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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삼당시인에 대한 생각

 

백광훈(白光勳)최경창이달 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한다.


송시(宋詩)의 풍조를 버리고 당시(唐詩)를 따르며 시풍을 혁신했다고 해서 그렇게 일컫는다.
송시냐 당시냐 하는 시비는 아주 심각하게 전개되었으니 가볍게 벌 수 없으며, 중국문학 영향 관계로 처리하고 말 것도 아니다.
송시는 사변적이며 기교적인 것을 특징으로 삼아 당시와 구별된다고 한다. 고려 때에도 송시의 기풍으로 기울어지는 조짐이 보였지만, 조선 전기에 이르러서는 사대부문학이 난숙하고 세련된 경지에 들어서자 송시와 더욱 밀착되었다.


官僚文人(勳舊派)들은 작품의 효용성을 강조하면서 공명을 세우고 지위를 과시하는 방편으로 생각하였고, 士林派(道學派)에서는 문학을 性情 陶冶의 수단으로 간주하여 규범적인 작품을 지향하였으며, 方外人 문인들 역시 현실초탈을 시도하는 방책이라고 여기면서 작품 장착이 중요한 자기 임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시가 자연스러운 감동에서 멀어지고 인정이나 세태의 절실한 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 폐단으로 지적되었으며, 방향전환을 위해서 당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특히 박순처럼 영향력 있는 문인이 선두에 서자 사태의 추이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삼당시인에 이르러서 새로운 방향이 뚜렷한 성과를 나타냈다. 그래서 효용을 위한 문학, 규범을 위한 문학, 탈출을 위한 문학이 아닌 경험을 위한 문학을 이룩해서 고상하고 관념적이던 시세계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정감의 차원으로 방향전환을 하고자 하는 사조가 대두하였으니 이것을 우리는 보통 唐詩風의 擡頭로 인식하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그룹을 三唐詩人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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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시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한다. 왜인지는 딱 꼬집을 수 없으나 예전 부터 글줄 꽤나 읽는다는 사람들은 시를 읽고 시를 쓰는 것이 그들의 교양이자 그들 학문의 성과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기에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그 삶을 좀 더 깊이 바라보고 또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민족인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시는 지혜의 문이 아닐까 싶다. 남다른 안목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外物이 진실되게 말하는 것을 들어 그것을 언어라는 형식의 또다른 외물로 존재하게 하는 것, 어떤 시인을 시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시를 잣는 일을 구도의 방편이라 여기기도 하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어를 어떤 도구로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비단 지금에 이르러서의 것만이 아님을 삼당 시인이라는 문구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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