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가끔 나를 문외-무뢰한[門外-無賴漢]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 공연히 남의 말에 시비나 거는 그런 하릴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여긴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무뢰한[無賴漢] 일정하게 하는 일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하는 사람,
문외한[門外漢] 어떤 일에 전문적 지식이나 조예가 없는 사람.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이 세 여인의 이름이 다 생소하기에 문외한이 맞고, 책을 다 읽고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할 말이 생기니 무뢰한이 맞다.
책은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표지에 사람 얼굴이 있으면 쉽게 안을 파고들지 못한다. 은근히 보는 이의 시선을 피하는 듯이 찍은 세 여인의 사진. 여성을 바라보는 문외한의 눈길은 아무래도 아름다움에 머문다. 맨 왼쪽 여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고, 가운데 여자는 내연녀였으면 좋겠고, 맨 오른쪽 여자는 마누라였으면 좋겠다 싶다. (책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내 촉이 맞았다. 칼로는 감당하기 힘든 여자, 나혜석은 새로운 사랑에 용감했던 여자, 까미유는 로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자였으니...)
저자가 이들 셋을 나란히 한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다시 사진을 뚫어져라 본다. 아름답고 지적인 용모에 고집 있는 표정, 그러나 공허함이 담긴 눈동자. 아마도 이런 공통적인 인상에서 그들의 삶의 유사성이 있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그녀들의 삶을 그녀들의 작품과 잘 버무려서 설명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녀들의 작품들 중에는 미술 교과서에서나마 눈 동냥을 한 것도 있었기에 완전 문외한은 아니고 쪽문 정도는 살짝 발을 집어 넣었다는 안도감도 가진다.
아들에게 물었다.
" 이쁜 여자, 마음 착한 여자, 대화가 통하는 여자 중에 누구하고 살래?"
한참 고민하던 아이가 이쁘면서 마음 착한 여자라고 답한다.
"아빠는요?"
"응 나는 향기 나는 여자~"라고 답했다.
이쁜 여자는 눈 감으면 안 보인다. 대부분의 적당한 거리에 있는 여자들은 착한 여자들이다. 또 호기심을 공유할 수 있으면 대화는 통한다.생각이 달라도 우기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향기는 다르다. 항상 열린 상태여야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후각만 생각해도 항상 열려있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그래서 내가 항상 열려 있고,나를 항상 열어 주고, 내게 삶의 안식과 환희를 침묵으로 전하는 그 향기. 함께 하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숨 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그런 여자 말이다,
남자건 여자건 꽃밭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남자는 꽃밭에 파묻히는 느낌이 좋아서이고, 여자는 꽃보다(적으로 꽃처럼) 이쁜 자기를 상상하기 때문 아닐까? 또 남자는 꽃 향기에 취하면 그 향기에 어울리는 여인을 찾지만 여자는 꽃 향기에 취해 자신의 향기를 잃어버린다. 그러니 남자든 여자든 꽃을 희롱할 자신 없으면 절대 같이 찍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이들 세 여인들의 삶을 불행하다 말할 지 모른다. 자기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들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여성들,아니 현재를 그렇다 느끼며 살고 있는 그녀들에게 이들의 불행은 불행일까?
개인의 행/불행은 철저히 주관적 인식의 결과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도 주관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객관적 행복이나 객관적 불행 따위는 애당초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저울이 어느 한 쪽에만 기울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선과 악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존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 행복의 기대가 큰 만큼 불행의 나락은 깊은 법이다. 또한 바라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다른 행복을 방해한다. 배우 최진실이 자살한 것은 결코 행복에 겨워서가 아니다. 그녀 나름의 불행이 그녀의 행복을 갉아 먹는 것을 방치한 결과이다,
어떤 이는 행복과 불행을 뭉쳐 평균을 내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삶이 행복한지 불행하지 가늠해 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서로를 상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행복으로 가치 있고, 불행은 또 불행으로 가치 있다. 우리의 삶을 하나의 가치로 대변할 수 있는 대명사는 없다. 어떤 삶이든 우리의 몫일 따름이다.
책장을 덮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숙제다. 열심히 한만큼 스스로에게 칭찬 받는 숙제'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책을 책장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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