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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무탄트 메시지> - 말로 모건 -

 


 작가가 책에도 기록했지만 이 책은 픽션이나 논픽션이냐의 논쟁이 있었다. 참사랑 부족이란 부족이 없었다는 주장에서 부터 책의 내용이 이전 누군가의 아마존의 기행을 모방하고 각색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이 픽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증거를 들이대고 있지만 정작 넌픽션이라고 주장해야 할 저자에게는 그런 증거가 없다. 그녀가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책에서 표현된 텔레파시와 부상자의 치료 등 여러 신비스런 경험들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기에 상식 수준에서는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인구에 회자되고 상당기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이유는 그런 신비스런 내용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 믿음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오만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과학적이라고 인정하는 귀납과 연역의 생각틀 속에 매몰되어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방 기계에 의존하다보니 잊어버린 가사들, 네비게이션 때문에 길치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경험이 문명의 이기로 인해 잃어 버린 우리의 능력과 본능을 가까이서 반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감을 보이는 것 아닐까?  

 

지금 문명 세계라 자칭하는 범주에서 일상을 보내며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쯤 자신을 둘러싼 물질 문명과 새로운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무언의 압력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자신을 익숙하게 여기는 곳에서... <무탄트 메시지> 이 책은 그런 바램을 적당한 메시지와 함께 잘 표현해준 책이라 여겨진다. 적응하기 힘든 물질 세계의 변화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정보의  변형과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원시를 꿈꾼다. 그 원시라는 것은 미개가 아니다. 시원의 소리를 듣고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원시, 바로 처음을 향한 마음이다. 우리가 고향을 향수하는 것도 바로 그런 처음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다. 그 처음은 지금의 내 모습으로 뮤테이션되기 전의 원형이고 그 원형은 순수했었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의 회귀는 육신과 영혼의 정화와 부활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다.

 

  이 책에는 단편적이지만 불교의 연기와 윤회 ,그리고 장자적인 일체유심조와 기독교의 영혼 불멸 사상 헬레니즘적인 범신론등등 여러 종교의 사상들이 언급되고 있다. 말하자면 호주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난 셈이다. 그래서인지 론다 번의 <시크릿> 냄새가 나기도 한다. 사실 <시크릿>은 론다 번이 <The Science of Getting Rich : 부자 마인드 수업(한국어판 명)> 란 책에서 얻은 감명을 양자 역학이니 자연치료니 긍정적인 마인드와 호르몬심리학 혹은 생리학 등의 내용을 역어서 책을 짓고 그것에 영상의 힘을 빌어 성공한 책이다. 지금와서 보면 <시크릿>의 영상에는 여러 곳에서 후광 효과나 체리픽크 효과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것의 초창기에는 얼마나 많은 설득력을 가졌던가. 모든 물질이 결국은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고( 끈이론) 자신만의 우주가 있고(멀티유니버스), 이 우주의 에너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므로(양자역학 , 관찰자 효과) 결국 자신의 의지가 물질을 만들거나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이 사실 학문상으로는 전혀 통합되어 있지 않음에도 <시크릿>에서는 정말 잘 통합된 것처럼 설명되었고 예를 들었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었다. <무탄트 메시지> 역시 출판 후 30여주간을 베스트 셀러에 올랐었다니 그 또한 참 비슷하다. 그러나 <시크릿>은 물직적 풍요를 바라는 것이 궁극적 메시지였지만 <무탄트 메시지>는 인간의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고 창조될 당시 가졌던 그 많은 잃어 버린 능력과 인간 본성의 발견을 통해 영적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좀 더 오랜 변화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인간에게 담긴 창조의 신화와 음양 오행의 원리와 불교적인 연기와 그에 대한 깨달음이 참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그런 깨달음으로의 회귀하는 방법론으로 모든 자연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 감사하는 것과 관찰의 습관과 직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제시한 것도  흥미롭다.

 

책을 읽으며 몇개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지만 책장을 덮고서도 이명처럼 울림이 있는 한 문장이 있다. " 인간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며, 오직 나무와 풀만이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인간은 정작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어느 것도 만들지 못한다. 공기며 물이며 심지어 어떤 먹거리도 인간이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제공하는 자연에 아무런 경외심이 없이 사소한 사물로만 대하며 사는 우리 인간의 오만은 정말 벌 받아 마땅하지 않는가? 어쩌면 이 오만이 우리의 원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