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流論
필자는 본격적인 직장 생활의 경험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외국인 회사에서 시작했다.
당시 짧지만 국방의 의무를 필하고 청운의 꿈을 품고 갔던 서라벌에 재 입성해서 대학원
진학을 위한 백수 건달이었던 사람이 우여 곡절 끝에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지원서 서류의 앞면 만 기입하고 뒷면을 기입하지 않아서 뽑을까 말까 많이 고민했었단다. 다른 입사동기들은 하지 않은 추가 면접이란 것을 통해 그 회사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그 때 면접관이었던 임원 분에게 내가 했던 이야기는 “ 저 장가가야 되니 뽑아 주십시오.”
였다. 여하튼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도 아니고 장가가겠다는 말을 하는 20대 중반의 건달을
뽑아 준 그 분들도 지금 생각하면 한 功力 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
당시 회사란 것도 생소했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보던 회사와는 다른 그 회사는 여러 가지로
나를 즐겁게 만들어줬었다. 우선 외국에 나가서 교육을 받는 것도 그랬지만 회사 일의
80%는 영어단어가 사용되었고 또 첫 월급은 근로자 증권저축 들라고 60만원 이하로
준다면서 입사 후 한달 만에 무려 20만원의 급여를 인상해주는 회사(20만원은 당시 급여의
1/3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회사가 표방하는 신념(Beliefs)들이란 것이 있었는데 개인 존중 ,
최고의 서비스, 그리고 탁월성 추구라는 것이었다. 이 세가지 신념 덕택에 나는 백수에서 일약 일류로 변신한 신데렐라가 되고 말았다. 출장가면 경비를 아끼라는 것이 보통의 회사
이야기였는데 직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호텔에서 자라고 하고, 회사 전체 행사는 물론이고 부서 단위의 행사도 웬만하면 호텔에서 하던 회사.
개인 존중이라는 신념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일은 눈치는 좀 보이지만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해도 별로 회사 생활에 지장이 없는 회사, 입사 후 첫 6개월을 부서 배치도 않고 방하나에 모아두고 비즈니스며 컴퓨터며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연습시키던
회사. 정말 배우는 것도 많은데 월급까지 주니 정말 월급 받기가 미안했었던 회사이다.
당시 그 회사는 전세계의 IT 부문을 이끌어 가는 일류 회사였고 그 속에 속한 나도 일류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고 일류의 행동을 흉내 내게 만들었다. 회사의 신념들 중 ‘탁월성
추구(Pursuit of Excellence)’ 는 특히 개인적으로 용도가 많았다.업무의 탁월성을 위해 개인 능력의 탁월성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신입사원에게는 회사가 “당신은 탁월한 사람이니 일류로 행동하시오”하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시골 촌놈이 도시 깍쟁이 티를 내는데 이론적 근거가 된 것이다. 때문에 월급쟁이의 소비 수준을 지나치게 높여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감수해도 좋을 만큼의 부담이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일류다! ”라고
그래도 촌놈이 본 모습을 아는지라 “ 적어도 직장 생활하는 사람 중에서는 일류다!”라고
이내 고쳤었지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건달의 세계에는 하늘의 별보다 많은 고수가 있다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했던
‘輕擧妄想’이었다. 일류가 뭔지도 모르던 촌놈이
말이다.
一流, 二流三流의 구분은 객관적 잣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대게 사람은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자각과 자기 자존심의 갈등을 통해 그 중 한 ‘類’를 택하여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그러면 1.5流는 무엇인가? 스스로 일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이 이류를 용납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바로 1.5流다.
우리 깍두기 건달들의 생존 법칙 강의 시청각 교재인 영화 “넘버 쓰리”를 보면 주인공은
조직에서는 넘버 투에 머물고 말았지만 인생에서는 ‘일반인으로의 복귀”라는 일류의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전과자인 그는 적어도 이 한국 사회에서는
명백한 3류의 낙인이 찍힌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그 3류를 용납할까? 아니다!
그래서 그는 2.5流, 혹은 1.5流로 출발하게 될 것이다.
< 三流論>
三流는 숫자로는 널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一流,二流를 세외 하고는 다 三流다.
살아 있는 四流는 없다. 다만 死流가 있을 뿐이다.
흔히 자괴감을 대변하는 단어로 ‘삼류’라는 단어가 사용되듯이 삼류는 성취 보다는 포기가 빠른 습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며 조연 중에서도 엑스트라로 분류되는 급수이다. 누구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 그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기인을 만나는 인연’ 이나 ‘대박만 터지면…..’ 등의 공상이 살아가는 큰 모티브가 되기도 하며, 또한 자기를 부정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넘버 투’로 불리기를 희망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이것은 삼류의 특징 중의 하나인데 많은 二流가 실제는 三流인 경우가 많다) 실제 삼류의 자기 부정은 이류를 거치는 것 이 아니라 일류로의 도약과 직결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Position Taking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품위 유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들은 생활보다는 생존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러나 사회적 부가 상승할수록 생존의 노력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삼류는 그 잉여 시간을 投資하기 보다는 投棄(던져 버림)하고 만다.
공상과 게으름과 말초적인 탐닉으로…..오리지널 건달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정말 두려운 것은 생존을 위해 비참함과 자존심의 손상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의 복귀이다. 때문에
그들의 공상과 게으름의 제어 기제는 오직 돈이다. 아무리 3류라도 돈이 있으면 뽀다구가
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주로 二流에게 이용당하고 돈으로 보상 받는다.
돈의 보상마저 없으면 돌아버린다. 그리고 막간다.
사시미 하나 들고 死流를 재촉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보상 때문에 一流로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만다는 것이다.
< 二流論>
일단 二流는 일류에게
이용 당하고 삼류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삼류의 이용에서 얻는 이익을 대부분 일류에게 주고 다시
그들로부터 일부를 돌려 받는 구조적 모순의 대변자들이다. 이들은 숫자로는 삼류보다 적다. 하지만 수적 불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삼류들을 통제한다. 그들은
일류가 없는 곳에서는 삼류 앞에서 일류다.
이류는 적당히 교육도 받고 기회도 만들 줄 안다. 또한 일정 부분 Position Taking을 하고 산다고 믿기 때문에 품위 유지 비용도 사용한다. 실제로 품위 유지 비용을 집행하는 계층은
이류들이다. 그들은 일류의 품위 유지 비용을 알아서 직접 집행한다. 그리고 3류 앞에서
일류처럼 보이기 위해 그들의 주머니에서 직접 돈을 꺼내는 뽀다구나는 행동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일류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일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하며 일류가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정말 갖고 싶은 것은 일류가 가진 자유다. 그들에게 일류는 무엇을 해도 멋있어 보인다.일류가 하는 삼류 같은 행동도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해석한다. 일류는 이런 이류의 속성을 안다.
이류는 조연이다. 간혹 조연이 주연보다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조연은 이류가
아닌 1.5류다. 이유는
1.5류의 설명에서 부연하겠다
조연은 그야말로 양념입니다. 조연
없는 주연도 없다. 하지만 조연하는 사람치고 주연하기 싫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보라. 없다 . 조연은 기회만 있으면 주연이 되고
싶다.
하지만 조연은 주연의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 주연의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는 조건의 필요성 때문에 음식에 소금을 치듯이 사용된다.
다시 말해 이류는
일류에게 있어 필요 조건이다. 때문에 일류는 이류에게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또 이류를 세분화하여
이류가 이류에서 왔다 갔다 하도록 적당한 계층도 마련한다. 일종의 일류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이런 안전 장치 때문에 이류의 특징은 성공에 대한 열망에 비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류는 ‘이렇게 살다 죽지 뭐!’라는 식의 자기 취면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 지향성은 구조적
모순에 의해 막혀
있다는 자기 합리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류들은 자기와의
타협을 통해 스스로 일류로의 길을 차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一流論>
앞에서 암시했듯이 그들은 세상의 흐름을 좌우한다. 많은 부과 권력 혹은 영향력이 이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무기를 다루는 법을 안다. 그리고 일류는 잠재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 한다.
일류는 수적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일류는 이류 삼류에게 뿐 아니라 다른
일류에게 조차 배타적이면서도 일류의 동류 의식에 대해서는 매우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일류는 초일류를 꿈꾸지는 않는다. 간혹 초일류를 꿈꾸는 일류가 있다. 그들은 타고난 일류가 아니다. 타고난 일류는 그들이 확보한 영역을 지키려 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지만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현 상황의 영속적인 유지이다. 때문에 이들은 대물림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한편 도약한 일류는 이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품위 유지에 상당한 비용을
사용하기도 하며 이를 차별화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들은 매우 강한 사회계층구조론의 옹호자이며 실제로
이류와 삼류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부의 수혜자이면서도 이류와 삼류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의 통념에 배치되는 많은 일들을 선도적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도덕적 기준도 자기들의 임의적 해석으로 정당화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면 이러한
일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 할 것이다.
그게 무슨 일류냐고. 누가 그런
일류가 되고 싶어하겠느냐고?
맞습니다.
맞고요~
앞에서 설명한 일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곡된
일류다.
(전술한 이류나 삼류도 이전 맥락에서는 많은 왜곡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류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고,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덕적인 기준이 명확한 일류이다. 진정한 일류는 자기 진실을 통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막대한 품위유지비용을 쓰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지 않는다.
그저 일류로 존경 받을 따름이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 보다는 사회적 가치의 상승에 기여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물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1.5流論>
이들은 영화로 말하면 주연급 조연 혹은
비중이 약한 주연이다.
이들은 성공지향적이지만 신분 상승의 강한 욕구보다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 욕구가 더 강하다. 그들은 매우 유동적인 Position Taking 전략을
구사한다. 때론 이류로 때론 삼류로 때론 일류처럼 행동한다.
이들 중 일부는 일류로 평가 받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인해 스스로 일류임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변화를 해야지만 더
나아진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합리화 보다는 자기 부정을 더 즐겨
한다. 삼류의 자기 부정이 아닌 일류를 향한 자기 부정이다.
그들은 자기 타협에 익숙하지 않아 스스로의 에너지를 일찍 소진하는 단점도 있다.
그들은 스스로 신이 내린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이 버린 둔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갈 수 있는 한 멀리, 뛸 수 있는 한 높이
뛸 수 있는 보통 사람으로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삶의 결과가 그들이 지향하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회적인 삶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자신의 삶의 과정과 결과를 설계한다.
그들은 조연이면서 주연보다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도 주연보다 주목 받을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류를 꿈꾸지 않고 계획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인 삶의 영역을 점차 넓혀간다.
그래서 1.5류는 일류로 도약하지
않고 성장한다. 이런 1.5류는 이미 일류의 자존심을
능가한다. 이 1.5류가 바로 변화한 건달이고 개량
백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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