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독후감

< 산 > - 유치환 -

 

 

< 산 >     - 유치환 -
 
그의 이마에서부터
어둔 밤 첫 여명이 떠오르고
비 오면 비에 젖는 대로
밤이면 또그의 머리 우에
반디처럼 이루날는 어린 별들의 찬란한 보국을 이고
오오 산이여
앓는 듯 대지에 엎드린 채로
그 고독한 등을 만 리 허공에 들내어
묵연히 명복하고 자위하는 너
- 산이여
내 또한 너처럼 늙노니

 

 

 

사람들이 가을 산을 많이 오른다. 꽃보다 더 화려한 활엽수들의 향연을 보기 위함이다.
실로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은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은 신부의 자태보다
더 눈부시고 화려하며 아름답다. 더우기 신부에게서 볼 수 없는 원숙미가 있어
그곳에서 발을 빼고 하산하기가 만만치 않다. 30대 여인에게 마음 뺏긴 중년남의
미련같다는 농도 들린다. 어떤 이는 겨울이면 아무래도 산을 가까이 하기 힘드니
조바심이 생겨 더 열심히 산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 모두 산을 사람 취급했다.

 

이 시에서 청마도 산을 사람 취급하기는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눈을 뜨면서 하루를 시작하듯 여명은 산의 이마에서 시작하고
숱한 밤을 깨어 잠못들고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별빛을 비추는 등대같은 산,
우리가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싶다면 그건 바로 산을 닮은 사람일 게다. 
그래서 남자는 산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시인)의 산은 앓는 듯 대지에 엎드려 있고
고독한 등을 만 리 허공에 드러내고는 태양과 별들에게 그 존재의 명분을
내어줄 수 밖에 없는 무력감, 비가 내리면 그저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 

꽃과 단풍을 걷어 낸 존재 자체로서의 산은 어쩌면 항상 외로운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여성성으로 치장되어 가는 남자 말이다. 

 

별처럼 빛을 내는 아파트 단지 뒤로 병풍처럼 히믈끄레한 형체만 보이는

산을 보고 있자니 유독 청마의 <산>의 심경이 와 닿는다. 

 

 


통영의 시인 유치환은 부산과 관련이 깊다.
부산 초량에서 버스에 치여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후배 문인들과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라고 한다.
청마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논쟁과 비공식적인 논쟁이 있다.
공식적인 것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청마를 친일문인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고
비공식적인 것은 그의 여성 편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공식적인 것은 옹호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 모두 증거를 가지고 말한다면서도
서로 더 많은 증거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애궂은 이원록(264)마저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전력으로 친일 논쟁의 늪에 빠질 형국이다.
서로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지 하는 생각이든다.

 

비공식적인 것은 청마 사후에 시조시인 이영도에 의해 공개된 20년간의
5,000여통에 이르는 연서와 <행복> <그리움>등의 절절한 고백과 그리고
저 좋다는 놈 밉지 않다고 이영도가 마음을 살짝 내보인 시조 몇 편은(<무제><탑>)

시인들이 아니라면 은근짜들의 전형이다. 그리고 입으로 전해지는
청마의 부인도 아니고 이영도도 아닌 다른 여인과 함께(?) 있는 장면의 목격담
등등이 가끔 시인들의 사회에서 술안주가 되나보다.

 

시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시를 짖는 이는 시인이지만 시가 시인의 인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완벽한 인격만이 아름다운 시를 짓는 것도 아니다.
시인들도 스스로 안다. 그들 속에 있는 속물적인 근성들을..
그리고 그 근성들을 세상을 사는 평범한 한 인간의 속성이라 변명한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시인이라면
그를 책망하는 이들에게 궁색한 변명을 말아야 한다.
미당같은 이의 변명은 그가 그린 '국화'마저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서평·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   (0) 2014.11.17
<편지> -천상병-  (0) 2014.11.08
<길> - 도종환  (0) 2014.10.24
[도라지꽃 신발]- 안상학  (0) 2014.10.22
[밤]-김수영-  (0) 201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