 모른다. 혹은 정부가 본처에게 응징되는 우연한 설정에서 남의 눈에 피눈물 내게하고 잘되는 없자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의 해석이 이루어 질 수도 있겠다. 또 자신의 정부의 남편을 통해 자기 아내의 정부를 죽여버리는 복수극에 남편은 아내가 그의 정부를 치어 죽게 했다는 것을 모른다는 맹점을 갖게 함으로써 일말의 면죄부를 주는 것은 일반적 권선징악이라는 식상한 구도를 깨고 있어소서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 개츠비의 미련한 미련같은 사랑도 식상한 일상에 빠진 여인들에게 사랑의 일탈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할 수도 있으리라.
이 소설이 가장 미국적인 소설이라 평가를 받는 데에는 개츠비란 인물에게 2가지 성공학적인 요소를 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는 욕구는 충족되어야한다는 명제가 제시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하는 자의 꿈과 그를 이루는 방법의 도식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깡촌의 시골 소년이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을 운명을 신의 섭리가 믿는 긍정의 심리학이 개츠비 성공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는데 이것은 자신을 달리 봐줄 공간으로 떠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다에서 그는 부자를 만나게되고 가와 함게 여행을 하면서 부자의 속성과 부자됨에 대해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작가는 우연히 인연이 닿은 부자로 부터 유산을 상속 받게 되는 행운아로 주인곧을 그리지 않는다. 그는 부자에게서 배운 부자다움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밑천으로 성공을 이룬다. 대부분의 자수성가적 성공이 그렇지만 혼돈은 기회의 장이다. 전쟁은 개츠비에게 있어서 낮은 단계지만 사회적 지위를 얻을 기회와 그의 성공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우선 참전용사라는 사회적 인지도를 얻었고 인생을 도박판에 던질만큼 강렬한 사랑을 얻는다. 그는 전장에서 성과를 내는데 집중해ㅆ고 그것이 그에게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들의 본향이라 여기는 옥스포드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지식과 인맥과 부자로서의 교양에 대한 훈련의 시간을 가진다. 아마도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 위해 어느정도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할 것에 대한 청사진을 그곳에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란게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듯 사랑하는 여인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고 떠난다. 즉 그의 삶의 의미와 목표가 상실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개츠비는 그 상실을 스스로 사랑하는 여인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 그 여인을 다시 찾겠다는 열망으로 바꾼 후 부자로부터 배운 부자되는 비결을 활용해 짧은 시간에 커다란 부를 이룬다. 그는 그 때까지의 미국적인 성공의 공식인 개척과 발명과 제조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람의 욕망과 배치되는 법과 제도의 모순에서 기회를 얻는다. 금주법이 주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일했지만 개츠비는 유통망 확보에 주력함으로써 큰 성공을 이룬다. 그의 성공은 바로 오늘날의 지식기반 사업의 전형처럼보인다. 개츠비는 그 부를 바탕으로 성대한 파티를 배설하면서 뉴요커들에게 명성도 쌓는다. 소설에서는 데이지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열었던 것이라 묘사되지만 그는 그 파티를 통해 돈되는 사람들과의 인맥을 쌓았으리라. 여하튼 개츠비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생각을 통해 그 스스로 기회를 창조해야 된다는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개츠비나 빌게이츠 같이 없이 살다가 부자가 된사람은 그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원래 부자는 그렇지 않다.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만의 리그가 침범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작의 명수들이다. 결국 뷰케넌이 케츠비를 죽인 것이지만 그의 손에는 피 한방울도 맺혀 있지 않은 것으로 묘사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사악한 부자의 한가지 속성을 맛 보게 한다. 인류의 역사는 사회 계층이 어떻게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했는지를 보여준다.그리고 그런 리그의 구성이 결국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도 보여 준다. 순서를 매기는 가치 기준은 인간을 힘들게 할 뿐이다. 또한 과거의 기준에 집착한 미래지향은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물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순교자적 죽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거에 대한 집착은 위험하다. 때론 방황처럼 때론 심지 없는 삶의 자세로 비춰질 지 모르지만 기존의 가치 기준이 아닌 새로운 가치 기준을 만들며 사는 삶은 어떨까?삐딱이가 세력을 모으면 대안이되고 대안이 성장하면 주류가 된다. 다시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보면 게츠비는 그 당시의 신주류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밀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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