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인 교수의 강연이 후에 쓴 글로 보이는데 그 때 느낀 바가 많았나 봅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 터라 묶은 책을 보면서 묶은 제 신앙을 기대했었나보구뇨. ㅎㅎㅎ
< 묶은 책과 새 책>
제 집에는 제법 그럴 듯하게 제 개인 서재가 꾸며져 있습니다.
제법 많은 책이 꽂혀있고 또 해묵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단지 제가 책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꾸민 것인지, 아니면 정말 책 읽을 공간이 필요해서 꾸민 것인지 솔직히 어느 것이다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분히 아는체하기를 좋아하는 성미라 아마도 저의 현학을 백업해줄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쪽이 더 유력하지도 모르지요.
책에 대한 저의 편력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교 앞에는 시중가격의 30% 정도
에 책을 구할 수 있는 헌책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학생으로서의 공부가 단지 학교의 성적
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었던 나는 비교적 다양한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었지요.
사실 시초가 된 것은 오래된 시집을 사는 것에서부터였습니다. 오래된 시집에서는 당시만해
도 꽤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편지 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편지의 대상은 여학생들이었고, 그들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 예쁜 말을 고르는 연습
을 시집에서 시작했었지요. 처음에는 시집 몇 권에서 나중에는 詩作에 관한 책으로 옮겨가
고 제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서 철학 관련 서적이나 여러 사회 과학 서적을 사기 시작했습
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쯤 부터는 전공에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 모으기 시작했
지요. 지리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에 옮긴 저의최초의 행동이 책사기였습니다.
제 대학 시절 전공인 지리학이란 학문은 ‘인간과 공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때문에 지리학의 세부적인 분류를 따지자면 크게는 인문지리 자연지리로 나누고 다시 경제
지리, 도시지리, 문화지리, 역사지리, 산업지리, 관광지리, 정치지리, 사회지리, 지형학, 기후
학, 생물지리, 의료지리 등등 시중의 모든 학문의 구분뒤에 지리자만 붙이면 하나의 분과가
되는 학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집해야 할 책들이 거의 모든 책이 되고 말았지요. 처음에
는 책을 몇 권 사 모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한 700권쯤 넘어가다 보니 나중에
는 대학 졸업 전에 천 권의 책을 사 모아야겠다고 본말이 전도되고 말더군요. 대학을 졸업
해서도 책을 사 모으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월평균 4권정도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의 책을 샀습니다.
다 읽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목차만 보고 만 책, 언제 읽으리라 계획만 해놓고 책
꽂이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이 많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주로 성공학과 관련한
책이나 경영, 리더십, 마케팅에 관련된 책 그리고 대인 심리와 관련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최근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서 산 책이 약 40여권쯤 되는군요. 성경 66권을 포함하면 100권
이 넘지요? ㅎㅎㅎ
여하튼 그 책들이 지금 제 방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책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오늘은 그 책들과 함께한 시간이 눈에 띰니다. 벌써 제 손에 온지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책과 지난 주에 산책에 이르기 까지….
그런데 참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그 오랜 책 앞에는 15년 전 제가 회사 생활을 막 시작하면서 찍었던 제법 날씬한 사진이 걸려 있고 , 지난 주에 산 책 위에는 지난 날 골프 대회에 참가해서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모습으로요.
제 몸은 더욱 튼실(?)해진 것은 사실인데 과연 그 오랜 책들과 함께한 제 지식은 제게 지혜의 한 부분으로 또는 제 영혼의 한 조각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오늘 변영인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서 체험한 신앙과 체험하지 않은 신앙의 차이를 생각해보
았습니다. 그녀의 강의는 간증이었지요. 흔히 여러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할 때 재미있게 또
그 시간 만큼은 의미있게 강의를 할 수는 사람은 많지만 오늘처럼 사람을 울리는 강연은 그
체험이 내재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묶은 신앙이었습니다.
저는 저들 묶은 책과 함께 제 삶에 묻어 있는 그 어떤 것으로든 채색된 체험들이 왜 지금
현재에 제 스스로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힘이 없는지 지난 시간들이 현재 내게 가식으로 밖
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얼마전 전도 아닌 전도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나는 내 삶이 가장 힘들기 시작할 때 그 문제의 원인이 나의 교만과 욕심에 있음을 알고
성경을 믿기 시작했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네. 자네 역시 지금 문제가 있거든 종교를 고
민해보게나. 지금 자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정말 빛나는 삶이 되기 위해 삶을 다시 한 번
더 고민하고 싶다면 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게나. 그들
은 최소한 자신의 삶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걸 한 번 알아보
게나. 그들에게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허락된 것이며, 그 주인이 자기가 아니
라 자신을 창조한 분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 남아 있는 시간의 가치를 위해 지금
이 바로 자신의 삶을 재조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그리고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말은 제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되뇌이고 있었
습니다. 그리고 이런 후회가 동반되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시간을 그냥 죽이고 말았군…”
저는 묶은 책들로 인해 빨리 읽게된 새 책들처럼 묶은 제 신앙을 바라 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초신자의 도마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내기 신자 세례 받을 대 쓴 기도문 (0) | 2006.05.11 |
---|---|
성경을 읽으며 모순이라 여기는 것에 대한 고민에 대한 글 (0) | 2006.05.11 |
교회 안의 만리장성과 전도의 실크로드 (0) | 2006.05.11 |
도마류 신앙이 본격적이기 시작할 때 쓴 글 (0) | 2006.05.11 |
도마류 신앙의 시작기에 쓴 글 (0) | 2006.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