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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편지> -천상병-

 

 

 < 편지 >
         -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스런 적도 없진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주막에서]란 시집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 시집이 초간 된것이 79년이고
내가 93년에 17쇄본을 샀으니 참 오래된 편지다.
내게 배달되었던 시점으로만 따져도 20년이 지난 편지다.
그래서 그런지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이란 대목에  묘한 회한이 든다.

93년 당시의 나에게 문학적 열정은 진지함보다는 과시를 위한 허영이었다.


소설 읽는 사람을 책 읽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고, 남의 시를 읽는 것은
내 시 세계(우습고 부끄럽지만 그 때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의 독창성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직원들의 역량을 길러 본전 뽑겠다는 사훈이 걸린 외국계 회사에 다니던 때다.
유난히 많았던 사내 교육, 그리고 그 결과가 개인 고과에 반영되는 때문에
대학 다니면서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여러가지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기법들에
심취해 있을 때다. 신천지였다. 정말 세상사는데 도움이 될 것만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책들만 찾았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시집을 샀던 걸까?

 

<회상2>라는 시가 적힌 페이지가 접힌 걸 보니 아마도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 시 <편지>는 시인의 가난에 대한 철학을 적은 것이라는
별도의 해설이 책머리에 있었음에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에게는 가난에 대한 공감대란 세포 자체가 없었다.
내 처지를 상대적 빈곤이란 표현을 하고 했었지만 그건 가난해서가 아니엇다.
부에 대한 내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성공에 끊임없이 굶주려야만 더 많은
성공이 끊임없이 내게 제공될 것이라는 일종의 부적과 같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편지>가 읽힌다.

 

점심 한끼 얻어 먹은 후의 그 포만감이 얼마나 컸었던 것일가?
점심 끼니를 거를 정도의 가난을 잊을까 스스로에게 편지를 쓸만큼 궁색한 삶,
그 궁색함을 걷어낸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이라 했지만 기실 그는 한잔 커피값과
두둑한 담배 한갑에 행복한 아침을 맞노라 했었던 양반이다.    
그래도 가난은 특히 남자인 그에게는 늘 짐이었던 것이다. 내일을 신앙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은 왠지 내 상념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다.
특히 이십년 전의 아버지에게는 아주 긴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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