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실크로드를 깔면서도 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만리 장성이 있는지를
쓴 글입니다. 아마도 2..3년 즘인 것으로 기억되네요.
< 만리장성과 실크로드 >
라디오를 통한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 믿음의 만리 장성을 쌓도록 노력 하십시요. 하룻밤 인연에 만리 장성을 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루를 믿더라도 제대로 믿는다면 믿음의 만리 장성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 만리 장성을 예를 든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뭔가 가슴에 좀 걸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를 떠난 우주인들이 우주선에 바라 볼 때 인간이 지은 건축물 중 유일하게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이 만리 장성 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웅장한 건축물이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인간의 부끄러운 흔적입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 백성을 지키려는 목적
보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백성들의 피가 젖어 있는 불행한 흔적
입니다. 지금은 인류의 문화 자산이요 중국의 큰 관광 수입원이지만 만리 장성은 커뮤니케이션 장벽이랄 수 있습니다.
반면 만리 장성과 비교해서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존재했던 만리 장성보다 더 긴 인류의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실크로드 입니다. 실크로드는 유목민들의 영토 정보의 통로요 반쪽의 문화가 서로 연결되고 썩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실크로드는 커뮤니케이션 통로인 셈이지요.
우리는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 가끔은 하룻밤에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비유에 만리장성을 인용하곤 합니다. ‘하룻밤에 만리 장성을 쌓는다’ 란 이야기지요.
그러나 사실 이 속담의 유래는 어찌 보면 남자의 육탐이 빚어낸 서글픈 이야기인 동시에 남편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열녀의 이야기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나라 시대에 한 여인이 만리 장성을 쌓으러 간 남편을 구하려고 지나가는 객에게 하룻밤
을 제안하고 편지 한 통을 만리 장성을 쌓는데 부역 나간 남편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합니
다. 이 객은 손해 볼 것 없다 싶어 하룻밤 인연을 맺고 그 편지를 전해 줍니다. 그런데 그
편지의 내용이 “ 이 편지를 전해 주는 사람을 대신해서 부역하게 하고 제 남편을 풀어 주세
요”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객은 하룻밤 인연에 죽을 때까지 그 남편을 대신해 만
리 장성을 쌓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는 만리 장성과 실크로드란 단어를 우리 교인들 간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아야할 단어가 아닌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사도 신경 중에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란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교통’이란 단어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믿음 생활이 결코 홀로 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서로 교제하면서 돕고 살라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새로 주신 율법인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도 간의 교통에 있어 막연히 떠나지만 동서양(서로 이질적인 문화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여백을 두고 있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겠지요)을 연결해 주는 실크로드를 연상할 수 있습니까? 실크로드는 누구에게든 열려있고 앞선 사람들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처음 길을 떠나는 사람이 가는 길이 때론 갓길인 듯 보이지만 새로운 경로의 하나로 실크로드에 포함되는 포용성도 있습니다. 새로운 경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 간에도 만리 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에 존재하는
무수한 교파와 또 같은 동네에 있는 같은 교파인데도 우리 교회와 너희 교회가 분리되기도 합니다. 혹은 같은 교회 내에서도 소위 끼리끼리 그룹이 나뉘어진 경우는 없을까요?
단절과 우리만의 것을 고집하는 만리 장성을 성도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만리장성은 하룻밤에도 쌓을 수 있는 인간의 욕심을 상징하는 지도 모릅니다.
반면 실크로드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껏 부푼 기대와 또 동전의 양면처럼 숨어 있는
위험과 고난을 극복하는 인고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순례자의 길, 그런 실크로드를 우리 성도는 모두 가슴에 담고 열린 생각과 서로에게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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