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를 위하여> - 이문열-
처음 이 책을 대한 지 30년 쯤 되나보다. 교과서의 연장선 상에서 읽던 한국 현대 문학 소설말고 내가 우리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신문에 연재되던 박범신의 <풀입처럼 눕다>부터인 것 같다. 그 때는 그런 연재 소설이 꽤 재미났었는데 유독 <풀입처럼 눕다>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이었던 도엽과 다혜의 베드신에 가슴이 설레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즈음에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다음 권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읽은 책이었고 주인공 장총찬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롤모델이었다. 그 이후는 무협지에 빠져서 살았는데 아마 고3 입시를 마치고 몇 달간 읽은 무협지가 족히 1,000권을 넘었으니 엄청난 독서(?)였다. 나중에는 무협지 하나 쯤은 쓸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이 붙기도 했으니... 여하튼 지금 이 나이되도록 문자에 익숙히 살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 읽었던 무협지가 한 몫을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소설을 다시 접한 것은 대학에서인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이며 막심고리끼의 <어머니>등이 운동권의 필독서처럼 여겨지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소설 읽기가 자연스레 80년대의 유명작가들의 소설로 이어졌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은 바로 이문열과 이외수 이청준 등이며 그들의 소설들은 아마 이상 문학상 수상과도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 이청준은 87년도 즈음에 이상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책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꾸준히 좋아하시던 최인호의 소설도 80년대 서점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잃어버린 왕국> 정도이다. 여하튼 80년대의 이런 작가들이 소설로서 우리 서점에 밀리언셀러의 시대를 열었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기 연예인의 무슨무슨 빠에 해당되는 고정 애독자 집단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이다. 당시 시장성은 김홍신이 당연 뛰어났지만 문학성에서는 아무래도 이문열이 아닐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황제를 위하여>를 50이 넘어 다시 읽으면서 새삼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가가 48년생이고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82년 쯤이니 그 전의 집필 기간을 고려하면 30 초반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나 필력으로 봐서 도저히 30대 초반에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지금처럼 고전에 대한 해설서나 번역본이 많은 없었을텐데 어찌 노자며 <장자>며 <논어> <맹자>에 <한비자> <삼국지>와 사마천의 <사기> 그리고 두보의 시에 이르기 까지 심지어 남사고의 <격암유록>이나 <정감록>의 감결에 이르는 폭넓은 지식을 보면 그의 공부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황조가를 차용해 척부인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는 황제의 시를 소설 속에 박은 것이 좀 유치해 보이는 대목이기는 하다. 작가 이문열은 잠시 기자도 했었지만 이런 공부가 있었기에 그의 말솜씨는 다소 느릿한 달변이지만 허풍이 없어 보이고 예리한 맛이 진하다. 아무튼 3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아마도 그건 무협지에 단련되었기에 이런 문체를 집어 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이 소설을 시험지에서 보는 고문교과서 예문 보듯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세대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마지막 세대 쯤 되는 건 아닐까?
책의 내용은 어찌 보면 뻔한 전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도령의 예언을 차용해서 시작했고 주인공의 장자적 깨달음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엑스트라들의 행동이 <돈키호테>를 연상케하기도 해서 현대어 어법이 아닌 대사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피난길에서 만난 국군들과 황제의 노인네들이 논밭을 뛰어 다니며 쫒고 쫓기는 장면은 라만차의 기사가 풍차를 보고 돌진하는 장면에서 미소를 머금거나 실소를 했을 유럽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한국적인 것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서, 책의 전반에 걸친 황제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서 갖는 안타까운 실소를 즐거운 미소로 바꿔 놓기도 한다. 앞서 황제와 그 엑스트라들이라 했지만 실상은 황제의 삶을 시즌(season)으로 잡고 각각의 주인공들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식이어서 요즘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는 시즌과 에피소드의 구조를 이미 선구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생각하면 작가의 명민함에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책에서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비꼬임을 당하기도 하고 일그러진 세태가 풍자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는 항상 미시적인 움직임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거시와 미시의 접점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어 그 전개 기법이 독특하다. 한 국가의 시대적 흐름이란 거시적인 환경변화가 황제를 둘러싼 그들만의 나라가 변화하는 미시적인 환경이 되고 이 미시적인 환경이 각 개인의 삶의 변화의 계기가 되는 식이다.
책을 덮으면서 황제의 삶과 황제를 위했던 삶과 황제를 이용한 삶 등등,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하나 하나 곱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하지만 읽어야할 책들이 산적해 있어 다음으로 미루면서 두 가지 내 마음에 와닿는 것들을 적어 본다. 하나는 '너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다.
세상에 자기 삶의 소명을 알고 사는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명을 안다고 해도 믿음을 가질 사람은 더 적어질 것이고 믿음을 가졌다 해도 소명대로 삶을 살다갈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황제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 지는 작가가 복선을 깔고 있어 모호하다. 하지만 그는 나름 황제의 신화 속에 황제로 살았고 나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깨달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소설 속에서 황제는 적어도 자신의 소명을 알고 살았고 자신의 소명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신념을 얻고 그 신념의 동지와 한 세상을 살다간다는 것이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삶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황제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나 또한 여기서 이 시점에서 다시 내게 물어야할 것 아닌가? " 너는 네 소명을 알고 있냐고? 지금의 네 삶은 그 소명을 향한 삶인지? 아니면 그 소명 속의 삶인지? 지금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이냐?"고...
다음으로 마음에 와닿는 것이 정처사와 황제 그리과 융과 휘에 이어지는 고리이다. 정처사는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의 표상이다. 아들이 무엇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강하게 삶의 지표를 설정해주는 아버지 말이다. 물론 소설 속의 정처사 처럼 굵은 선을 가지고 아들을 챙기는 것은 지금 대기업을 일군 회장님네들이나 함직한 일들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들의 아버지는 아들이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가장의 권위로서 당연히 행사하던 우리들의 아버지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또한 무관심한 면이 많았기에 뒤치닥거리는 어머니들의 몫이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정한 목표를 향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목표에 따라 살았건 반대로 살았건 간에 그런 보살핌 아래 자란 우리들은 아버지가 되었고 아들에게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압적으로 제시하기 보다 그저 자식이 진정 행복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아비로서 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과연 내가 옳았을까 하는 생각을 수시로 하곤 한다. 굳이 자율이냐 타율이냐를 논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자극을 줄 필요는 있지 않았을까? 라거나 내가 목표나 계획을 제시했더라면 그것을 참고 삼아 제 것으로 만들어 내기가 쉬워서 좀 더 만족하는 삶을 설계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등등의 프로스트적인 아버지 마음 말이다. " 여느 아버지들과는 달리 정처사는 삶의 지표를 설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삶 자체를 함께 살아준 사람이었다." 란 대목에서 "때로는 그 삶 자체를 함께 살아준 사람"이란 대목이 못내 가슴에 걸려 넘어가질 않는다. 지금까지는 부족한 것 같고 앞으로 내 아들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내 인생의 항로와 오버랩되는 자신감 없는 생각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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