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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교회 민주화와 장로제도에 대한 단상

[교회 민주화와 장로제도에 대한 단상]

 

교회 민주화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을 우연히 하게되었습니다.

교회가 과연 민주적 운영이 가능한 것인가
?
일단 주종의 관계와 자녀로서의 관계를 원리로 하는 기본적인 神觀이

민주라는 말과 어울릴까
?

오히려 민주란 것은 사단의 반역의 원리가 아닐까? 등등
....

'
우리끼리 더이상 흩어지지 말자'며 지은 바벨탑은 각 종족의 언어를 달리하는

엄청난 벌로 돌아왔고 , 말씀의 종교 답게 방언이라는 잘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가

믿음이 깊은 사람(?? 뭐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지만...)에게는 만국의 방언에

통역의 은사로 주어지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던 것
,

그리고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 몽매한 인간이

예물로 올리는 기름이 좀 잘못되었다고 죽음의 벌을 하사하시는 하나님
,

그리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세 오경을 통해 그토록 자세히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모순들
....
하나님 독재의 종교입니다
.

이런 것 속에서 나는 성경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증거하신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때문에

나는 민주라는 말이 교회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
민주주의가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듯 ,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사랑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의무를 지는, 정말 민주적인 의무를 지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

근세의 교회의 민주화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칼빈의 청교도 사상은 우리 교회사에 정말 큰 획을 그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
기존의 주교 중심의 교회 제도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권위적이며 완권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된 당시의 교회에 스스로 청렴한 생활을 통해 실천하며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바꿔버린 대 사건이지요
.

청교도적인 삶은 인간적인 삶의 쾌락을 허락하는데는 인색한 편입니다
.
그 역사적인 근거로는 초기 청교도인들이 주교 중심이 아닌 장로 중심의

교회 편제를 허락할 것을 요구했으나 영국 여왕이 거부하자 네덜란드로 건너갑니다
.
(
장로 중심의 편제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교회 민주화의 제도적 개혁운동이었지요
)

네덜란드에서 그들의 낙천적인 삶이 청교도적이지 않다고 생각햇기 때문에

그들은 영국으로 돌아가 사람을 다시 모은 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가게됩니다
.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고. 이것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지요
.


장로제도 자체가 교회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
백양로 교회에 새로운 장로님을 뽑는다고 합니다
.
저는 그 과정이 과연 민주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사람에 의한 편가르기는 없는지
.....

정말 기도로 응답 받고 하는 일인지 말입니다
.
그리고 장로가 교회 내에서의 또 다른 계급화되는 것은 아닌지
....

섣부른 신자의 섣부른 생각이었습니다.

                                                     (20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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