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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병상의 우형에게

우형!

지금 병상에서 자고 있을 지, 아니면 내일 있을 수술 때문에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따지고 보면 형과는 지연 학연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는데, 그저 사회에서 만나 자주 어울리면서

요즘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호형호제하는 사이 정도 일지도 모르겠는데 형이 큰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 날 부터 마음이 무척 착찹합니다. 형이 대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전화를 통해 전하면서 울던

영태군의 형을 걱정하는 진심이 나의 감상을 더 자극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참 믿기지 않습니다.

 

대전 본청으로 가면서 소화 불량을 이야기하곤했었고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었기 때문에

치료가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 험한 병에 걸렸으리라고는 상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병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올라가서 맨 처음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 어떤얼굴을 하고 보아야할지...
아직 암이라면 쉽게 죽음을 떠올리는 병이기 때문에 암 화자를 대한다는 것은 곧 죽을 지도 모르는,

어쩌면 죽음의공포와 직접적으로 싸우고 있는 비장한 마음을 하고 있는 사람 혹은 죽음의공포에 좌절하여

실의에 빠진, 삶의 희망을 잃어 버린 사람과 얼굴을 대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담배를 여러 개피 피웠습니다.
입이 까칠할 정도가 되도록 담배를 피웠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야할 지 쉽사리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기껏 생각한 것이 ' 형님 , 쪼매 아프다면서요?'로 말을 시작해야겠다 정도지요.

그리고 예전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보았던 DVD에서 감사한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 그리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 끝에

3개월 말에 유방암을 치료한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이 이야기도 해줘여겠다 정도 마음을 먹고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에도 어떤 말을 꺼낼까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병실로 들어서니 많이 야위었지만 의외로 담담한 얼굴로 맛있게 저녁을 드시고 있는 모습을 보니

준비한 생각대로 말이 나오더군요. 서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과 말투로 대수롭지 않은 병을 남의 병을 이야기하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종양으로 막힌 대장 때문에 직장 우회술을 이미한 모양이었는데 예비 게임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이틀 후에 대장 절제술을 본게임이라고 표현하고 또 한달 정도 있다가 일하러 가겠다는 말을 할 때는 외려

내가 너무 걱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위로의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로의 말을 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의 암시를 의미했으므로 아마 저나 형이나 그런 말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수술 후에 어떻게 조리해야하며, 길게 보고 병을 다스리도록 노력해야한다는 등의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말들만 하고 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지요.

 

아주머님도 많이 놀라셨을텐데 짐짓 그러셨겠지만 활기 있는 목소리로 '대장암이 그래도 암중에서는

가장 젊잖은 암이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도 '나이가 젊기 때문에 이 시기의 대장암도 공격적이다'라고

의사가 했다는 말을 전할 때에는 애써 억누르고 있는 불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빨리 나아서 술 끊고 담배 끊고 카드 놀이도 안하면서 오래 사는 계기라고 생각된다고 하는 말 속에는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원망도 섰여 있었던 것 같고 또 놓치고 싶지 않은 희망과 함께

이미 알려진 병의 일반적인 예후에 대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암이란 것이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니까...

 

병실을 나설 때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일상적으로 나누던 반갑다던 악수가 아니고 저는 힘 내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고 아마 형은 고맙다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오히려 내게 하시더군요.

병실을 나서면서 착찹한 마음은 여전했습니다만 닥친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반드시 낫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가벼워 지는 듯도 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을 보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 병에 대해 인터넷을 이용하면 병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그 병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말기 대장암이란 것이 5년 생존률이 20~30% 정도지만 완치율이 가장 높기도 하더군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용보다는 병을 극복한 긍정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조금 안심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나도 담배끊어야지...
담배가 해로운 것도 알지만 습관 때문에 그리고 약한 의지 때문에 끊지를 못했는데
형을 보고 정말 내가 죽을 병에 걸리고 나서 끊기 보다는 그전에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담배 때문에 모두가 암에 걸리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생활의 결과로

병을 만들어 내며 살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기에 
 다들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형!
내일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기운내십시요. 물론 마취상태겠지만 불타는 촌놈의 의지로 병을 이겨내십시요.

같은 시간 비록 병원에서 수술이 마치는 것을 기다려 줄 수는 없겠지만 마음으로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수술의 시종을 함께 하시고 집도의의 손과 마음에 함께 하시어 꼭 낫게 해달라고!

늦은 밤입니다. 평안한 잠자리에서 즐거운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진정 건강한 마음과 모습으로 이제까지 함께해 온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