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 검은 가죽 의자
- 정지원
범도 아닌 것이 왜 가죽을 남겼으며
범도 아닌 것이 왜 죽어도 풀을 먹지 않겠다는 건가
너는 어느 짐승의 유산이기에
감당하기 힘든 무게에 짓이겨지는 이 어깨를 토닥이는가
너의 품위는 뼈와 살이 벗어나는 고통을,
혀처럼 날름거리는 얼음 같은 바람의 고문을 참고 얻은 것인가
잘려나간 발톱을 세우고 떨어져 나간 머리 쳐들고
피 묻은 혀를 늘어뜨린 채 송곳니를 드러내는 환상
그것은 애당초 네 것이 아니었음을
희망이라는 몰핀에 찌든 너의 태연함
심장이 아직 뛰고 있을지도 몰라 등을 기대어 보지만
무기력한 이명만이 되돌아 온다
네가 기억하는 것은
비굴한 혀들이 토해낸 거짓과 역겨운 입들의 음모 뿐인가
진심은 통하고 영웅은 승리한다는
신화를 곱씹던 미련이
잡히지 않는 라디오 채널의 비명처럼 날카롭다.
분열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다
떠나가는 사람을 향한 웅변은 변명의 그림자만 늘일 뿐
그림자는 항상 빛의 반대 편에 선다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하면 그림자에 둘러 싸여
그 본질인 침묵과 어둠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침묵과 어둠의 화신 같은 네 가슴팍에서
이제는 우렁찬 웃음 소리, 무능한 짐승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 듣고 싶다
그래서 윤기 나는 너의 피부에 털이 돋고
모진 망치로 잘 단련된 아름다운 송곳니 다시 내밀고
밤에 더욱 빛나는 본능의 눈으로
나의 등을 지켜주면 좋겠다
그러면 등 뒤에 차곡차곡 쌓였던 침묵으로부터
뜨거운 가슴이 화산처럼 열리고
잃어버린 내 본능의 소리, 다시 솟아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