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주의보]
- 박이도-
홀연히 안개가 덮인다.
視界는 제로, 소문의 환상이 덮인다.
고속도로엔 거북이 경주가 시작된다
먼저 달리는 차가 注意人物이 된다
밤 사이 비행장에 먼저 내린 안개
사막에서 날아온 여객기를 돌려 보낸다
하늘 높이 올라가 SOS, 打電
아침의 비행장엔 고요한 멜로디
안개 속에선 언어의 기능도
오리무중, 미궁에 빠진다
들리는 말의 참뜻을 모른다
모든 말은 허위의 탈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합창을 한다
천둥같이 맞부딪치며 폭발한다
무수한 의혹이 꿈틀댈 뿐
누구도 증언할 수 없는
유언비어, 타버려라
허연 재가 될 때까지,
우리는 깊은 수렁에
빠지듯
시간을 잰다
눈병처럼 퍼져가는
안개주의보,
애드벌룬이 치솟고 있다
안개 속에선 감당할 수 없는
뜬소문이
성욕처럼 일어서고 있다
'홀연히 안개가 덮인다'
나는 이 한 줄에 도저히 다음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이 느낌을 알기 때문이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이 혼자일 때
안개는 정말 홀연히 나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호흡을 할 수 있는데도 숨이 막힌다.
나는 이 경험을 10대와 30대의 끝자락에서 맞이했다.
그리고 아직도 걷히지 않는 안개, 이제는 내 눈을 의심하고 있다.
'안개가 아닌 것이다'라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 익힌 기술이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전의 시기와는 달리 그 계획을 근거로 월급을 받았으니
계획의 프로였던 셈이다. 그래서 늘 매년 매분기, 매월, 매주, 매일을
계획하며 살았다. 그게 지나쳐서 10년 20년 30년을 계획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었었고 그대로 될 줄 알았다.
사소한 수정만 하면 되는 그런 계획표를 자랑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홀연히 덮인 안개가 참 끈질기고도 짙다.
안개를 벗어나려 밟은 엑설러레이터가 오히려 안개를 따라 다닌 꼴이다.
홍콩에서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는데 정작 배는 바다에 떠 있고
안개 속에 갇힌 내가 SOS를 치고 있었다.
그 SOS가 숱한 말들로 되돌아 왔다. 뜬구름잡고 있다고...
심할 때는 사기꾼들하고 어울리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소문은 정말 성욕처럼 일어난다.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불특정 다수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이 안개 속에서 내게 새끼줄을 매고 뒤따라 오는 발걸음들이 무겁고 떨린다.
그들과 나의 시간을 잰다.
물론 박이도 시인이 이 시를 쓴 것은 아마도 시대적인 현상에 대한 고발과
시인으로서의 자책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 그러나 언어가
혼미해지는 시대, 그리고 그 말들에 현혹되는 시대, 언어가 기절하는 시대.
누군가 진실을 말하는데 한 쪽에서는 들리는 말의 참 뜻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진실이라 말하며 허위의 탈을 쓰고 노래한다.
그리고 좀 지나면 허위의 노래는 합창이 된다.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현실에 적어도 언어를 무기 삼아 살던 시인이라면 자괴감을 가질 만 하다.
기차역에서 종종 겪는다.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차비 좀 빌려 줄 수 있느냐고
꼭 갚을 테니 제발 좀 빌려 달라고. 뻔한 거짓말, 속이 들여다 보이는 거짓말
거짓말임을 드러내는 그런 거짓말이 이래 저래 자신은 흠이 없다 말하는
유명한 사람들의 진심 어린 호소보다 오히려 진실해 보인다.
돈이 있어 안개도 두렵지 않을 사람들이 그깟 땅콩을 트집잡다 안개에 갇혔다.
안개 속에서 그들은 그들 탓이 아니라는 안개를 피웠다. 그러다가 십상시 안개에
둘러 쌓였다. 그 안개는 땅콩이 피운 안개를 파헤치고 구치소로 이끌고 갔다.
구치소에서 안개 탓을 할 게다. 그러니 돈을 쥔 자들이 모두 권력을 탐하나 보다.
그리고 권력의 놀이터는 안개 속이다. 안개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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