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익숙한 이름의 전직 대통령 한 분이 또 돌아가셨다.
어린시절을 거쳐 청소년 시절 내게 가장 익숙한 대통령은 박정희였고,
가장 익숙한 정치인은 김종필이거나 이후락이었다.
나는 이후락씨가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던 시절, 설립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선배들이 전하는 헬기타고 학교로 날아왔다더라 하는 소리를 듣으면서 아무 거부감
없이 그 정치인들이 그저 대단한 사람들이고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만
어렴풋이 그저 잡다한 세상에 대한 생각 속에 갈무리된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동안 배웠던 반공의 국시와 항상 외우고 다녔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라는 문구 이면에 나의 조국이 아파하고
있는 현실을 전해들었고 광주사태(그 때는 그렇게 불렀다)의 진실과 군부 쿠데타의
진실과 인권 탄압 등에 분노하면서 정치인들은 전부 '개새끼'로 싸잡기 시작했다.
다만 그 때에도 김대중과 김영삼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었던 것 같다.
민주화의 투사로 많은 사람들이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들 역시 기성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YS가 노태우씨와
손잡고 난후 부터이고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다시 나와 대통령이 된 이후 부터이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지역 감정 구도 상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대주이~"라는
호칭에 더 익숙해 있었고, 대학에서 김대중 선생이란 호칭이 난무 할 때 처음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처가가 전라도인지라 처가 쪽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깍듯이 김대중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것에 좀 질리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서울서 대학물 먹었다고 고향 내려와서 김대중 선생이란 호칭을 부지불식간에
쓰게된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같이 자리했던 어른들로 부터 " 야가, 서울 가디마는
전라도 깽깨이 되가 왔다 김대중 선새이 뭐꼬?" 라며 야단을 듣기도 했었다.
이렇듯 내 삶의 전반기에 있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의 맞은 편 어디 쯤에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참 고마운 것이 YS, DJ라는 영문 이니셜로 그들이 불리게 된 것이다.
누가 언제부터 어디에서 시작했느지는 모르겠지만 DJ라는 호칭은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존칭으로 쓰이고 또 그 반대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입장으로 쓰이면서
어떤 자리에서건 DJ라고 호칭하면 큰 부담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단지 조사만 좀
조심하면 되었다.
여하튼 DJ는 내 인생에 내가 경험한 한 분의 대통령이다.아니 이셨다.
그에 관해서는 신문 기사나 잡지 기사 혹은 언론에서의 보도 정도로 눈동냥,귀동냥한
것이 전부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잠시 상고해보면 우리 현대사에 분명히 큰 자리
매김을 하신 분이다. 여러가지 설이 많지만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 중 아직까지는 유일
하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분이고, 현대사에서 많이 소외되었던 전라도 사람들과
민주화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그들의 삶에 어떻든 하나의
의미를 던지신 분이다. 뿐만아니라 비운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야
국민들의 사랑이 그토록 컸음을 확인한 노무현이란 경상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자리를 깔아준 전라도 사람이었다.(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언제쯤 이런 출신 지역을
근거로 선입관과 편견을 갖게 되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와 질까? 다름을 차이로, 차이를
편견으로 세습함으로써 한 사람의 한국 사람의 정신을 상황에 따른 자기 검열을 하게 한
이 못된 유산이 하루 빨리 그치기를 빌어 본다) 그리고 후배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던 그 분의 모습에서 나는 뒤늦게 DJ라는 사람의
인간미를 발견했었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충격을 주는 죽음이 아니라 86세의 장수한 죽음이라서 그런지
그 분에 대한 기사도 차분하고 회고적인 것이 많이 올라온다.
독서를 많이 하셨고, 유머감각도 있으셨고, 한 개인으로서 뿐 아니라 정치인 그리고
한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인생 역정이 결코 순탄치 않은, 삶 자체에서 여러 스토리가
실타레 풀리듯이 풀려 나오는 그런 삶을 의연히 사신 분이란다.
DJ,그의 죽음은 아주 당연한 순리의 흐름이지만, 남은 자들에게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있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한다.
(한 편 생각하면 내가 이제 '가실 때가 된' 분들이 주위에 많은 나이가 된 것이다.)
DJ 어른신, 부디 천국에서의 부활의 소망을 이루시기를....
'이런 저런 잡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은 분명히 약이다 (0) | 2009.10.19 |
---|---|
늙은 바리데기의 슬픔 (0) | 2009.10.13 |
침묵 단상 (0) | 2009.07.29 |
차별화와 남다름과 독특함. (0) | 2009.07.09 |
양심과 정열 (0) | 2009.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