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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병원 일기

 

[병원에서 적은 일기]

본의 아니게 올해 두 번째로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눈앞에 펼쳐지는 여러 광경을 때론 무심하게 때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응급실에 머무는 시간이 짧았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다친 곳이 조금 더 밑이나 조금 더 위였다면 위급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아주 적절한 위치였는지라 크게 마음을 졸이지는 않을 수 있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이지만 병원 침대가 불편하기도 하고 같은 병실의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코고는 소리에 예민해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차장 옆 등나무 휴게소로 나와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누구 하나는 아주 침착하게 일을 처리해야한다.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객관적인 판단해야한다. 대범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여야 하기도 하는데 때론 주변의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환자 뿐 아니라 가족을 안심시키는 나름의 방법이다. 물론 스스로 버팀목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든 역할이다. 그럴 때는 가장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역할을 부탁하는 것이 낫다. 응급실에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가족 모두가 비병을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 때는 모두가 응급환자들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가족 중 누구와 논의해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 그러다 간혹 그런 보호자를 진정시키려고 큰소리로 진정시키려거나 보호자들을 응급실 밖으로 나가라고 하게 되면 그것을 빌미로 보호자와 의사 혹은 간호사들이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응급실은 인간이 축적한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펼쳐져야 하는 장임과 동시에  가장 막무가내로 분출되는 감정과 맞닥뜨려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간혹 환자 보호자들 중에는 그들이 그렇게 감정적인 제스처를 보여야만 그들의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지 환자에게 충실한 것이 아니다. 생명의 끈이 남아 있는 한 최대한 침착하고 냉정해야 한다. 그것은 탯줄을 자를 때와 같다. 새 생명을 얻은 기쁨과 환의로 탯줄을 난도질하지 않듯 응급실에서의 모든 상황은 아주 차가울 정도로 환자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이고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한다....(앵? 글이 왜 이렇게 풀리지?)

 

처음에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인데 언제나처럼 나의  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우선 학교 근처의 병원 응급실에 있는 아들 녀석을 보았다. 첫마디가 "미안해요 아빠"다.  마음이 착한 아이라 부모를 걱정하게 한 것을 무척 미안스럽게 생각하는 표정이 눈에 보인다. " 어릴 때 누구나 한 번 쯤은 크게 다칠 수 있어. 그리고 남자는 그래야 이야깃거리가 많아져, 괜찮다! 이미 다친 것은  어쩔 수 없어. 네가 나빠서 다친 것이 아니니 네 스스로 책망하지 마!  지금부터는 빨리 낫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네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나쁜 것이야."라고 말해주고 담당 의사를 만나러 돌아 섰다. 그런 내 뒤통수에 내말에 감동 먹은 아들의 존경의 눈길이 닿아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주 적절한(?) 부위가  다쳐  정말 다행이다. 그곳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다하여 이비인후과 의사인 친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장 적절한 의사를 추천받고 또 이 곳 병원에 도착해서는 이곳과 연줄이 닿을 만한 여동생에게 부탁하여 병실과 처치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아버지 덕에 병원 생활 잘하는 법을 경험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붓기가 가라앉아야 수술이 가능하단다. 입시를 앞둔 녀석이어서 시간적 손실이 크다. 수술을 기다리며 병실에서의 시간을 활용하도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라고 했다. 적절한 동기 부여도 하고...ㅎㅎㅎ 녀석이 웃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 이렇게 적으려 했던 것인데....)

 

 

[금연이라고 적고 흡연이라고 읽는 휴게소 풍경]

1.

" 어이 오랜마이다!" 마른 체구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남자가 다가오며 내 옆의 사내에게 말을 건넨다. 아까 낮에 서른도 안돼 보이는 젊은 여자와 맞담배를 하며 내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남자다. 아파서 좀 삭았거니 싶었는데 내 옆 남자와 친구 사이인 모양이다. 그 사내는 대머리에 영판 50대 중반을 넘긴 모양새인데...'참 재주도 좋지'하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 그래 잘 지내나? 우째 이 병원에 와 있노? 어데 아푸나?"  사내는 "그래 쪼매..."라며 말끝을 흐린다. 대머리 사내는 " 어데가 아픈데"라며 재차 묻는다."암이다, 간암..." 순간 대머리 남자는 묘한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이 어색한 순간을 어떻게 할지 몰라 무단히 병원 건물을 한 번 훝어 내리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동안 사내는 담배를 조용히 몇 모금 빨아 문다. 대머리 사내가 "암이모 잘무야 낳는데.. 그란데 담배는 묵지 마라!"며 말을 꺼낸다. " 3년 전에 한 번 수술 받았는데 나은 줄 알았디만 전이가 됐다카네... 수술도 안 해준단다.""암이 수술로만 고치나! 여어 보다 용한데 마안타! 다른 가 보거라! 담배 묵지 말고!" 대머리 사내는 나무라듯 말하지만 말투에 걱정하는 마음이 베여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대머리 사내는 무슨 생각인지 말을 잇는다. "여서 아아들 마이 갔다. 니 용대 알재? 가도 여서 갔다 아이가. 가 형도 가 여동생도 여서 가고...다 간암으로 갔다 아이가. 아매도 공씨 집안 유전인 갑따. 나도 5년 전에 부산대 병원서 고생 쫌 했다 아이가. 아직은 별 이상 없다카네. 음식 조심하고 운동도 꾸주이 했다 아이가"  조용히 듣고 있던 사내가 다시 담배를 물며 말한다. " 니도 암에 걸리밨꾸나. 욕 마이 밨재? 나도 3년 전에 독하게 마음 묵고 치료했다 아이가."라면서  당시 자신의 암투병기를 10여분 이어 나간다. 마치 되역 군인이 훈장을 보며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는 투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그가 절절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초월했을 것 같은데 말하는 표정이나 어투로 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엇박자를 보이며 대화를 이어 나가다가 맞담배 하던 젊은 여자가 등장하자 힘내고 얼른 나으라는 둥 돈 많이 벌라는 둥 서로의 가슴에 와 닿지 않을 말을 건네고는 '또 보자'며 헤어졌다. 가만 엇박자를 정리해보니 대머리 사내는 사내와 같이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죽었는데  살아 있는 사람도 자네 앞에 있으니 용기를 내라는 말이었고 사내는 이미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살만큼 살았으니 되었다는 자조였다. 하지만 그 자조는 맞은 편 양지에서 링거거치대에 의지한 채 캡을 쓰고 멍하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중년 여인의 침묵보다 가벼워 보였다.

 

다시 담배를 물었다. 정자에는 금연이라는 팻말이 기둥에 붙여져 있다. 하지만 다들 여기서 담배를 핀다. 흡연 적발 시 1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음에도 이곳에 앉은 사람 누구도 담배 피는 사람을 말리지 않는다. 간혹 어떤 사람이 "여기 금연 아니야?"라며 주변 사람이 들으라는 듯이 앞 사람에게 말하지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은 언제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들이다. 환자복을 입고 담배를 피는 사람들,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비흡연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감한 시민은 여기 병원에서는 없다. 그리고  그런 흡연자들 옆에서 담배를 피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묻어가는 거다. No Smoking을 Know Smoking으로 읽으면서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엇박자들이 너무 뻔뻔하게 우리 곁을 돌아다닌다.  

 

2.

새벽 5시 쯤 되면 이 주변은 온통 달달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주로 머리에 두건을 쓴 사람들이 이동식 링거거치대를 끌고 주차장을 도는 소리다. 힘겹게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꼿꼿한 자세로 제법 빠른 걸음으로 운동하듯 걷는 사람도 많다. 환자복만 아니라면 그리고 링거거치대가 아니라면 이곳은 영락없는 동네 산책로다. 그런데 이곳은 동네 산책로와는 다르게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비장하다. 그들의 표정만 보면 환자복은 전투복이고 이곳 주차장은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이다. 그들은 걸으면서 암을 이기겠다는 의지를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게으른 몸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단호하게 자신을 훈련시킨다. 새벽을 벗겨내고 있는 그들의 절대 가볍지 않은 걸음들... 이 보다 더한 교육 방송이 있을까?

 

3.

여성 흡연자들이 많아졌을까? 아니면 여성들이 더 이상 숨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여서 많아져 보이는 걸까? 예전에는 담배 피는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워 물려면 적어도 지긋한 나이가 되어야 하고 몸빼 패션에 다라이 하나쯤 이거나 허리춤에 끼고 있어야 했다. 그들의 담배는 삶의 위안이거나 애환의 자조처럼 여겼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들과의 맞담배를 거북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긋한 나이임에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물면 그건 영락없는 유한마담이라 여겼고 남자들은 눈치를 주거나 피던 담배를 끄고 자리를 피하거나 실없는 비아냥을 던지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 둘 셋...삼십 여명의 흡연자들 중에 열 명이 여성이다. 나이도 20대에서 60대가지 다양하다.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듯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맞담배를 하고 있는 남성들이 주변을 살피는 눈치다. 마치 최근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유행어인 "그 느낌 아니까!"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도 아직은 살짝 편치 않다. 특히 20대 여성이 남에게 불 빌리러 올 때는...

 90년대만 하더라도 공항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는 여성들은 콧대 높은 서양여성 아니면 일본 여성들이었다. 특히 일본 출장 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는 여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미 그 때 담배에 대한 예절에는 옭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사람이란 게 선입견이 대단한 거다. 지금 내가 가진 선입견은 담배를 예절로 둔갑시키고 그것을 성차별에까지 이르게 한 그런 선배들에게 교육받은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런 사회 문화적인 현상의 본질을 좀 더 일찍 꿰뚫고 인식하지 못한 나의 아둔함  광고하는 것이다.

흡연은 습관이다. 그리고 중독이다. 왜 금연을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참 많다. 핑계도 많다. 내가 쓰는 핑계는 '글 쓸 때는 정말 담배 없이는 곤란하다'라는 것인데 그저 박약한 의지를 드러 내놓고 이야기하기 싫어서 하는 말이다. 직업이 작가도 아닌데 뭔 그런 핑계를 대는 건지. 몸에 좋지 않은 나쁜 습관을 창의적인 작업과 연계해서 희석해 보려는 얄팍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런 내가 싫다며 또 한대 피운다.   

 

[병실 운]

1.병실에서 한 열흘 있다 보니 우리 아들이 최고참이 되었다. 대부분 고참이 좋은 것이지만 병원에서 고참이야 그리 반길 것은 못된다. 하지만 병실 고참에게도 특혜는 있다. 창가 자리라든가  에어컨 옆자리라든가 아니면 비교적적 공간이 넓어 간병인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자리라든가 하는 것이 고참 차지가 된다. 그리고 병실 고차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병실 고참이 먹을 것을 나누고 신참 환자의 불편을 도와주고 하는 분위기로 가면 그 병실은 대부분 협조적인 분위기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참이 고참의 권리만 주장하고 병실 내의 부대 장비 이를테면 공동 수납장이라든가 냉장고 선풍기 등의 사용 우선권을 주장하게 되면 그 병실 분위기는 별로다. 다행히 아들이 처음 입원했을 때 미처 물과 먹을 것도 준비 못한 우리 부부를 보고 옆 침대에서 음료수와 김밥 바나나를 나눠줘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식사 후 과일을 후식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하루를 있어보니 각 침상에서 간식이나 후식을 내어 병실 식구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참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도 통닭을 주문해 식사가 가능한 환자나 환자 가족과 함께 나누었다. 그 후 환자나 보호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에 대한 정보나 의국에서 전해오는 처치 시간 알림을 전해 주기도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신참들은 그런 것을 부자연스러워하고 다른 환자들과 섞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뭐 그런다고 병실 생활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지만 그들은 같은 방 사람들과 인사나 미소를 나누지 못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리고 사회에서는 서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보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이로 바뀌어 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 아마 몸을 치료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은 치료를 경험하는 것이리라.    2. 병실 생활도 지역마다 차이가 좀 있다. 대체로 지방의 경우는 병실이 서로 배려하고 도우는 분위기다. 그런데 서울은 좀 다르다. 아파서 온 사람들인데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줄 것 같은 환자들이 텃세도 부리고 또 간병인들이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같이 못 있겠다고 병실 바꿔 달라는 주문이 간호데스크로 거의 매일 접수되고 어떤 병원은 그런 환자에게 퇴원을 종용하기도 한다. 그런 서울 병원에서 아버지 퇴원할 때 얼굴보고 인사한다고 재활 치료 중에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의 놀라운 병원에서의 처세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 분도 이천 촌사람이었다. 어디가나 시골 인심이 있기 마련이다. 서울의 병실에서도 시골인심이은 살아 있다. 그런 인심을 만나는 것도 운이 있어야 한다. 병실에 사흘 있다 간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가 외래를 들렀다가 병실을 찾아 왔다. 혼자 있어서 외롭겠다 싶어 음식도 나누고 말도 나누고 수술 전에 영어로 기도도 해 주었던 것이 고마웠나 보다. 나는 그이 덕분에  통역 조금 해주고 간호사들에게서 존경의 시선과 함께 남다른 대접을 받은 터라 이미 보상을 받았는데 이렇게 와서 또 인사를 해주니 고맙다. 그에게 이것이 한국의 시골인심이라 말해주고 싶었는데 적당한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 ' country mind'라고 말하고 a feeling you can feel at your hometown 이니 a farmer's mind that is opened to outer world and generous to other people이니 하며  이런 저런 부연 설명을 했다. 알아듣는 듯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그만이다. 그가 돌아가고 아들 녀석 옆에서 책을 읽다가 내가 쓴 영어가 궁금해서 시골인심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없다. 아마 다음에도 시골인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짧은 영어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병실 엘리베이터 안]

"아빠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해?"

" 아빠 나도 죽어?"

"무서워!"

엘리베이터에서 6살 쯤 되는 남자 아이가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울더니만 아빠에게 매달려 울먹이며 하소연을 한다. 무안해진 아이 아빠가 짐짓 야단을 쳐보지만 실은 이제 30대 정도로 보이는 그도 아이의 말에 적당한 답이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아이가 아파 저렇게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한다면 제 정신으로 무슨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어릴 적엔 태풍 소식이 들리면 꽤 무서워하곤 했다. 혹시 태풍에 뽑힌 나무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강물이 넘치면 우리 집이 어찌 되지 않을까 겁을 먹기도 했다. 태풍은 재양의 상징이었고 그 재양이 고스란히 내게로 올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넌지시 물었다가 호들갑이라면 핀잔만 받았다. 그 후  중학생 쯤 되고서는 태풍 오는 날 강가로 가서 물 구경도 하고 우산도 없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 오히려 드센 비바람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태풍이 온다고 하면 일부러 남천동이나 태종대 인근에서 파도를 구경하기도 하고 일부러 동네 뒷산을 올라 태풍에 잔뜩 움츠려든 도시를 구경하곤 했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다소 어수선하지만 이전의 일상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일상이 이내 자리를 잡는다. 삶에 있어 불행이나 불운을 걱정하다 보면 그것이 다 자기에게 다가 올 것만 같다. 하지만 닥치면 그것은 또 다른 일상일 뿐이다. 때론 그것을 즐길 수도 있다.  바로 이런 느낌을 아이에게 전해야 하는데... 아이의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겠지. 그저 스스로 개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답일지 모른다. "너는 건강하니까 계속 밥도 잘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 꺼야~, 그리고 네가 자랄수록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이겨나갈 힘이 생길 거니까 걱정 마"

 

 [퇴원 전날 밤]

 이 병원에는 암병동이 있다 보니 암환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병으로 인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앞당겨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순간이란 단어를 생각하니 인생이 참 책과 닮았다 싶다. 책을 읽다보면 항상 마지막 페이지가 궁금해진다. 특히 어렵고 지루한 책일수록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거나 뒷부분으로 건너 뛰어 어쨌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려고 애쓴다. 누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위해서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책들의 마지막 페이지는 보통 평범하다. 책 중간의 어떤 챕터의 끝부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뭔가 하이라이트가 있을 것 같고 멋있는 말로 마무리가 되었을 거라 매번 기대하지만 그런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책의 한 부분일 뿐. 오히려 감동은 책의 중간 중간에서 발견된다. 책의 재미도 어느 정도 전후 관계가 파악이 된 중간 쯤 부터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 왜 사냐고? 내 마지막 순간이 궁금해서이다. 그리고  그 순간도 지금처럼 평범할 것이고 내 삶의 여느 순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나는 단지 세상을 이어가는 작은 디딤돌일 뿐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럭바위의 꿈을 꾸고 살았고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너럭바위의 꿈과 전설을 이야기하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다행히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어디쯤인 줄 모르기에 그 페이지가 궁금하고 또 내 소망에 희망이 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알찬 내용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꽤 비싼 병원비 청구서를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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