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수론

백수 기도문과 응답

<백수 기도문>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 드리옵니다.

우리 백수의 삶을 세상을 사는 저 수많은 인간들에게 가치 있는 삶을

가르치는 주요 교제로 삼아 주신 것을 감사 드리오며,

게으름의 특기와 빈둥거림의 장기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저 수많은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굳건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 것 또한 감사 드립니다.

 

살아 움직이는 교제와 숙달된 조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행치 못하고

가끔, 돈을 벌겠다고 친구들을 초청하여 동양화와 서양화를 번갈아 가며

열심히 일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심지어 백수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위해 주는 개평도 마다하고 나온 교만함을 용서하옵소서.

 

바라옵건데

육신의 능력을 허락하사, 찬밥에 맹물만으로도 능히 3일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위장을 갖게 하소서. 

어쩌다 친구인 줄 알고 받게 되는 전화가 요금 독촉 전화일 때는 능히

'부재중 메시지' 목소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옵시고,

 

운동부족으로 뱃살이 늘어나게 하여 주사 그 뱃살 덕분에 방바닥을

구르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게 하여 주소서.

방바닥 장판에 새겨진 도형들의 기하학 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시고, 천장과 벽에 새겨진 꽃무늬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게 해주시옵소서.

친구에게 차비 얻어 집까지 걸어 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집으로 가는 걸음 걸음 주울 수 있는 500원짜리를 깔아

주옵소서.


무릎 삐친 운동복 한 벌만으로 능히 한 달을 버틸 수 있게 해주시고,

한 달에 한번 바지를 빠는 절약정신을 키우게 하소서.

그 바지 세탁한 날에는 팬티와 런닝 차림으로 나돌아 다닐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목욕과 세수, 그리고 머리 감는 일은 일주일에 한번만 하게하여

환경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무협지 없이는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철학적 고민도 하게

해주옵소서.
어쩌다 얻어 피운 돗대 담배에도 감동의 눈물이 하수와 같이 흐르게

하옵소서.
소주 알기를 생명수로 알게 하시고, 김치보다 더 좋은 안주는 없다는 걸

알게 해주옵소서.
1,000원만 들고 오락실을 가도 한 시간은 버틸 수 있게 해 주옵시고,

시간에 무감각하게 해 주옵시고 언제나 바쁜 척하게 해 주옵소서.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

다시는 저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느님은 이런 애절한 백수의 기도를 요약하고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고 한다.

 

< 하느님이 백수에게 가라사데..>

 

너의 나쁜 습관을 없애달라고?.
나쁜 습관은 내가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하는 것이란다.

 

네 육체에 능력을 달라고?

하지만 아이야 네 몸은 잠깐이란다.

 

인내를 갖게 해달라고?

인내는 긴 고통의 산물이란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란다.

 

행복을 달라고?

나는 너에게 축복을 이미 주었다. 행복은 너에게 달려있단다.

돈을 달라고?

나에겐 네가 평생 써도 모자라는 돈이 있지만, 

네가 돈을 지배하지 못하면, 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네게

독을 주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을

나는 정말 원치 않는단다.

 

웃기는 기도문에 명쾌한 응답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요약하자면 어느 백수도 자신의 백수로서의 삶을 진정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리고 백수는 남들이 시간을 가지고 인내를 배우며 천천히 이루어 가는 것을

한 방에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백수는 건달 앞에 붙는 말이다. 그런데 왜 백수론을 접어두고 건달론을 먼저 언급했냐고

질문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그 이유는 우리가 건달의 의미를 백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는 건달을 형용하는 말이다. 백수는 건달 앞에 붙어서 땡전 한 푼 없는 건달을

표현한다. 건달의 어떤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건달이 백수를 만나면 오리지널 건달이건 깍두기 건달이건 혹은 개량 건달이건 

간에  매일반이 되게 된다. 손에 쥔 것이 없는 오리지널 백수나 결과가 없는 개량 백수는 인생이란 비빔밥에 담긴 그 나물이요 그 밥인 것이다.

 

그래서 백수도 뒤집어야 한다.

백수도 뒤집고 보면 참 의미가 새롭게 된다. 지금부터 뒤집어 본 개량 백수론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