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금술사란 소설에 대하여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과연 내가 소설을 읽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두 번째 읽었을
때는 ‘ 만약 이 소설이 시나리오화 되어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성공할까? ’ 라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연극이라면 몰라도 영화로는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내레이션이 강하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다는 느낌을 갖기 쉽고, 그리고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출간된 명작(?)으로 쳐 주기에는 신비주의를 포장한 동화적인
이야기 진행이 좀 걸리고… 영화의 시나리오로 만든다면 결정적으로는 반전에 대한 복선이
이미 서두에 노정 되었고 만물의 언어로 사막과 바람과 해와 그리고 신의 크신 손과의 대화
장면을 클라이막스라고 하기에는,경지에 오른 도인의 공력을 펼치는 장면 쯤으로 처리될 수
있는 동양의 무협에서는 서두에 있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연약한(?) 신비적인
요소로는 영화적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 주인공이 깨닫는 과정이나 바람으로 변하는 장면의 설정 등은 영화
매트릭스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나 이슬람의 유일신 신앙과 삼위일체론,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의 목적에 의해 어떤 의미를 가지도록 창조된다는 목적론적 창조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의 커다란 손에 기록된 바’ ‘마크툽’ ‘ 표지’등의 문장과
‘살렘 왕 멜기세덱’을 주인공의 하나로 등장시킨 것입니다. 멜키세덱은 성경의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환대하고 축복한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가 되 찾아온 물건의 10분의 일을 주게 되며,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첫 언급.
성경에는 살렘의 위치도 기록되지 않았고 멜키세덱은 성경의 창세기 14장 18절에서 그
이름이 단 한번 언급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이라 정의된 것과 축복하는 자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예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멜키세덱의 기록은 아브라함의 승리
가 그의 용맹과 훈련된 380인의 용사의 공이 아니라 이미 창조주가 그렇게 써 둔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느닷없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환대하는 장면은 ‘ 창조주의 마련된
복’을 찾은 아브라함에 대한 칭찬인 동시에 창조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요, 또 수확의 10
분지 1을 주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자아의 신화를 향해 나아가는 선택된 소수들은 성경의 전반에 흐르는
일맥상통하며, 그리고 ‘마음’과의 대화는 성령과의 대화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과 지중해와 이집트의 사막과 오아시스 등이 기독교 신앙의
배경지와 일치한다는 점도 성경적 구복의 원리, 즉 시험과 인내를 통한 ‘ 주어진 복 찾아
먹기’가 소설의 배경에 깔려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소설을 이해하기가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분명 이 소설은 읽은 사람들에게 많은 느낌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주제가 삶과 변화이고, 양치기라는 아주 평범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의 “꿈을 찾는
작업”을 ‘보물 찾기’라는 재미있는 설정을 통해 무형의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포괄해 놓고
있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면 딱부러진 답을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난해한 소설은 아니지만 어려운 주제를 선정한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의 경험’이 ‘선택적 여과’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의 관점과 배경이 다르다 해도 책을 읽고 난 후 공통적인 느낌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소설이다’ 라는 것이겠지요.
책의 중간 중간에 널려 있는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핵심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처한
현재를 딱 꼬집어 말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혹은 이런 때에 적합한 말이 없나?’하고 고민할
때 누군가 툭 질러주는 말 같은 거…말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우리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어 나가는 초입에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겁니다.
“ 내 인생의 꿈은 뭐지?”
“ 도대체 내 삶을 살 맛나게 해주는 꿈이 나는 가지고 있나?
“ 그리고 나는 그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나? ”
이러한 질문은 자신과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동일시가 이미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소설은 아래와 같은 제공하고 있습니다.
“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위대한 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는
세상 모든 사람 앞에 조용히 열려 있다. ‘위대한 업’은 만물의 정기 속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
만나게 되는 하나의 언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영혼의 연금술사가 된다.
책의 겉 표지에 적힌 흡사 광고 문구 같이 적힌 저런 문장들 때문에, 독자들이 이 책을
여러 번 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유형과 고민, 인생의 선택이란 문제에
항상 당황할 수 밖에 없는 미래라는 시간의 불안감들.. 그리고 우리의 의욕과 욕심과 욕망과
자포자기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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