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심리학 ]
파트릭 르우안 지음/
(독후감을 쓰기 전에)
토론회를 전제로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왜 나는 만족감의 표시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 또한 추천하신 분은 상당히 고심하여 권한 것이고 나름의 메시지를 가지고 권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토론회에서 비판적인 평가를 했을 경우 추천하신 그분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비판하는가?’
분명한 것은 책을 추천하는 분에 대한 평가가 아라는 점이다. 다만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개인의 기대 수준과의 괴리를 표현하고 싶은 것이고, 정말 시끄러비가 입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꼼짝할 수 없는’ 책을 만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혹의 심리학”이란 책의 제목과는 상당히 궤를 벗어나는 내용에서는 대학시절 프랑스 문화관에서 상영해주던 파격적 노출과 철학적 난해성이 혼재된 대사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멍청해야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책이었다.
차라리 유혹의 생리학, 유혹의 생태학 혹은 인간의 오감을 통해 본 유혹의 생리적 반응들등의 책 제목이었다면 그나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가장 함축된 책의 줄거리요 저자가 책에 대한 독자의 관점을 요구하는 틀이라 고 평소 생각해왔던 터라 책을 일어나가면서 제목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어 갔다. 또한 목차의 부재들과도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한 내용의 전개도 그런 인상을 강화시켜주었다. 다만 역자의 변을 읽고 나서야 책을 덮는 순간이 가벼워졌다.
“이 책이 유혹에 대한 모든 의문을 풀어주지는 않았다.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준 저자의 행보가 유혹적이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인 단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라는 안도감이랄까?
이 책에는 생태학적인 실험사례나 생리학적 증거들 혹은 문화 인류학적인 사례들이 유혹에 대한 인간의 생리적 반응들과 비교되어 서술되어 있다. 심리학적인 접근은 프로이드에 대한 언급이나 탕기신드룸, 소아애에 대한 후반에 기술된 약간의 내용 외에는 인문학적 단상으로 표현되는 저자의 추론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지식적 편협성도 간간히 눈에 띤다. 동서양의 폭넓은 지식을 섭렵하지 않고는 유혹의 대명사가 클레오파트라나 카사노바 혹은 마를린 먼로 정도가 될 뿐이다. 초패왕의 우희며, 양귀비며, 순종과 인고를 통해 환웅을 유혹한 웅녀 할머니를 알지 못하고 유혹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는 힘이 부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성행위를 묘사하는 외설적 표현에 대한 직접 화법의 대담성이 본디 은밀한 은유나 비유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에게 유혹적인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이의와 반론이 제기될 것을 이미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저자의 대담성이 오히려 매력적이라면 매력적이다.
저자는 진화론자이다. 진화론자는 기본적으로 존재의 형태와 존재 양식의 유사성에서 종의 기원의 동일성을 찾는 사람들이다. 존재의 목적성에 대한 생각을 그냥 창조론적 고집이라고 일축해버리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조에 대한 초파리 실험의 결과에 인간의 관념까지 싸잡아 유사한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딘가 모르는 허전함을 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동물의 생태학적인 증거와 실험에 대한 인간의 관점에서의 해석을 기준으로 인간의 유사한 행위를 찾았는지, 아니면 인간의 행위를 근간으로 유사한 동물의 행위를 찾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비인간인 동물과의 유사성이 인간에게 발견된다고 해서 동물의 실험결과를 인간의 행위를 유추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학이나 철학에서 사용하는 ‘부분의 오류’ 즉 부분적 ‘참’을 전체적인 ‘참’으로 비약하거나 부분적 오류를 전체의 오류로 비약하는 함으로서 발생하는 ‘전체성의 상실’에 다름아닌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의 조상을 원숭이라고 말하지만 원숭이의 조상인 파충류나 어류에서 왜 특별한 한 종류가 인간으로 진화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일 종인 바퀴벌레는 왜 인간이 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존재에 목적이 있음은 비록 해석은 달라도 불교나 기독교나 기타 다른 종교들이 묵시적인 동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회도 전생이란 원인이 있고, 해탈이란 목적이 있지 않은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체에 대한 이해가 다르듯이 유혹이라는 상황에 대한 인체의 오감적 반응에 대해 오히려 심도 있는 조사와 집필이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아니면 유혹의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심리학적 증거들에 대해 지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것이 저자의 경험과 관점에 대한 이해보다는 ‘책제목과 다름’으로 인해 부리게 된 내 개인의 억지임을 안다.
반면에 저자의 인문학적 단상들 중에는 상당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도 많았다. 예를 들면, 과연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타인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바램이 투영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같은 것들이다.
끌림과 유혹의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나 생각거리로서는 충분하다. 그리고 펠라치오에 대한 수유 본능의 해석들 등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외적 충족감을 주기도 했다.
이런 흥미거리 중에서 하나를 골라 생각을 전개해본 것이 ‘ 타인에 대한 사랑’에 관한 주제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람은 자신의 바램이 투영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람은 외양이든 조건이든 아니면 정신적 교감이든 자신의 바램이 투영된 존재를 사랑한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바램이 투영되지 않은 존재를 사랑할 수는 없으며 , 자신의 바램이 더 이상 투영되지 못하는 경우에 사랑은 식어간다. 식어간다는 표현보다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지만 사랑했던 자신의 관념의 이끌림이나 사회적 약속 혹은 규범과 제도 대문에 사랑한다고 맺어졌던 과거의 관계를 유지할 따름인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전도사님은 그 사모님이 신앙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으로 보아 도저히 결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분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인물이나 나이나 건강이나 모든 것이 우리 사회의 관습으로는 용인되지 않는 정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분은 뜬금없는 솔직함으로 하신 말씀은 이랬다. “ 지금 제 아내는 ‘내가 인간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소서!’라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여기에도 바램이 투영되어 있지 않은가?
사랑도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며 그 중 한 개의 사랑을 골라서 이야기하더라도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이야~” 그렇기 때문에 “유혹의 심리학”이란 제목의 탐구가 이루어 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꾸 이어져 가는 생각의 꼬리를 여기서 자르고 싶다.
이 책에서 눈길이 머문 어구 몇 개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
-> 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더 동물적인 본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될까?
“ 부부 쌍방의 불감증은 순전히 유대교-그리스도교 문화의 부산물이다. 그런 부부 불감증은 간통의 온상이었다. 유부녀가 불같이 타오르는 자신을 발견하여 그러한 자기 모습을 내 보일 곳은 ‘타인’ 곧 연인의 침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어째 이 말은 자전적 고백같이 들리지 않는가?
“ 유혹, 그것은 불시에 엄습하기이다. 즉 취하지 않되 취하는 것이요, 감동시키지 않되, 즉 부추기지 않되 부추기는 것이다”
-> 그 불시란 것은 아마도 소나기에 젖는 것이 아니라 이슬비 끝에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리라.
“ 사냥꾼의 체질이기에 필연적으로 시각지향적일 수 밖에 없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은 촉각에 약하다”
-> 과연 그런가? 정말 궁금하다.
“ 사랑의 묘약이라는 주제”
“ 사실 꽃이란 식물의 성기에 다름 아니다”
-> 이 문장을 접했다고 꽃을 성기로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 관능적인 첩과 후덕한 아내 사이에서 남자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 대개의 ‘아내’라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지 않나?
“후각은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중요한 감각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 우리는 털 없는 원숭이들이다”
-> 털 없는 원숭이란 책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 책 제목을 다시 대하니 반갑기는 하다마는… 이 책은 교육심리학 특히 아동 청년 발달사의 주요 부교재로 읽혀졌던 책이니 당시 이 책을 공부한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했을까?
“ 희열과 수줍음의 차이”
-> 수줍음이 들어가는 문이라면 희열은 나가는 문이 아닐까?
“ 여성은 어둡고 칙칙한 옷을 입어야 유혹에 유리하지만, 남성은 여성을 웃게 만들면 유혹에 성공할 수 있다.
“ 타인을 유혹하기 위해 혹은 유혹당하기 위해 전개되는 이 감각적 노력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어째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그와 가까워지며, 길들이고, 사로잡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 함께 살게 되기까지 그리 힘든 과정을 겪는가?”
-> 여기에 대한 견해를 적어 줬더라면…..
“유형성숙,다시 말해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표정으로 힘있는 남성 파트너의 행위를 아이처럼 신기하게 여길 수 있는(따라서 남성의 자부심을 한껏 채워줄 수 있는)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10수년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 대화가 기억나다. 신혼 첫날 밤 벗은 모습을 아내에게 처음 보였을 때 들은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리에 있던 일곱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 그렇게 커요?”라고,
그것을 표현한 학문적 용어가 유형성숙이었다니….
“ 탕기 신드롬, 즉 독립을 늦추고 가정의 누에고치 속에 가급적 오래 안주하려는 현상은 우리 인류가 미성숙한 존재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 불혹의 아기 캥거루를 탕기 신드롬이라 표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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