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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도마일기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이 지나고도

간증이 있는 삶1.-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이 지나고도

 

혹시 유년시절이나 청년기에 죽음의 기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어릴적 울산의 태화 강변은 그래도 아이들이 ?a감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동네아이들과 여름이면 그곳이 바로 천연 풀장이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공사한다고 퍼간 모래 웅덩이가 많았는데 ,

이런 곳에 가끔 아이들이 빠져 죽기도 했다.

나 역시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긴장감이 생생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억 속에는 죽음의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웅덩이 옆의 모래를 손과 발로 딛고 잡으로려고 아무리 발부둥쳐도

모래는 밑으로 내려갈 뿐 손에 쥐어 지질 않았다.

물속에 가라앉았다 올라오면 아이들이 걱정하는 표정이 잠시 잠시 보이곤 했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리와 팔의 거의 빠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한쪽 발이 웅덩이 옆면에 박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힘을 버텨주어 자세를 앞으로 굽혀 모래를 헤집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게된것이다.
난 몹시 지쳤지만 친구들의 걱정과 위로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당시에는 내 별명이 통뼈였으니 제법 대차게 보일 필요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 않게 풀밭으로 올라와 잠시 쉬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 이야기를 가족 중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그 근방 구덩이에서 다른 아이는 빠져서 죽었다고 하는 소문이 들렸다.

그 때 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아이는 죽고 나는 살아남았을까?

믿음을 가진자의 어투로 바꾸면 왜 나를 살리렸나?

소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내게 주어진 일 말이다.

그것은 크고 작건 간에 하나가 아니라 크고 작은 것들이 유기체처럼 연결된
삶의 단면이 아닌 삶 전체의 모습일 것이다.

그 빠져 죽을 번한 순간은 단면이지만 살아 있는 지금은

그 단면에서 출발한 내 삶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한 순간 드리는 것이 아닌 삶전체를 드리는 것이 바로 신자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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