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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세상 살이란 것이

 

최진실이란 여배우가 죽었답니다. 자살이라는군요.

그녀가 자살을 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충격 이면에 아직 어린 두아이의 엄마로서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무책임에

질타를 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 설사 죽을 만큼 힘들어도 그 힘든 것이 스스로 죽어야할 마땅한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이유가 우울증이란 병 때문이라면 그녀는 환자로 죽은 것입니다.

우울증이란 삶을 죽음으로 몰고 갈만큼 무서운 병입니다.

우울증은 죽음의 유혹으로 부터 스스로를 자제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우울증 역시 먹이 준 늑대가 이긴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두마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두마리 늑대는 항상 싸운답니니다.

어느 늑대가 이길까요?

정답은 자신이 먹이를 준 늑대가 이긴답니다.

 

우울증은 때론 감기 증상 처럼 가볍게 오기도 하고

때론 정신병적으로 분열증과 같이 심하게 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약으로 대부분 다스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의 정말 치료제는 자신의 의지, 즉 먹이를 주는 늑대에 대한 선택이며

그것이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울증 환자들의 후유증이 뭔지 아십니까?

어떤 경우는 소아기 편집증과 유사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구축한 세계에 남이 들어오기를 원치않는 것이지요.

이타적인 사랑의 상실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의 치료에 상당히 중요한 것이

사랑이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며

그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은 "사랑이 있는 자리"를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소 우리는 사랑을 언제든 구하면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구하고자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어색한 맞춤옷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스스로 '사랑하며 살았구나'하는 것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리리 기성복이라면 내 몸과 맞지 않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사랑은 우리에게 맞춤옷이기 때문에 그 어색함에 대한 괴리가 큰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내가 받은 사랑, 내가 받아야할 사랑을 기억하지 말고

내가 주어야할 사랑, 그들이 받아야할 사랑을 기억하고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행함을 통해 그 어색한 맞춤복이 어느새 제 몸에 맞아 있게 됩니다.

 

아마도 배우 최진실은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남에게 돌려야할 관심을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 조금 더 먹이를 주었더라면

그녀의 삶도 행복의 여지가 있었을 것 입니다.

 

세상 살이란 것이 참 모를 것이 많습니다.

 

소고기 문제가 온국민들을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아가게 할 줄 누가 알았겠으며

미국의 월가가 망할 줄 누가 알았겠으며

중국산 멜라민 소동으로 그 많은 과자가 불에 타 없어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으며

환율 방어 차원에서 가입한 금융 상품 때문에 기업이 흑자 도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쓰나미로 바다의 무서움을 알게 된듯이 말하지만

그 전에도 너울도 있었고 해일도 있었고

심지어 평온한 바닷가의 잔잔한 파도에도 그 속성은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 삶은 이런 파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으로 끝난 듯이 보이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

작금의 이런 세파 속에서도 웃음은 피어나고 사랑이 커져가는 곳도 많습니다.

월가가 망하든 말든 과자가 불타든 말든

그것들이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란 것이, 또는 세상살이란 것이 이런 파도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도 타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파도가  있어야 재미가 더할 것입니다. 

세상 살이를 파도타기하듯 산다면

세상은 우리에게서 살아가는 이 재미를 결코 뺏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