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피에르 바야르 지음/ 여름언덕 출판
우선 제목부터가 다소 궤변적이다.
또한 이 책을 펴낸 의도에 충실하자면 저자는 이 책이 독서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비독서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저자가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모순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 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하지?"
" 어떻게 그렇게 하지?"
저자의 생각의 발로는 다소 반항적인 이유에 있는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하는 '어떤 책을 안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독서가 신성시되기 까지 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는 독서에 대한 의무감을 갖게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일반적으로 독서는 의무라기 보다는 우리의 삶을 보다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비용효율적인 수단으로서 더 권장되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가 정독의 의무를 들고 있다. 물론 정독은 독서에서 권하는 바람직한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모든 책을 정독해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론을 제기할 수 있음에도 저자가 이를 하나의 이유로 택했다는 것은
다소 짧은 견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로 책에 대한 담론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이야기 위해 독서를 하지 않는다.
저자가 예를 들고 있는 읽지 않은 책을 말해야 하는 경우 네 가지도 좀 설명력이 떨어진다.
사교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네 가지의 경우의 공통점은 독서를 교양 및 소통과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교양은 독서를 통해서만 갖추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독서를 통해 얻어지는 교양이란 것은
어쩌면 단지 독서의 부산물일 것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있는 저자의 생각은 독서가 교양인으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패스포트라고가정하고 있으며,
비독서의 개념은 이런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기 위한 수단으로 전개도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여권에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 나라에 대한 여행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화제의 동질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거나 화제에서 튀고 싶은 욕망이 이성적 자제를 뛰어넘은 경우 이다.
쉽게 말해 거짓말이다. 비독서는 이런 여행 경험에 대한 거짓말과 어쩌면 유사한 것이 아닐까?
비독서는 독서의 대안이 아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것처럼 이야기해야 하는 현학적 자세의 변명이거나
교양인의 수사학에 대한 흥미거리의 강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저자가 예시한 비독서의 방식 네 가지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절독(絶讀) /간독(看讀) / 이독(耳讀) / 망독(忘讀)이다.
저자는 절독의 이유로 창의성이 줄어든다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 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우리가 현존하는 책을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간독과 이독이 독서의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고,
우리가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어차피 망각의 대상이 되며 완벽한(읽고, 완전히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 독서는 없기 때문에
저자는 독서에 메이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할 것을 비독서에 대한 대처 요령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대처 요령은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할 수만 있다면 책을 꾸며내고,
더 나아가 어떤 견해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할 것 등 네 가지 이다.
그러나 그의 논조 근저에는 독서를 통해 갖추어진 공력이 전제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책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목차의 구성과 그 논리적 흐름에 있어서는 다소 억지스러운 감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책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지식 습득에 대한 심리적임 바이어스 등을 내면의 도서관 집단 도서관 그리고 잠재적 도서관등의
비교적 새로운 용어로 고찰한 것에는 점수를 안줄 수 없다.
책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유동적인 오브제, 즉 상상적 기능의 물체라는 표현과 하나의 책이 단절된 창작물이 아니라
순환되고 수정되는 어떤 발화 상황의 총체라는 표현은 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 나의 지적 도서관은 다른 모든 도서관이 그렇듯이 여러 구멍과 빈자리들로 이루어 졌다.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표현과
‘ 다른 사람에게 그가 듣고 싶어가는 말들만 한다는 것, 언제나 그가 기대하는 존재이고자 한다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타자(他者)’로서의 그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 앞에서 연약하고 불확실한 주체로 서기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라는 표현은
우리의 생각과 말의 불완전성과 심리적 편향성 대한 철학적 고찰의 결과로 말해 질 수 있는 내용이라고 평가된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선택된독서를 할 수 밖에 없다.
목적을 가지게 되면 독서의 리스트가 정해지고, 독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리스트는 더해지고 수정되기도 한다.
우리가 읽는 책은 우리의 관심 분야로서 흥미와 재미가 주어지는 것들일 것이다.
혹은 필요성 때문에 비관심 분야라 할지라도 읽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가 ‘읽지 않은 책’은 대부분 비관심 분야일 것이다. 관심의 분야가 넓어지면 읽지 않는 책의 영역은 줄어들 것이다.
관심의 분야가 넓어 진다는 것은 독서의 또 다른 결과물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독서의 필요성과 우리의 관심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독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고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 즉 생각하는 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서도 전체 코끼리를 그려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담론의 효용이 자기 발견의 가능성을 떠나서 우리를 창조적이게 한다는 것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시대의 지식이 우리 역사의 흐름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그 단면에 나타난 과거는 아무래도
독서를 통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므로,
굳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은 없지 않을까?
“책과의 교제, 독서의 기술은 다른 여러 가지 삶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공들여 제대로 배울 가치가 있다” 고 한
헤르만헤세의 <독서의 기술>이란 책의 한 대목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을 읽은 소감을 마무리하면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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