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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잡생각들

침묵 단상

 

[침묵(沈默)]

 

침묵의 한자어 뜻은 '잠길 침' '잠잠할 묵' 즉 소리 없는 상태에 잠긴다 라는 의미다.

영어에서도 Keep silent이라 표현하거나 언어의 불능 상태인 Hold one's tongue으로

표현한다. 말을 안 하는 것을 이렇듯 고상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음'의 의미가 단지 '소리 없음'의 수준을 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사람은 침묵에 여러 가지 의미와 용도를 부여한다. 그리고 때론 웅변보다 더 값어치를 쳐주기도 한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나?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은 고여있지 않는 생각을 자각하는 때이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때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은 웅변보다는 침묵과 친분을 더 두는 것 같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웅변은 침묵의 결과에 따르는 경우에 더 힘이 생긴다.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여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분명 일정 시간의 침묵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침묵은 필요한 덕목이지만, 대중의 침묵은 뭔가 불안한 신호로 여겨진다. 분명히 분노하고 말이 나와서 사람들의 생각을 깨고 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시점인데 대중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 침묵은 사회의 어느 정도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도 말고 둘만 있어도 침묵은 '어색함'이다. 그래서 이 어색함을 깨는 기술도 사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전승되어 온다. 영어에서는 " Let's break the ice!"해서 이 어색한 침묵의 싸늘한 분위기를 깨어보자고 하면서 초면에 발생할 수 있는 침묵의 경향을 미리 둘 사이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말꼬를 튼다. 하지만 초대면의 침묵은 일종의 교양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초면인 경우 '얼음 깨기'를 하지 않으면 사교성도 없고 매너가 없는 것으로 여겨서 처음 만남의 순간이 지속되는 것을 금기 시 한다. 반면에 영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다. 호텔 로비에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에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당도하기 까지 몇 시간 동안 그 둘은 한마디도 섞지 않는다면 그들은 영국인이라 한다. 이유는 영국인들은 소개 받기 전에는 절대 말을 섞지 않는 때문이란다. 이런 영국 사람들은  미국인의 '얼음 깨기'를 교양 없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단다. 여하튼 침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것이 사회적 관습으로 전승되었건 아니건 개성과 다양성을 지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침묵할까?  

어떤 책에서 보니 그 이유를 이렇게 5가지로 적어 놓았다.

 

①감정 손상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

② 말을 해 봤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도 않는다는 무기력감

③ 소신 있게 이야기했다가 대다수의 구성원에게 왕따가 될 것 같은 두려움

④ 틀린 말을 했을 경우 사람들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⑤ 윗사람에 대한 복종과 침묵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던 사회문화적 특성 등

 

위의 내용에서는 침묵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혀 적고 있지 않지만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다수의 침묵은 '거부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침묵은 소극적인 자기 의견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부 싸움하고 서로 말 안 하는 것은 말을 해서 싸우지 보다 말을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현명한 선택이기 보다, 상대에 대해 화가 풀리지 않았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침묵은 말보다 더 힘있는 행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절에는 스님들이 말을 하지 않는묵언 수행이라는 것이 있다. 묵언 수행은 너무 쉽게 내뱉는 말을 통해 나도 모르게 짓게 되는 온갖 죄업을 피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침묵이 깨달음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님의 침묵'은 그를 연모하는 상대를 더욱 애달게 만들고 그의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말을 하면 알 수 있지만 말이 없음으로 해서 모르기 때문에 더 알고자 하고 욕망을 자극한다. 때문에 님의 침묵은 그 침묵의 의미에 대한 갖은 해석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사실은 왜곡하기도 하고 분 칠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침묵은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침묵이 있다.

침묵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용기가 없을 경우 그 침묵을 깨지 못하는 경우 이다.

우린 이런 침묵을 비겁이라 칭한다.

 

그리고 할 말 없는 경우이다.

상대가 한 말이 일일이 다 옳을 경우 괜한 웅변은 변명이 되고 라는 경우 우리는 침묵한다. 또한 웅변 거리가 없는 경우, 흔히 대화의 소재가 빈곤하다 표현하는 경우이다. 이는 본인의 지식이 없는 이유이므로 공부 안하고 세상을 살다 보면 침묵이 습관이 된다.

 

그리고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거나 싫거나 훈련이 안된 경우도 침묵한다. 웅변이 스트레스다. 하지만 입을 가진 인간에게 침묵도 스트레스다.

 

침묵도 시기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 잘 쓰면 약이고 못쓰면 독이 되는, 입이 있음으로 해서 말을 할 수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축복의 양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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