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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들

친구 故 이우만과의 마지막 여정

 

 

친구의 죽음을 대하기 두렵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있기를
터지는 눈물을 숨길 수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천천히 네가 누운 곳으로 향한다.

 


- 장례식장

 

네 영정을 보자 마자 눈물이 북받쳐 한참을 운다.
나 말고도 너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잊은 채,

네가 남긴 예쁜 둘째가 아빠가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조문을 방해할까 싶어 밖으로 나오니 네 사진이 보인다.
15호실 故 이우만.
죽음이라는 실존과

살아 있는 자들의 죽음의 의미가 만나는 이 공간에

네 얼굴이 왜 사진으로 걸려 있는지 몹시 낯설다.


한 때 우리는 같았는데
너는 송장이고 나는 육체고
너는 혼이고 나는 백이고


우리는 종종 서로 기대었는데
마주하여 같이 웃고 대답하였는데


너는 혼자 앉아 볼에 경련도 없이
그저 미소만 짓고 있고
마주 앉은 나는 마음이 떨려
너를 보지도 못하고 혼잣말만 한다.


잘가라, 기다려
내 사는 동안은 잊지 않으마.
그리고 나 역시 하늘의 부름을 받는 그 때는
우리 같이 있겠지.
그 때 또 친구하자구나.

 


-입관

 

지난 가을 보았던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얼마나 아팠으면 그리 파르르 질린 얼굴이 되었을까
팔 한 쪽 내어 주고도 삶을 선택한 네 의지가
이렇듯 무참히 나무관 속에 갖혀 버렸다니

 

이제 다시는 못보게 될 얼굴을 
눈으로 손으로 볼로 기억하려는 가족들 뒤에서
그저 나는 마음으로 너를 담아 두고 돌아 선다.

 

네 얼굴을 한곳도 놓치지 않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네게 말을 거는 주형이
너는 얼마나 말을 하고 싶겠니
사랑한다고 행복해야한다고... 

 


-발인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이 아니라 산 자의 몫이며
살아있는 동안 어디 있는지 모를 일상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죽음만큼 깊은 생각과
죽음보다 깊은 추억과
죽을 만큼 애틋한 사랑을
알지 못하리.

 

온전한 네 육신이 3일 간 머물렀던 곳
너에 대한 기억으로 모인 사람들이
잊혀진 만남의 기억을 엮어 내었던 곳
 
이제 이곳을 떠나
하늘로 가는 첫 발을 내 딛는구나.

 


- 장례미사

 

너를 보내는 이 장중한 예식만큼
네 삶이 가볍지 않았음을 본다.
 
사람이기에 넘지 못할 궁극의 벽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삶의 몫을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 

 

네 삶 속에서 만난 神의 영광으로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 동행하기를

 


-노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마저 분쇄당하는 고문이리

 

너를 위해 이 교정에 마련된 장중한 예식 앞에
나는 삶이 참 부끄럽다

 

내가 욕심을 기르고 비우며 싸우는 동안
너는 사람을 기르고 있었구나.

 

이들 중 하나라도 네 삶을 기억하고 산다면
네 삶은 끊임이 아니라 이어짐이요
네가 남긴 시간이 다른 삶의 징검다리가 되리.


 

-추모공원

 

친구가 가는 날이 화창해서 참 좋으이.
그렇게 일찍 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한 쪽 팔 내주고도 머물 수 없었다면
차라리 이런 화창한 날에 가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네.

 

육신을 벗었으니 고향 화천 눈밭도 한 번 딩굴어 보고
팔자에 없는 지리 선생하느라 답사랍시고 다닌 산천 곳곳
다시 한 번 밟아보고 천천히 천천히 그리 가시게.
내친김에 지구라도 한 바퀴 돌아보려나.

 

지난 늦여름에 잡아 본 손이 마지막일 줄 누가 알았겠나.
이럴 줄 알았다면 예전처럼 볼이라도 한 번 부비고 보낼 것을,
혹시나 감기 옮을까 찾아보기를 차일 피일 미룬 것이 못내 불안하더니

그리 훌쩍 서둘러 가버린 것이 너무 야속하다네.

 

서방정토 멀지 않으이, 북망들러 그리 가시게.
천국도 멀지 않으니, 요단강 건너 그리 가시게.

 

자유를 얻었다면 혼일 것이요
바램이 남았다면 넋일 것이지만
가는 자네의 몫은 더 이상 이곳에 생기지 않으니
남은 사람들의 몫이나 잘지켜보게나.

 

육신을 터는 불꽃이 뜨겁지 않았기를...

 


- 묘지에서

 

죽음의 공간은 왜이리 삶이 외진 곳인지

 

죽음의 침묵이 삶의 아우성에 침범 당하지 않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삶의 비겁한 변명이겠지.
삶의 집착과 단절의 두려움이 만든 변명 말이야.

 

이 곳에 사연없는 이가 누가 있겠나.
그러나 그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네.
살아있는 자들의 추억이 배설될 뿐
이제 우리 이곳을 가고 나면 조용한 자네의 침묵만이 남겠지.

 

 

끝내 술 한잔 올리지 않고 온 이유는
혹시 꿈에라도 자네가
술추렴 하자며 찾지 않을까 싶어서라네.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보낸 미안함
살아 있다면 한 잔 술에 풀겠지만
이제는 술 못에 빠져야 풀지 않겠나.

 

 

나 이제 공유하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과
자네가 아는 지 나는 모르는

친구의 장례라는 추억을 안고
삶의 공간으로 돌아 간다네.

 

내 사는 곳이 비록 멀어도
그 사이 망각의 강은 흐르지 않으니
종종 그리울 때 다시 보게나.


 

잘있게,
편히 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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