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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부메랑> - 신정민

 

< 부메랑 > - 신정민

 

 

말이 돌아왔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미워했다고

 

봄이 돌아왔다

내 앞에 툭, 꽃이 피었다

저 많은 꽃들은 누가 던진 것인가

 

긴 궤적을 그리며 돌아오는 것들

내 손을 떠난 그들의 속도와 비행경로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돌아왔다

어디선가 본듯한 사람들

가방을 내려 놓고, 옷을 벗고 있다

태어나면서 움켜쥐고 나온 목숨

 

어디까지 날아갔다 방향을 돌린 걸까

함부로 던질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던져진 그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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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력의 첫 장이 돌아왔다. 수요일로 시작한 달력은 수요일로 돌아 와 생명을 다 했고,

이제 목요일로 시작한 달력은 다시 목요일로 돌아간다 적혀있다.

 

지난 수요일과 수요일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여행을 보냈는데 주검으로 돌아왔고, 진실규명을 보냈는데 외면으로 돌아왔고, 정규직을 보냈는데 비정규직으로 돌아왔고(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부메랑을 잡으러 굴뚝 위로 오르거나 혹은 길바닥에 엎드리기 조차 했다), 소통을 보냈는데 불퉁으로 돌아왔고, 땅콩을 주었는데 모욕으로 돌아 왔다.

 

새해 첫 해돋이를 보러 백양산을 올랐었다. 추운 날씨에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 정산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해를 맞는 모습은 다양했다.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 합장하며 치성을 드리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묵묵히 태양을 응시하며 각오를 다지는 사람. 누군가 '야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기도 했다. 기독교인의 방언마냥 그 '야호' 속에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많은 말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응답에 대한 기다림도 담겼으리라. 기다림이란 돌아 올 것에 대한 기대이다. 

 

산을 내려 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메아리가 없었지? 산꼭대기라 그런가?' 마침 산 중턱쯤에 서 있은 지라 크게 소리를 질러 보았다. 역시 메아리는 없다. 도시에 포위된 산이라 소음이 메아리를 잡아 먹은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메아리마저 도시에서는 구하기 힘든 세상, 메아리가 없는 인간관계에 익숙해진 도시인들, 누군가의 메아리가 되어주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내 마음의 여운을 돌려주는 메아리가 아니라 내 마음과 다른 메아리가 돌아오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뢰(Trust)가 쓰러져가는 만큼 메아리(Belief)도 묵음이 되어 간 것이다.  

 

보통 여류 시인하면 곱상한 언어에 섬세한 감성의 떨림이 숨겨진 시를 예상한다.그러나 신정민 시인은 그런 예상에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타입이 아니다. 세상에 늘 존재하는 균열과 그 간극에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의외의 소재로 그 시선 끝에 닿아있는 세상이 전하는 소리를 진지하게 풀어 낸다. 철학이 철학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느낌으로 풀어진다.

 

'말이 돌아왔다 / 사랑한다고 했는데 미워했다고' 사랑한다 했는데 사랑한다고 돌아오면 그건 메아리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미워한다고 돌아오면 그건 대답이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했는데 미워했다고 돌아오다니, 이건 미칠 일이다. 말이 왜곡되면 진실과 진심은 숨는다. 조작과 가식이 판을 친다. 필요에 의한 조작이고 필요에 의한 가식이었다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고 그게 진심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자연의 알 수 없는 섭리는 항상 진실만을 되돌린다. 꽃이 그렇고 '태어나면서 움켜쥐고 나온 목숨'이 그렇다. 내가 타인이라 주장하는 불신의 원흉들도 불과 몇 백 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면 피 한 방울쯤은 튀었을 법한 '어디선가 본듯한 사람들 '이다. 그러니 '네 탓'이라 함부로 던질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 날아갔다 방향을 돌린 걸까/ 함부로 던질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던져진 그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마 이 시가 시인의 지천명 언저리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몸이 먼저 말해주는 나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간을 직선의 궤도 위에서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인생도 그렇다 믿는다. 태어나고, 살고, 죽고, 영혼이 되고 그리고 계속해서 무언가로 또 산다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우주를 이루는 무언가로 돌아갈 뿐이다. 신이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었다면 날아가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다. 어떻게 폼 잡고 나느냐가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소명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목요일로 시작한 한 해, 가슴에 나무 하나 심어야겠다.

'내 생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올해는 무엇을 할까? 아니 지금 무엇을 할까?' 라는 나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