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별 무리 없이 경제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란 것이 많은 변수들에 의해서 움직이며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고
전체의 특성이 개별 경제 주체의 특성을 반드시 규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Undercover Economist란 원제를 구지 경제학 콘서트라고 번역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원제는 '첩보원 경제학자'혹은 '비밀을 드러내는 경제학자'가 더 적당할 것입니다.
저자가 본문의 내용 중에 경제학자의 시각은 단순한 경제행위 혹은 무관심하게 진행되는 경제행위의
원리와 프로세스를 밝히는 것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자는 경제행위가 개별 연주가가 전체와 조화하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느낌의 음악을 전달하는
콘서트와 같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청중은 간혹 독주로 연주되는 악기에 주목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콘서트 연주에 필요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의 경제행위나 주체를
주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청중은 음악의 전체적인 감동을 추구하지 개별 연주자의 연주 기법에 대해 구태여 알려고도
하지 않거나 그것에 신경을 써서 전체의 음악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경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소위 '경제인'이란 프로토 타입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제인을 가정하는 경제학자가 있을 따름이고 , 콘서트의 청중이 개별 연주의 해박한
지식을 추구하여 콘서트 전체의 이해와 높은 맞족을 구하는 것과 같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도 어떤 목적과 관점을 가지고 경제를 바라보느냐의 선택이 있을 따름입니다.
경제학자 프레디히 본 하이에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해도 과감히 행동해 나갈 수 있을 때 문명은 발전한다"
어쩌면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쓰 황이트헤드가 말한 것 처럼
" 온갖 종류의 책들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고상한 분들이 자주 반복하는,
심오하지만 오류 투성이의 진무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경제학 콘서트는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쟁과 수요와 생산 등 개별 경제 주체들의 경제 행위에 대한
내용을 풀어서 쓴다고 해놓고 꼬아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만,
일상의 생활에서 무심코 넘어가는 경제적인 행위들이나 의도적으로 숨긴 트릭들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피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질문해봅니다.
"경제학 무지해도 좋은가?"
답은?
" 그렇다!" 가 아닐까요?
경제을 아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확율을 높이지만
정말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신념가이거나 기술자이거나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좋은 주말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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