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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파리5구의 여인

 

삶은....
달걀? ㅋㅋㅋ
이런 썰렁한 생각을 하면서 떠올리는 책이 파리5구의 여인이다.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한 여학생과 정사를 나눈 것이 빌미가 되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아내와 정부의 음모로 탈출하듯 파리로 도망친 한남자가 격는 파란만장한~~ 귀신이야기!(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은 영화학과 교수였던지라 파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오전에 영화보기, 우연찮게 얻은 수위라는 직업에 충실하기, 일 주일에 두 번 귀신인줄 모르고 만난 여인과 섹스하기 그리고 매일 소설 500단어 쓰기가 전부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해 전날 그림책 공부조들과의 밤샘으로 다크써클을 턱까지 내리고 머리는 떡이지고 온몸에는 담배냄새가 찌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토론모임에 참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이 담고 있는 불륜과 사적 복수, 작가의 파리지향성과 그에 반하는 암울한 이미지의 파리 한쪽 구석에 대한 묘사,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작가의 묘사에 대한 묘한 거부감 등이 거론되었다.

 

 각자 순서가 돌아오면 말을 참지 못하고 열심히 느낌을 쏟아 내는 회원들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일순간은 아줌마의 수다같은 느낌이 전해 온다. 하기야 나도 결국에는 앞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전부 꼬투리 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모두 쏟아 내고는 나의 '아저씨의 수다'는 정당하고 이유있는 것인 양 팔짱 끼고 진지한 표정으로 있었으니 ㅎ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가증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남다른 이야기를 혹시 원할지도 모르는 회원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책에서 보여지는 죽음에 대한 태도다.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이유는 이런 저런 다른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결국은 죽는 것이 겁이 나서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죽이겠다는 협박이 등장한다. 죽이겠다는 협박만큼 강력하게 남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인간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거의 모든 종교가 죽음을 가장 큰 화두로 삼는 일면에는 이런 협박이 존재한다. 죽음을 당하거나 맞이한 사람에게 가장 큰 희망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일테니 죽음은 이래 저래 참 다양하게 쓰이는 인생의 재료이자 무기다.

 

이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가지 상반된 태도가 보인다. 죽음을 넘어선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의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죽음을 넘어섰다라는 말을 조금 부연하자면 스스로 죽었거나 아니면 남을 죽여 본 경험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거의 초죽음 상태에서 파리로 간 이유는 자기 고향에서 사회적 매장이라는 죽음을 피해기 위한 것이다. 그가 만약 매장당했더라면,다시 말해 매장의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재형의 삶으로 맞이 했더라면 그는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좀더 가볍게 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매장이 가져올 죽음으로의  근접성이 두려웠기 때문에 파리로 도피한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에서 그는 토하고(살고자 먹은 음식을 뱉어내는 일) 기절하고(의식이 없다는 건 죽음과 가장 유사한 모습이다)하는 병치레를 통해 죽음에 근접하지만 죽음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죽음은 계속 공포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귀신 애인은 이미 죽은 존재이거나 죽음을 경험한 무엇이기 때문에 죽음을 쉽게 여긴다. 이미 죽기 전에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죽음을 경험했고 또 그녀 스스로 죽었으므로 그녀에게 죽음은 인간살이의 그저 작은 한 요소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주인공에게 문제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을 쉽게 죽인다. 그리고 그런 죽음을 자신의 애인을 옳아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조폭들 중에 칼잽이들이 있다. 이들이 주로 유학을 가는 곳이 일본이란다. 그런데 이 칼잽이들의 역할은 사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을 만큼 찔러서 살려두는  것이란다. 그래서 찔러도 죽지 않을 곳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수 십번 찌를 수 있는  놈이 고수다. 그냥 죽이는 놈은 칼잽이가 아니다 킬러다. 칼잽이 유학을 가기 전에 보통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가는데 나이가 어린 칼잽이 지망생이 면도날 같은 것으로 상해를 입히거나 아니면 비교적 짧은 칼로 여러군데를  찌르도록 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지망생들은 자신이 처리한 타겟이 죽은 줄 알고 아주 자신감있는 수업을 받고 온데나? ㅎㅎㅎ 풍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죽음을 넘어서는 연습을 시킨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적을 쏘는 것은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동료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 눈이 뒤집힌다고 한다. 눈이 뒤집히는 순간은 타인을 죽음을 자신의 죽음이 동일시되는 순간이다. 그 후 그 병사는 적을 주저 없이 죽인다. 연쇄 살인범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면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그런 경험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죽임은 야만이다. 이 책을 읽고 인간의 야만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음을 넘어서야 삶이 좀 단순해지고 쉬워지고 용기도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까  죽음을 다양하게 쓰이는 인생의 재료이자 무기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런 재료를 아껴둘리 만무한 것이 우리 한국 사람이다. 아무리 온순한 한국 사람도 화가 머리 끝까지 솓구치거나 혹은 길거리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시작한 싸움판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심지어는 부모가 자식한테도 종종 쓰는 말이 "이 새끼, 쥑이뿔라!"인 걸 보면 한국 사람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세계 몇 번째에 들지 않을까 싶다. 죽지 못해 사는 것에 이골이 난 민족이라 죽기 살기로(아마도 이 말은 사생결단이란 한자말 한글로 쓰다보니 서로 배치되는 단어가 한데 묶여 '필사적'이란 느낌을 구어체로 표현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는 것에 도가 튼 모양이다. 그래서 아둥바둥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단기간에 급격한 경제적 고성장을  이루었다.(사실 이것도 중국에 추월당한지 몇 해 지났지만...) 아무튼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실의 근원이 삶의 에너지인지 죽음의 에너지인지는 좀더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이면 좋은 것들이 많다.
성질을 죽이면 평화가 온다.
또한 자신을 죽일 줄 아는 사람은 역사에 오래 남는다.
많은 영웅들의 이타적인 죽음이 그들을 역사에 오래 살게 했다.
그리고 정말 좋은 것들은 다 '쥑인다!'

 

 

이런 죽음의 주제와 좀 구분되는 면이있지만, 주인공이 살기 위해,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한가지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쌓았던 것이 하루에 500단어를 쓰는 것이었다. 자기 스스로는 파리에서의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매일 써낸 소설의 분량이 만족스러웠지만 그의 귀신 애인은 귀신같이 그의 소설을 평가해 준다. "당신은 분명 재능이 있어. 아니, 재능이 풍부해. 문장의 전환, 상황을 만들어 내는 힘, 인물묘사가 아주 좋아. 그런데 문제는,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야.... 당신은 소설을 쓰는 것이지 시를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 감상주의에 빠져 줄거리가 허우적거리잖아. 현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잔가지를 다 쳐내고 다시 쓰는 게 더 좋을....(P382)"


이 대목을 읽으면서 헨리의 애인이 아닌 나의 애인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미지트의 대사는 이렇게 바뀌어서 들렸다

" 지원씨, 당신은 재능과 능력이 있어.아니 아주 풍부해.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남들 보다 110% 쯤 잘해. 그런데 문제는 당신은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200%의 탁월함이 없어. 그리고 당신은 삶을 명확하게 말을 하지만 막상 당신의 삶은 명확하지 않다는 거야. 당신의 삶은 소설이 되어야지 시가 되어서는 안돼. 구체적인 줄거리가 있고 팩트가 있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런 소설을 쓰려해야 해. 당신이 시를 쓰는 것은 매우 멋있게 보여.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남다는 시선을 가지려하고 그런 시선으로  삶의 여러 모습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모습은 애인으로서는 보기 좋아. 하지만 솔직히 당신의 시가 당신의 현학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해 잔가지를 다 쳐내고 다시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애. 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루지 말고 당신이 목표한 것을 다시 살펴보고 매일 매일 500자의 분량을 채우는 노력을 계속해.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금까지의 인생 경험을 토대로 짜임새 있고 디테일하게 말이야~ "  아! 환청이 아니다. 미지트가 내 머리로 들어와 버렸다. 그럼 나도 미지트와 사흘에 한 번 씩 만나서 그런 열정을 불태워야 하나?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