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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패트릭 쥐스킨트 -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읽은 소설에서의 천재는 추리 소설의 주인공의 범주를 넘지 않았다. 탁월한 추리력과 논리력 혹은 비상한 상황 대처 능력등 대부분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거나 아주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찬찬히 읽고나서야 작가의 소설적 안배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지만 글을 읽어 나가면서 이 작가는 분명 천재일 것이라 믿게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후각의 천재를 주인공으로 삼은 독특함 때문이 아니다. 쥐스킨트의 글은 시각을  통해 받아 들이게 되지만 오감을 자극하고 육감을 충동질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끊임없는 묘사와 그 묘사에 사용되는 수 많은 비유와 사건과 스토리들 한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 가지는 생각을 이렇듯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천재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박에 없다. 그리고 독자를 몰입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감탄하게 함으로써 소설을 읽은 다음의 재미를 더 크게 만드는 재주는 천재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글쓰기에 욕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쥐스킨의 필력은 좋은 귀감이요 도전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싶다. 

 

영화를 먼저 본지라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 영화를 기준으로 소설의 묘사와 영화의 묘사를 비교하게 된다. 영화<향수>도 나름 영상미를 제공했고 처형장에서 수백명의 엑스트라가 완전한 나체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감독의 대담한 연출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역시 영화가 소설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각적인 상상력으로 읽어야 하는 책과 후각을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영화는 본질적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 냄새,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에 관한 것이며 영혼에 관한 것이다. 영혼에 민감하지만 스스로의 영혼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냄새에 민감하지만 스스로는 냄새가 없는 주인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언젠가 우리는 주인공 그루누이 처럼 자신의 육신을 내어 줌으로써 속죄와 구원을 동시에 달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리하기까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범죄를 범하면서까지 냄새 즉 완벽한 영혼의 탐구에 목숨을 바쳤던가를 기억해야한다. <향수>는 세월이 몇 백년 흘러 이 세기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힐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