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하필 제목이 ‘못난 시인’이냐고>
< 못난 시인>을 갑장 여친( 백국? 설국? 설국이 좋겠다.)이 선물해 줬던 그날, 나는 밤에 이 시집을 껴안고 탄식에 탄식을 거듭했었다. 내 감정을 그대로 토해내었던 나의 언어들이 정말 부끄러웠다. 절절한 가슴으로 적어 내려간 못난 시인들의 삶이 그리고 그들의 날 선 언편들이 가슴을 난도질하고 갈고리가 되어 내 눈과 입과 귀와 손가락을 옭아매었다. 심지어 나를 인간이란 동물로 살게 했던 머릿속 내용물들을 화장실 변기 위에 쏟아내어 흘려야 할 것 같았다. 그 날 밤 처음으로 시라는 나의 허영이 적나라하게 초라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묵혔다. 한 달 뒤에 다시 한 번 읽었다. 여전했다.
그래서 또 묵혔다. 차츰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독후감 한 줄 적었다.
< 못난 시인 독후감 >
예전 우리 도덕 선생님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 중에
하나는 꼭 되라 하셨는데
어중간히 든 머리라
어중간히 나지도 못하고
사람 한 번 되어 볼렸더니
손해만 보고 사는 바보라네
요즘은
든 놈들도 나지 못해 안달이고
난 놈들은 가진 놈 앞에 고개 숙이고
가진 놈들 중에 된 놈 별로 없으니
우리 도덕 선생님 선견지명은 없으셨나봐
웬만히 읽었다고 글 욕심을 내어보면
밤새워 쓰는 글에 읽은 흔적 하나 없고
이름 난 사람 글에 되먹지 못한 핑계들
그것 하나 붙잡고 악다구니 하는 못난 놈
머리에 들면 뭐하나
가슴에 든 게 없는데
모양만 잘나면 뭐하나
머리에 든 게 없는데
사람이 된다는 건
이리 저리 핑계만 무성한 거
얼굴이 못나 못나고
잘된 시편하나 없어 못나고
시는 잘 쓰는데 유명 안 해 못나고
유명한 시인인데 인간이 못나고
사람은 참 좋은데 시인이 아니고
시인은 시인인데 시인 티가 안 나고
그저 살아가며 시를 엮겠노라 하여도
저 꼬라지에 시를 쓴다고
시인이랍시고 저래 산다고
지지리 못난 놈
지지리 못난 시인들
서사를 적기에는 서정이 흘러넘치고
선동을 하기에는 인정이 너무 많아
이도 저도 아니지만
삶이 너무 절절해서
아픔과 분노와 부조리에 숨은
수치를 모르는 가면 쓴 본성들을
부끄러운 눈물들로 버무려 내고만
못난 시인들,
그래도 왜 하필 못난 시인이냐고.
예전 우리 도덕 선생님
된 사람 되려거든 신독(愼獨)하라 하셨는데
이 어려운 말을 어린 것들에게 알려주고
지금 편안히 주무실는지
고요히 얻자니 세상을 버려야 하고
투쟁해서 얻자니 삶이 너무 번잡고
그저 되는대로 살라하셨으면
생긴 대로 살다 가라셨으면
그 때는 욕먹어도 지금 술 한 잔 받으실 텐데
원칙은 뭐고 고집은 뭐라서
이리 깊이 심어 놓아서
못난 인생
못난 시인들을 꽃피우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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