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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시간의 배설

 

 

<시간의 배설>

 

흔히 우리는 살아있는 시간을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매일 반복되는 블랙아웃, 즉 수면으로 인한 단절을 경험하면서 산다. 다만 그 단절이 반복적인 경험이고 또 단절 이전과 단절 이후가 기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육체가 살아 있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동안은 그것을 단절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단절을 필요한 단절이라 믿고 산다. 그리고 그런 단절을 휴식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사람이 자지 않으면 죽는다는 믿음도 있다. 실제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수면은 어제와 오늘의 단절이고 공백이다. 혹자는 매일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죽음도 수면처럼 기억을 매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살려고 아등바등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평화가 올까? 아니면 무모함이 상식인 세상이 될까? 아마도 후자 쪽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을 더 작은 존재로 만듦으로서 자신을 만들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를 상정하게 한다. 죽음이 그저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통과의례라는 종교적 믿음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많은 종교의 경전들이 지금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채워질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내 삶의 일부가 공백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아침이 있다. 오직  간교한 기억 만이 어제와 오늘을 이어줄 분 사실 그간의 시간은 단절에 가깝다. 그런 아침이면  진한 커피 한잔으로 위장을 틀어 막으면서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시간의 역류를 원천 봉쇄하려 해본다. 하지만 어떤 날은 커피의 장막을 뚫고 어제의 악취가 올라오기도 한다. 악취의 대부분은 소장 대장을 거치며 곱씹어 볼 염치도 없는 그런 시간들이 때문이기 보다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소한 후회들이 삭지 못한 것들이다. 차라리 항문을 통해 거침없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나오는 가스들은 악취를 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시간의 지꺼기들이 배출될 즈음에는 시원한 소리가 사라지고 그 공백을 악취가 메운다. 악취는 배설의 전조이면서 또한 혼자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신의 배려이다. 작은 사각의 공간에서 배설은 기쁨이 되고 안도감을 주지만 시간의 시체들을 오감으로 확인해야 하는 뒤처리 공정이 요구된다. 그런 공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간을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없다. 악취 때문만이 아니라 뒤처리를 하지 않은 찌꺼기들은 인간에게 독을 뿜어 살을 짓무르게 하거나 거동의 자유를 박탈한다.인간이 인간답게 움직이고 살려면 배설되는 시간의 찌꺼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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