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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스크랩] 허통의 아주 개인적인 <비둘기>청강 후기

 

파트릭 쥐스킨트, 그리고 <비둘기>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데 내겐 생소한 이름인 걸 보니 나의 문학적 소양은 그저 지적 허영의 포장에 둘러씌운 리본 같은 정도구나 싶다. 내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보았던 영화 <향수>의 원작자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찌 인간이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스토리를 만든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이 작가의 삶은 어떨까? 이런 감탄과 의문으로 잠시 인터넷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둘기>라는 책의 표지에 적인 그의 이름은 참으로 생소했다. 아마 영화가 아니었다면 난 그의 소설을 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설이란 그저 내게 재미있어야 하는 글감을 잘 갈아 놓은 먹기 좋은 죽 같은 것이니까....

 

조현천 교수님의 강의는 언제 어느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지가 항상 궁금해진다. 나처럼  이런 저런 호기심이 많고 막상 혼자 갈피를 잡기에는 공력이 모자라지만 취미란에 독서란 걸 부끄럽지 않게 넣고 싶어하는 족속에게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다. 요즘 인문학을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말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조현천 교수님은 정말 좋은 인문학자요 인문학 선생이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 문학이 물꼬를 내고 그 배경이 되는 역사와 그 역사를 사는 인간 정신의 무기인 철학이 흘러 내리고 우리 삶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으로 물막이를 돋게 된다.  메마른 흙을 지나며 뒷물을 당기는 첫물인 물꼬는 항상 탁해보이지만 그 탁함이 지난 후에 맑은 물이 흐르듯이 조교수님의 강의도 항상 끝이 개운하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저렇게 치밀할 수 있는지, 저 해석이 정말 작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교수님이 의도를 가지고 부여한 의미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긴 그물 같은 망을 툭 던져 놓고  그 사이를 촘촘히 이어가면서 마침내 차려 입고 나가고픈 한 필의 옷감을 만들어 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우리같은 독자에게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저분과 같은 독서가에게서 완성된다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조나단 노엘의 주요 사건에 대한 연혁을  떡하니 걸어 놓고 강박을 잠시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근대 철학의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로 넘어가고 이성과 합리의 극단으로 강박을 설명하신다. 베르테르가 나오고 좀머씨가 등장하고 소설 작가의 치밀한 안배에 대한 감탄 후에 그런 안배를 알아차리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주인공의 변화에 대한 저항과 익명성 그리고 예측 가능한 생활 채턴의 유지를 통한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감시와 안정을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사람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로인한 대인기피 그리고 또 그로인한 삶의 외로움과 고독, 우연한 등장한 변화의 빌미인 비둘기 그리고 죽음의 결심 그러나 강박적인 행동 속에 숨겨진 생의 욕구 등이 주우욱~ 설명되고나니 어느듯 강의가 마무리된다.  

 

강의를 듣는 나도 이리저리 헤맨것 같다. 중간에 과연 주인공의 행동을 강박이라고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교수님의 목소리를 놓치기 시작한다. 청결은 결벽이라고 봐야하고 사람을 피하는 것은 대인기피로 봐야하고 사람으로 부터 받은 피해의식과 비둘기를 통해 투영되는 불안감은 공항장애로 봐야하는데...의사도 아닌 것이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덕에 눈동냥으로 얻은 강박에 대한 정의는 내적 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행동들이다. 대체로 이런 행동들이 방해 받으면 화를 낸다,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그리고 비둘기의 등장으로 야기된 우연과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성의 고집으로 인한 필연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강의가 전개되자 내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 저건 자유의 문제인데? 우연이 자유를 주나?내 생각에는 필연인데? ㅎㅎㅎ
 
이 소설의 결말은 결국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 자기 존재의 확인이 가능한 삶으로의 회귀로 귀착된다. 극단적 이성의 자기 파괴적인 종말에서 인간다움으로의 회귀 말이다.   사실 인간을 둘러 싼 모든 환경과 사건에는 양면성이 있다. 또 그것을 대하거나 바라보는 인간이 드러내는 '인간다움'이란 것도 이성과 감성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상황에 대한 대응을 통해 변화를 하므로 어떤 삶의 과정이든 양면성에 접한 양날의 칼의 움직임이라 봐야 할 것이다. 

 

이성에게 인간다움은 모호한 것이고 모호한 것은 이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극단이 만든 체에 '인간다움'이란 모호성을 걸러 낸다면 남아 있는 것이 인간일까? 흘려버린 것이 인간일가? 이성에 의해 강제되는 이런 인간다움에 대한 학대는 '인간다움'이 그 체를 통과하는 순간  그 완전함을 잃어 버린다. 즉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해만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1시간 가량 토론이 이어졌다. 우연과 필연에 대하여 그리고 많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소설<비둘기>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처음과 끝이 필연으로 밀봉된 상태에서 그 속의 수많은 우연들은 필연으로 묘사되고  처음과 끝을 우연으로 열어두면 그 속의 수많은 필연들이 우연이 되고 마는 딜레마가 머리 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 이건 운명에 대한 아포리아라고 해야 되나?

 

혹시나 사람들이 적으면 어쩌나 싶어 모자란 잠을 안고 참석했는데, 아~~~ 머리에 쥐가 나서 돌아왔다!!

출처 : 파피루스 아침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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