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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모래/물거품 속에서 나눈 칼릴 지브란과의 대화

 

1.

어제야 비로소 나 자신

생명의 우주 속에 불규칙하게 떨고 있는

한 조각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나는 내 자신이 바로 그 우주라는 것

율동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은

이제 내 안에서 고동치고 있음을 압니다.

 

(내가 우주 안에 있고, 우주가 내 안에 있으니 우주와 나를 분간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으므로 떨어져 있지 않으니 우주와 나는 하나다.

도가적이기도 하고 수피적이기도 한 인간에 대한 정의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는 해월 시형 선생은 인내천을 이야기하며 동학을 제창하였다.

서투른 서학쟁이들이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이 말에 불경의 죄로 떨고 있을 동안

그는 창조주가 생기를 불어 넣어 준 유일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에 대해 간파하였고

예수님이 가르친 전도의 사명을 침략과 지배의 도구로 전락시켰던 서양인들의 오만을

떨구어 내고 이미 존재하는 창조주의 하나됨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른 중반이 넘어 믿는 자에 편입한 내가, 이러한 우주에 대한 통찰에 대해 일말의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은 매임과 자유를 짝짓고 풀림과 속박을 짝짓는 오류에 빠져 있음인가?

기성 종교 행위에 대한 자유로움으로 나 자신의 믿음을 표방할 수 있는가?

야훼가 만들고 예수가 풀어 내어 준 그 말씀들에 묻어 있는 사람 냄새,

신의 도그마라기 보다는 인간의 도그마이다.

보고 생각하라 했거늘, 생각의 이익은 생각의 오류로 빠져든다.

사실로 인해 생각하기보다 생각으로 인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

 

2.

.

그러나

이 바다와 이 해안은

영원까지 남을 것입니다.

 

( 나와 우주를 동일하게 보는 통찰을 경험한 사람이

어찌 자연의 일부에 영원이란 단어를 썼는지.

삶이 죽음과 분리되면 자연은 인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진 우월한 것이 되고 만다)

 

3.

이제 나는 그에게 이 위대한 침묵이 오기 전에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가를 알 것 같습니다.

 

(침묵 감정과 이성의 요란한 전투에서 승리한 영혼의 언어인가?

 침묵은 인내와 겸손과 많은 자기 희생적 가치를 강요하는 듯하지만

자신이 있는 자, 신념이 있는 자 만이 침묵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닌지)

 

4.

예전에 나는 한 여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는 아직 세상에 나지 않은

그녀의 어린아이 얼굴이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녀는 나의 얼굴에서

내 모든 조상들의 얼굴을 발견해 내였습니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서 미래를 보고

여자는 남자의 얼굴에서 과거를 본다.

 

미래지향적인 상상력과 과거지향적인 집착의 대립인가?

우리는 희망과 미련을 동전의 양면처럼 가지고 산다.

혹은 기억하고 살거나, 잊고 살거나)

 

5.

한 알의 진주는 한 알의 모래 알갱이 둘레를

고통으로 쌍아 올린 신전입니다.

우리의 육체들은 어떠한 갈망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육체들에 심지 박혀있는

이 알갱이는 무엇입니까?

 

(진주가 알갱이를 품듯 우리 삶도 어느 순간엔가 알갱이를 품는다.

그러나 진주가 하나의 알갱이 그 고통에 진지하게 맞서는 반면

육체는 곳곳에 알갱이를 품는다.

,,,귀 그리고 모든 피부와 심지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생각에 이르기 까지

그래서 육체는 알갱이를 진주로 승화하기가 더 힘들다.

선택하지 않고 포기하는 습관으로

품기 보다 뱉어내는 습관으로 자신의 알갱이를 대하면서

다른 육체에 깃든 진주를 보고 그것이 자기 것이기를 바란다.)

 

6.

기억은

만남의 또 다른 형태

망각은

자유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억과 만난다.

새로운 만남도 기억을 통해 만나고

익숙한 만남도 기억을 통해 이어간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순간에 우리는 망각을 만난다.

망각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비움이고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의 자유임에도

우리는 간혹 망각을 통해 사라진 기억이 더 소중한 듯

끊임없이 기억과 만남을 시도한다.

 

또한 우리의 기억은 과거라는 사실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소망과의 만남을 통해 형과 색이 변화한다.

그러나 망각은 신이 자유의지와 함께 인간에게 준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모른다.)

 

7.

천상에 사는 영혼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고통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정말 고통 없는 삶을 원할까?

삶의 고통을 통해 진실한 인간으로 승화되어가는 묘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 없는 천국은 과연 천국일까?

칼릴 지브란 자신은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을 포기하는 것과 생의 집착을 버리는 것의

안도감과 좌절감을 저울질하고 있는

말기 암환자 병동의 격심한 고통 속에 있는 어느 환자의 시간조차도

천상의 영혼은 부러워할 것인가?)

 

8.

인간애는 침묵하는 감성 속에 있는 것

결코 수다스런 지성 속에 있지 않습니다.

 

신이시여

부디 저를 사자의 밥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 토끼가 저의 먹이가 되기 전에.

 

(인간애는 침묵하는 감성 속에도 없다.

 그것은 감성과 언어의 사랑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랑인 까닭이다.

신께 사자의 밥이 되게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자의 밥으로 자신을 내어 던질 수 있는 인간의 사랑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가장 위대한 인간애를 보여준 신이다.)

 

9.

참 이상한 일입니다.

쾌락을 향한 나의 욕망이

나의 고통의 일부인 것은.

 

(쾌락은 본질적인 욕망으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커져서 고통으로 변하는 과정에 놓인

행복의 편린으로 질주하는 야간특급열차이다.

 

혹은 고통은

욕망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쾌락에 대한 죄의식의 포장이다.)

 

10.

나는 일 곱번 내 영혼을 경멸하였습니다.

 

(나는 똑 같은 이유로 경멸하기 보다 사랑하고 싶다)

불완전하다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은

같은 이유로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존재에게 조차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신의 특별한 레슨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11.

검은색 잉크와 하얀색 종이

 

(선을 알지 못하고 악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며

악을 알지 못하고 선에 대한 갈망이 없을 것이다.

신이 사탄을 방치하면서 예수를 보낸 까닭은

선과 악이 조화하여 균형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을   

선과 악을 창조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스스로가

깨닫게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2.

귀를 주라 , 그러면 목소리를 얻으리라!

 

13. 나의 잔이 비었을 때

 

(반쯤 찬 잔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이 있다.

하나는 교만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의 눈이다.

교만의 눈은 잔을 비워내지만

감사의 눈은 잔을 채워나간다. )

 

14.

시는 무진장의 기쁨과 고통, 경이로움

그리고

단 한 줌의 어휘로 이루어집니다.

 

(시는 보이기 위해 쓰기 시작하면

단어를 나열하게 되지만

시를 쓰게 되는 이유에서 비롯하면

삶의 의미를 요약하게 된다.)

 

15.

그러나 그대가

그대의 껍질 뒤로 숨는다면

그 누가 그대를 찾으려 한들

부질없는 일일 것입니다.

 

(껍질 뒤로 숨은 인간을 우리는 매일 대하며 산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한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겹의 껍질을 벗기며 변하는 곤충이 아니라

껍질을 벗기며 껍질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간혹 껍질 뒤로 숨은 사람을 잘 안다는 사람이 있다.

그는 분명히 껍질 뒤로 숨어 있거나 숨었던 사람이다. )

 

16.

사랑은 빛의 종이 위에

빛의 손길로 쓰여진

빛의 언어

 

(빛은 보이되 만져지지 않고, 느끼되 잡아둘 수 없다

비록 사랑의 본질이 빛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 중에 느끼는 것은 촉각과 미각과 마음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촉각과 마음 조차도 통제하지만

때론 다정한 손길과 감미로운 입맞춤이 마음을 속이기도 한다. )

 

17.

얼마나 자주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를

내 탓으로 돌렸는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런 나의 존재 앞에서는

타인들이 모두 마음 편히 느낄 수 있도록.

 

(내가 콩쥐와 팥쥐를 몰랐다면, 신데렐라와 그 의부자매들을 몰랐다면

그리고 성경의 한 구절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들을 내 탓으로 말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내 탓이 나를 설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노와 저주의 네 탓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곱씹으며 생각해야만 했는지

하지만 나의 감정은 아직도

내 탓을 용납하지 않고

네 탓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

 

18.

진실로 자유로운 사람들은

노예의 짐을 참을 성 잇게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은 좋은 주인이 되는 것 보다

좋은 주인을 만난 노예가 되는 것일까?)

 

19.

독창성 없는 죄와 미덕

 

(인간이 신 앞에서 판단 받게 되는 죄와 미덕은

에덴 동산 이후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새로운 미덕 새로운 죄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한가지에서 출발하면 인간은 그 삶의 시간 동안

인류 역사의 미덕을 다 실천할 수도 있다)  

 

20.

사람들에게 깃털 하나 주지 않은 채

그대의 날개를 달고 날라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경솔한 것입니까?

 

(이런 경솔함이 나에게

또한 우리에게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경솔함으로 분노의 이빨을 갈면서

거리를 배회하는 영혼도 많을 것이다)

 

21.

항상 샘솟지 않는 사람은

끊임없이 말라 죽고 있는 것입니다.

 

관용은 오만의 병을 앓고 있는 일종의 사랑입니다.

 

(사랑과 관용의 속성과 양면성이 한 문장에 담겨져 있다. 천재다!)

 

22.

거북이는 토끼보다

길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목적지에 대해서 그리고 새로운 길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이것은 일회적인 삶의 속성에 관해 연관 짓지 않고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인가 라는 문제에 관련 짓는다면

거북이든 토끼든 우리의 선택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23.

명성은 빛 속에 서 있는 열정의 그림자입니다.

 

(자신에 대한 항변이라는 느낌이 강한 문장이다.

 그의 천재성에 대한 칭찬이 자자할 때

그는 열정으로 답변한 것이리라.)

 

24.

예수의 세가지 기적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해야 하는 인간임을 자각하고

더불어 즐거울 줄 알고

고난 중에 승리자임을 확신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