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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철부지론

철不知論

 

글이란 것이 어딘가에 고여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흡사 화장실에서 몸풀듯이(?) 글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남편을 과대 평가한 아내의 덕택으로 글을 짜내려하니 ~~

! 하나님의 성차별로 남자로서는 도저히 겪을 없는,분만실에서

몸푸는 고통에 버금가는 고통을 아는지.....

 

 

사전에서'철부지' 찾으면 '철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적혀있고 한글'' 한자어'부지(不知) 합성어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 모른다는 것인데 모르는 ''

무엇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철不知' 있다.

 

첫째가 , 계절의 어느 때를 가리키는 '' 모르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時宜 適切'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빨라서 손해 보는 경우도 많고 늦어서 욕먹는 경우도 많다.특히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 습관적으로 늦으면 '왕따' 당하거나 회사에서 조용히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주변에서 보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를 알고 처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게 전체를 보고 맥을 짚는다.일의 始終을 살피고 '' '' '우리' 살피고,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짚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몸에 베인 사람이다.

 

번째는 ''不知이다.

글자의 뜻에 충실하자면 사리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철학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자 한다.흔히 개똥 철학이라도 철학이 있는 사람은 주관이 있다.반면 주관이 없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귀가 얇은 경향이 있다.귀가 얇은 사람의 최대 장점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수용한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지나가는 말도 놓치지 않고 귀에 담아둔다는 것이다. 항상 귀를 열어 두고 정보를 구하는 데는 정말 열성적이다.그러나 문제는 그로 인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이라면 내게도 좋다 싶어 무조건 따라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철부지와 대조적인 사람이 '철난 사람'이다.대체로 철난 사람들은 주관이 뚜렷하되 옹고집이나 아집과 대별되는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그리고 다른 사람을 수용할 아는 힘이 있다.

 

번째는 ''不知 이다.

鐵은 가지를 암시한다. 하나가 무게이고 하나가 강인함이다.

무게로 따질 때의 철부지는 輕重을 가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거운 것일수록 들어 올리기 힘든 법이다. 때론 쉽고 가벼운 것을 들어

올리다 보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힘과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지만 쉽고 가벼운 것에 익숙해져서 무거운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이 문제다. 요즘은 사람들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특히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가볍게 보아 넘기는 경향이 부쩍 늘었다고 걱정하는 어른들도 많다.무게 있는 마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우리는 알고 있다. 비단 말에 관해서 만이 아니라도 일의 순서나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든 것에 경중을 가릴 필요가 있다.

 

강인함으로 따질 때의 철부지는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이다.

外柔內剛하라고 배웠다. 밖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안으로 굳센 기상을 품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밖으로는 억세고 자신에게는 우유부단한 소위 外强 內柔한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자신에게 모질지 못하여 자신의 허물이나 게으름은 용서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은 꼬집고 가는 밖으로만  强한 사람 역시 철부지인 것이다.관리의 대상이 되는 삶은 부자유스럽고 때론 타인의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관리하는 삶은 아름답고 자유롭다.스스로를 관리하는 강인함을 지닌 사람은 '철든 사람'이다.

  

번째가 ''不知이다.

'' 가운데가 도톰한 부분을 일컫는다. 이는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는 뜻이다. 살아 가면서 무게 중심을 벗어난 가장자리의 치장에 열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여주는 부분 , 남과 끝이 닿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정력을 낭비하는 경험을 곧잘 하게 된다. 좋은 옷에 ,좋은 차에 그리고 장신구에 심지어는 성형 수술에 이르기 까지 ...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이 중심에 없음을 너무나 알고 있다.

신앙인으로서는 중심에 하나님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무게 중심은 '사람다움' 있고 사람다움의 요체는 자기 진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게 중심을 찾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소명과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삶을 계획한다. 그리고 실행한다,자신의 주변과 더불어서...

 

다섯 번째가 ''不知이다.

이런 류의 철부지를 만드는 데는 세종대왕도 하셨다.

'나랏 말 미.... 뜻을 시러 펴지 못하 노미 하니라'

'뜻을 시러 펴고는 거두지() 못하 노미 하니라' 의미의 철부지를

말하고자 함이다.

'거둔다'함은 시작한 일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우리의 선조들은 '시작은 있으되 끝이 없음' 경계하라고 가르치셨다.우선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것에서 시작을 하고 마무리를 보지 못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이는 '거둔다' 것에 '책임을 진다'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음을 간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런 책임 의식의 부재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악영향을 끼쳤는지 우리가 기억하는 최근 십년의 시간 속에서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광주 항쟁의 많은 이유 없는 죽음들 그리고 IMF 이르기까지 엄연히 벌어진 일들인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撤不知는 스스로뿐 아니라 서로에게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철부지 육아론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시나 수필은 30 이후에나 맛이 있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 난다. 아마도 30대가 되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부모의 심정이 되어서야 자신의 부모도 이해하고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있을 것으로 보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 된다.

 

철부지 육아론

 

앞에서 다섯 가지 철부지를 예를 들었다.철부지론만 거론하자는 가지

의미에서 나는 철부지가 아니라고 강변해 보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나는 위의 다섯 가지 철부지에 해당하는 같다.

 

'부모됨' '자식됨' 의미를 새롭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비친 거울을

닦는 작업이기도 하다.거울을 닦는지는 논외로 하고 나의 철부지 육아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哲학을 가르쳐라.

철학은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은 부모와 생각을 공유하는 데서 길러진다. 생각의 공유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대게 요즘의 젊은 아빠들은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반면 엄마들은 간섭하는 시간이 남아 돈다. 간섭은 아이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의미의 철부지에서 부모들은 벗어 나야 것이다.

 

다음은 아이를 富자로 키워라. 

물질적인 풍족함을 제공하란 이야기가 아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말이 있다. 이유는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인 풍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학자들은 '아이에게 가장 정신적인 풍요는 부모의 사랑과 믿음이다'라고 말한다.현실상 아이에게 물질적 풍요를 제공할 없는 부모들도 많다. 그러나 아이에게 부자로서 살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더불어 사는 부자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균형을 잡아주는 것도 부모의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智혜를 가르쳐라.

우린 지식과 기능과 기술을 가르치는데 너무 집착한다.경쟁사회의 논리에

익숙해서인지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혹은 부모의 눈높이에서 아이에게 지식과 기술을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지식과 기술의 시대가 아니라 창의력과 창조력 대인 관계 능력이 주요 경쟁력이 것이다. 우리가 가슴으로 공감하는 지혜는 창의력과 상상력의 산물들이다.자신의 아이를 가장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아이의 장점이 발현될 있도록 인내를 가져라. 지혜는 터득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인 것은 가르침을 통해 배운다. 흔히 말하는 생활의 지혜가 그것이다.절약하는 지혜, 남을 이해하는 지혜, 남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지혜,남을 도우는 지혜 등등 우리 자신도 실천하지 못하는 주변의 수많은 지혜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전달하도록 힘써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